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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⑨미국 의회언어의 질과 민주주의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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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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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년 10월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로 미국은 과학기술·교육·안보 위기를 인식하고 NASA 창설과 국방교육법 제정 등 국가전략을 추진했다.
  • 냉전기 의회는 우주개발·베트남전쟁을 둘러싸고 과학기술 투자와 대통령의 전쟁권한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며 전쟁권결의안 등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 미국의 초강대국화는 대통령 연설을 통한 비전 제시와 의회의 법률·예산·청문회를 통한 토론과 제도화가 결합된 민주주의 축적의 결과였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서 교육·문화·국방·과학기술 초강대국으로(1933–1992)

스푸트니크 충격과 과학기술의 정치

1957년 10월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군사적·과학적·교육적 충격을 동시에 받았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로켓 기술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우주개발을 과학자들의 개별 연구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교육, 산업정책을 결합한 사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이 창설되고 과학교육과 대학 연구지원이 확대되었다. 과학기술은 냉전의 군사적 수단인 동시에 자유사회가 지식과 자본, 장기적 국가목표를 조직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제시되었다.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합동회의에서 달 착륙 목표를 발표했다.

달 탐사 비전을 선언하는 케네디 대통령. [사진=Heritage Images / Heritage Images via Getty Images]

"I believe that this nation should commit itself to achieving the goal, before this decade is out, of landing a man on the moon and returning him safely to the earth. No single space project in this period will be more impressive to mankind, or more important for the long-range exploration of space. And none will be so difficult or expensive to accomplish."

"나는 이 나라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그를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기간에 추진할 수 있는 어떤 우주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더 깊은 인상을 주거나 장기적인 우주탐사에 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보다 더 어렵거나 많은 비용이 드는 사업도 없을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단순한 우주탐사가 아니라 소련과의 냉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과학과 기술, 교육과 산업의 역량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겠다는 국가전략의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기의 의회토론은 우주경쟁을 단순한 미·소 간의 체면 경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자, 미국 의회는 이를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교육 경쟁력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하원 과학우주위원회(House Committee on Science and Astronautics)와 교육노동위원회는 미국이 과학자와 공학자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하면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 모두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의회는 1958년 「국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제정하여 수학·과학·외국어 교육과 대학 장학금, 대학원 연구를 대폭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국가항공우주법(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ct)」을 통과시켜 NASA를 설립하고, 연방정부가 대학과 연구소,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국가 연구개발체계를 구축하도록 하였다.

미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법은 미국 교육체계를 강화하여 국가안보가 요구하는 새로운 필요에 부응하도록 할 것(This Act … will do much to strengthen our American system of education … to meet the broad and increasing demands imposed upon it by considerations of basic national security.)"이라고 밝혔다. 『Congressional Record』(85th Congress, 2nd Session, 1958)에서도 의원들은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과학교육과 기초연구에 대한 연방 투자가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의 기반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 합동회의에서 아폴로 계획을 제안한 이후에도 의회의 논쟁은 계속되었다. 하원 과학우주위원회와 세출위원회는 NASA 예산을 심의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과, 우주개발이 반도체·컴퓨터·항공우주·통신기술을 발전시키고 대학 연구와 산업혁신을 촉진하는 국가적 투자라는 의견을 함께 검토하였다.

『Congressional Record』(87th Congress, 1st Session, 1961년 5~6월)와 「House Committee on Science and Astronautics Hearings on NASA Authorization」에는 우주개발이 군사력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국가전략이라는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결국 의회는 우주개발을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미래 국가역량에 대한 투자로 선택하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예산심사와 교육투자는 대학과 정부 연구소, 민간기업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이후 미국이 반도체와 컴퓨터, 항공우주, 바이오,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과학기술 초강대국화는 대통령의 비전만이 아니라, 이를 장기간 법률과 예산으로 뒷받침한 의회의 지속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의 결과이기도 했다.

1973년 전쟁권결의안(War Powers Resolution) 첫 페이지 원본. [사진=Nixon Library]

