AI 핵심 요약
beta- 야당 개혁파 의원들은 1929년 5일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세계 대공황과 보복 관세를 부를 것이라 경고했다.
- 그러나 1930년 6일 후버 대통령이 고율 관세법에 서명하면서 국제 무역이 붕괴되고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경제·정치적 파국이 현실이 됐다.
- 필자는 이 사례를 들어 트럼프 시대 보호주의 언어가 과거와 같은 파멸을 반복할 수 있다며, 부패 개혁과 능력 중심 관료제 구축을 현대 문명국가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세계 대공황을 예고한 야당의 발언
비록 1920년대에 접어들며 워런 하딩(Warren G. Harding) 행정부 시기 티폿 돔(Teapot Dome) 스캔들과 같은 석유 이권 정경유착 부패로 공화국의 도덕성이 잠시 땅에 떨어지기도 했으나, 무능하고 부패했던 하딩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역설적으로 미국 정치에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딩의 뒤를 이은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과 의회는 사법 청문회와 철저한 국정 조사를 통해 관료 사회의 비리를 척결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베버적 기준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부패의 수렁에서 스스로를 인양해 낸 의회의 단호한 검증 언어는 공화국의 시스템이 한 개인의 타락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저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의회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의 대립은 대공황의 초기 국면인 1929년 5월 하원 본회의장과 이듬해 1930년 3월 상원 본회의장을 거치며 15개월간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입법 전쟁을 유발했다.

특히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직후인 1929년 5월 28일, 그리고 최종 조율을 거쳐 법안이 성립되기 직전인 1930년 상·하원 합동 심의 과정에서 코델 헐(Cordell Hull) 당시 하원의원과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존 낸스 가너(John Nance Garner) 등 야당 개혁파 의원들이 여당의 발언과 법안의 모순을 전면에서 질타했다.
공화당 찬성파 의원들: "미국의 공장과 농장을 수호하기 위해 더 높은 장벽을 쌓아야 합니다. 외국산 제품이 우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둘 수 없습니다! (We must build a higher wall to protect the factories and farms of America. We cannot allow foreign products to rob our laborers of their jobs!)"
야당 의원은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라 이 법안이 가져올 세계적 모순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그것은 단견입니다. 우리가 문을 닫아걸면, 전 세계가 우리를 향해 문을 닫을 것입니다. 이 무모한 관세 장벽은 공화국의 경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보복을 불러와 우리 스스로를 고립된 파멸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외국의 생산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달러를 벌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 서부의 면화와 밀을 살 돈도 없을 것이며, 1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에게 지고 있는 막대한 전쟁 채무도 결코 갚지 못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경제적 자살 행위입니다. (That is a short-sighted view. If we close our doors, the world will shut its doors against us. This reckless tariff wall will not save our economy; it will only invite global retaliation and lead us to a path of isolated ruin. If foreign producers cannot earn dollars in the American market, they will have no money to buy our western cotton and wheat, nor will they ever be able to repay the immense war debts they owe us from the Great War. This legislation is nothing short of economic suicide)."

이 불길한 경고는 무서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1930년 6월 17일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이 서명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수입품 2만여 개에 평균 60%에 달하는 살인적인 고관세를 부과하는 폭거였다.
1930년 6월 14일 하원의 최종 가결 결과와 대통령의 서명을 앞두고 터져 나왔던 찬성파들의 격렬한 야유와 환호는 이내 전 세계를 엄습한 세계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 깊은 탄식으로 변했다.
이 법안은 단순히 미국의 내수 시장을 보호하는 실패한 정책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관세 장벽에 분노한 유럽과 아시아의 전 세계 동맹국 및 교역국은 즉각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전면 도입했고, 이는 국제 무역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파국을 낳았다. 전 세계 무역량이 수년 만에 3분의 1 토막 나면서 미국발 금융 위기는 전 지구적인 경제 파탄으로 급격히 확산·장기화되었다.
더 큰 비극은 이 경제적 재앙이 국제 정치 질서를 통째로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촉발한 경제 고립주의와 전 세계적 빈곤은 막 대두되던 전후의 다자주의 협력 체제를 무력화시켰다.
경제적 생존로가 막힌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는 군국주의와 파시즘이라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광풍이 불타올랐고, 각국이 배타적인 블록 경제권으로 웅크려 들면서 국제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이라는 인류사상 최악의 전쟁 속으로 치닫게 되었다.

경제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인류가 공멸의 위기에 직면한 이 미증유의 재앙 앞에서, 미국의 의회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관세 장벽과 단편적인 고립주의 언어가 세계 대공황의 심화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멸에 불씨가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의사당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미국의 정치 언어는 기존의 자유 방임주의를 폐기하고 국제 사회의 연대와 책임을 통찰하는 새로운 거시적 문법을 학습해야 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미국의 이러한 입법적 맹목성과 배타적 수사학이 2024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시대의 정치 언어 및 무역 갈등 양상과 놀랍게도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자국의 노동자와 무너진 제조 기반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의회 안팎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극단적인 고율 관세의 레토릭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슬로건은, 100여 년 전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 당시 대안 없는 낙관론에 취해 상대 정파의 경고를 힘으로 짓누르던 본회의장의 야유와 환호를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한 상호 연관성을 무시한 채 오직 국내 유권자들의 감정적 동원과 단기적 표심만을 자극하는 현대 의회의 배타적 언어 정치는, 결국 전 세계적인 보복 관세와 고립주의라는 또 다른 파멸적 악순환을 초래했던 1930년의 뼈아픈 실책과 궤를 같이한다.
공화국을 지탱하는 경제적 이성과 상호 존중의 토론 문화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일방적인 장벽의 레토릭이 채울 때 국가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과거의 의회 속기록은 현재의 트럼프 시대를 향해 가장 강력한 데자뷰의 경고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편을 맺으며
결론적으로 1882년부터 1932년에 이르는 근대화와 개혁기의 미국 의회 언어는 보 로스타인(Bo Rothstein) 교수의 빅뱅 이론(Big Bang Theory)이 명쾌하게 실증하듯, 제도적 정화와 대외적 패권의 확립이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결합하여 작동한 거대한 제도적 실험실이었다.
가필드(James A. Garfield)와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비극과 내홍 속에서도, 연방 의회는 엽관제의 사슬을 끊어내고 행정·화폐·반독점이라는 삼각 개혁을 과감하게 완수해 냈다. 나아가 하딩(Warren G. Harding) 행정부 시절 터져 나온 티폿 돔(Teapot Dome) 스캔들과 같은 탐욕의 부패마저도 의회의 정교한 사법적 통제 문법으로 엄정하게 단죄하고 쇄신해 냈다.
이러한 빅뱅식 개혁의 정점에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갈파한 합법적·합리적 지배에 기반한 근대 관료제의 확립이 있었다.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공평 무사함을 관철하는 청렴성과 고도의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행정 능력이 내정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격동과 전후 세계 재정 위기라는 미증유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품격과 압도적인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시기 의회가 닦아놓은 단단한 내치의 뼈대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이 시기 말엽에 등장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의 이기적 일방주의가 세계 대공황을 심화시키고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제공하는 뼈아픈 시행착오를 남기기도 했으나, 공화국의 언어는 파국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교정해 나갔다.
이제 미국의 의회 언어는 대공황의 거대한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낼 뉴딜(New Deal)과 본격적인 글로벌 리더십의 세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 의회가 보여준 대장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묵직한 통치학적 교훈을 던진다. 전 세계를 무대로 도약하고자 하는 문명국가라면,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단행하는 빅뱅식 부패 개혁과 능력 중심의 관료제 혁신을 반드시 최우선적인 제도적 개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엄숙한 역사적 귀결이다.
(다음 편에서는 경제적 구제와 행정국가의 비약적 팽창,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 속에서 국민적 통합과 패권적 리더십을 구축한 팽창과 패권기(1933–1992)의 의회 언어를 다룬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