냉전의 위기관리와 베트남전쟁의 성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공식 명칭은 quarantine, 격리)를 선언하였다. 그는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소련이 평화적으로 철수할 수 있는 외교적 출구를 남겨 두었다. 냉전기의 대통령 연설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동맹국과 소련을 향한 전략적 신호라는 성격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확대된 대통령의 군사행동 권한은 베트남전쟁에서 더욱 큰 헌법적 논쟁을 낳았다. 의회는 1964년 8월 7일 통킹만결의(Gulf of Tonkin Resolution)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동남아시아에서 필요한 군사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당시 하원은 찬성 416표, 반대 0표로 결의안을 가결하였으며, 『Congressional Record』(88th Congress, 2nd Session, August 6–7, 1964)에는 북한과 한국전쟁의 경험을 언급하며 공산주의 팽창을 초기에 저지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발언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의회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1966~1971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J.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bright)가 주재한 「Hearings on U.S. Policy in Vietnam」에서는 행정부가 제시한 통킹만 사건의 정보가 충분했는지, 군사력만으로 남베트남의 정치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지, 자유세계의 방어라는 명분만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가 집중적으로 검증되었다. 미국 의회는 처음으로 대통령의 전쟁수행 권한과 정보의 신뢰성을 공개적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성찰은 결국 1973년 「전쟁권결의(War Powers Resolution)」로 이어졌다. 『Congressional Record』(93rd Congress, October–November 1973)에서 의회는 대통령이 미군을 전투에 투입할 경우 48시간 안에 의회에 보고하고, 의회의 승인 없이 장기간 전쟁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확대된 행정부의 군사권한을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 속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의회의 대응이었다.

이처럼 냉전 후반기의 의회토론은 단순히 공산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넘어, 초강대국이 군사력을 언제, 어디까지, 어떤 민주적 통제 아래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었다. 미국은 군사력의 우위뿐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과 의회의 견제, 공개토론과 법률을 통해 초강대국의 권한을 스스로 통제하려 했으며,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국 의회에서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초강대국

1933년부터 냉전 종결기까지 미국은 경제와 군사뿐 아니라 과학기술, 교육, 문화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통령의 결단이나 군사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루스벨트의 노변담화(Fireside Chats)에서 시작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은 트루먼의 「트루먼 독트린」 연설(1947), 케네디의 「긴급한 국가적 필요에 관한 특별교서」(1961), 존슨의 민권 관련 연설로 이어졌고, 대통령은 국가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 비전이 국가정책으로 완성된 곳은 의회였다. 『Congressional Record』에는 1941년 진주만 공격 직후의 선전포고 토론, 1947년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 심의, 1950년 한국전쟁 대응, 1964~1965년 민권법과 투표권법 논쟁, 1961년 이후 우주개발과 NASA 예산 심의, 1964년 통킹만결의와 1973년 전쟁권결의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직면했던 거의 모든 중대한 선택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대통령이 방향을 제시했다면, 의회는 이를 법률과 예산, 청문회와 공개토론을 통해 검증하고 수정하며 지속 가능한 국가정책으로 제도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대체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사회개혁, 교육·과학기술 투자를 강조했고, 공화당은 재정건전성과 시장경제, 주정부의 권한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두 정당은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안보라는 국가적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그 목표를 어떤 정책과 비용으로 실현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였다. 미국 의회의 힘은 만장일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을 공개적으로 경쟁시키고, 수정안과 청문회, 예산심사와 표결을 통해 정책으로 완성하는 데 있었다.

라디오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진행 중인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회가 내각과 야당의 정치적 공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면, 미국 의회는 대통령제 아래 권력분립을 전제로 장기간의 정책 검증과 행정부 견제를 제도화하였다. 특히 상원의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수결을 지연시키는 양면성을 지녔으며, 1964년 민권법을 둘러싼 장기간의 필리버스터와 토론종결 표결은 미국 민주주의가 갈등을 제도 안에서 해결해 나간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은 미국 국내정치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정치행사가 되었다. 대통령의 연설과 이어지는 의회의 토론은 미국의 외교와 안보, 경제와 교육, 과학기술과 인권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된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무기고'를 넘어 과학·교육·문화·국방을 선도하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통령의 설득력 있는 리더십과 이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기록한 의회의 공개토론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대통령 기록물과 『Congressional Record』는 단순한 연설문과 회의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가 전쟁과 평화, 자유와 평등, 시장과 정부, 과학과 교육, 국내정치와 세계질서를 둘러싼 문제를 어떻게 토론하고 결정했는지를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기록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비전과 의회의 공개적 검증, 그리고 국민의 동의를 통해 국가정책을 만들어 온 이러한 민주주의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다음편「대전환과 갈등의 고조기(1993–2016): 탈냉전의 독점적 지위와 균열하는 공화국의 토론」에서는 냉전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과정과, 클린턴·조지 W. 부시·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며 세계화, 9·11 테러와 이라크전, 금융위기, 의료개혁, 이민정책, 인종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둘러싸고 대통령의 연설과 『Congressional Record』에는 어떤 새로운 논쟁이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어떤 새로운 도전과 균열에 직면했는지를 대통령 기록물과 의회 속기록을 통해 추적해 보고자 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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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닉 왜 인디애나로 갔나 [서울=뉴스핌] 서영욱 조민교 기자 = SK하이닉스가 미국 첫 반도체 생산기지로 기존 반도체 클러스터인 애리조나·텍사스가 아닌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을 택한 데는 안정적인 전력·용수와 탄탄한 제조업 인프라, 퍼듀대를 중심으로 한 연구·인재 경쟁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 최대 철강 생산지역이자 자동차 생산 2위 지역으로 성장하며 축적한 산업 인프라에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전문인력 양성을 한곳에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인디애나주가 약 2년에 걸친 유치전에서 대규모 인센티브와 인프라 지원을 제시하면서 최종 선택을 이끌어냈다. 28일 SK하이닉스와 미국 정부 등에 따르면 인디애나주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생산기지 유치를 위해 약 2년에 걸쳐 공을 들였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애리조나와 텍사스 등 기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웨스트라피엣 낙점은 이례적인 선택이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 반도체 후발주자 인디애나…2년 유치전 끝 최종 낙점인디애나는 그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생산지역으로 꼽히던 곳은 아니다. 미국 반도체 생산시설은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 기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인디애나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지만 철강과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지역이다. SK하이닉스도 처음부터 인디애나를 투자지로 낙점한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첨단 패키징 생산거점 구축 구상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22년 7월이다.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화상 면담을 갖고 미국에 22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150억달러를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첨단 패키징·테스트 시설 등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여러 지역을 놓고 생산기지 입지를 검토했다. 인디애나는 치열한 유치 경쟁을 거쳐 최종 4개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남았고 약 2년에 걸친 경쟁 끝에 최종 투자지로 선정됐다. 나머지 후보 지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멍 치앙 전 퍼듀대 총장은 당시 유치 경쟁을 '2년에 걸친 토너먼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러 지역을 상대로 후보지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디애나가 결국 SK하이닉스의 미국 첫 생산기지를 따낸 것이다. ◆ 첫째는 전력·용수…제조업 기반이 반도체 경쟁력으로2년에 걸친 유치전에서 인디애나가 경쟁 지역을 제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도체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산업 인프라가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착공식에서 '왜 인디애나인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전력과 용수를 첫 번째 이유로 제시했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의 특성상 입지 선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인프라는 인디애나가 오랜 기간 제조업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축적됐다. 인디애나는 미국 최대 철강 생산지역이자 자동차 생산 2위 지역으로, 이번 착공식에서도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가장 밀집한 지역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후발주자지만 철강과 자동차 등 기존 제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축된 전력·용수와 산업 인프라가 오히려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기반으로 작용한 셈이다. 다만 전력과 용수만으로 인디애나의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른 후보지와 차별화한 결정적인 카드는 웨스트라피엣에 자리 잡은 퍼듀대였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 승부 가른 퍼듀대…생산·R&D·인력양성 한곳에전력과 용수가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면 퍼듀대의 연구·인재 경쟁력과 인디애나주의 적극적인 지원은 다른 후보지와 차별화할 수 있었던 카드였다. 실제 SK하이닉스 공장이 들어서는 곳은 퍼듀대와 인접한 '퍼듀 리서치파크'다. 생산시설과 대학 연구시설을 가까이 두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동시에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입지다. SK하이닉스도 2024년 4월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퍼듀대가 보유한 반도체 분야 전문 연구진과 인재 공급망, 지역의 연구개발(R&D) 생태계를 웨스트라피엣을 선택한 주요 이유로 꼽았다. 퍼듀대는 이번 착공식에서 스스로를 '미국의 반도체 대학(America's semiconductor university)'이라고 표현하며 인재 경쟁력을 강조했다. 퍼듀대 측은 현재 미국에서 학사·석사·박사 엔지니어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퍼듀대 버크나노기술센터 등과 첨단 패키징과 이종집적 기술을 공동 연구할 계획이다. 퍼듀대와 아이비테크 커뮤니티칼리지와는 교육 프로그램과 학제간 교육과정을 마련해 현지 반도체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생산과 R&D, 인력 양성을 한 지역에서 연결하는 구조다. 미치 대니얼스 퍼듀대 총장은 이날 기공식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뿐 아니라 인디애나 경제의 성장과 다변화를 돕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라며 "교수진에게 연구 기회를, 졸업생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오늘날 대학의 중요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SK하이닉스의 성공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할 것"이라며 "사업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에 구축하는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 2년 유치전 쐐기 박은 지원책…州·대학도 총력전 여기에 인디애나주는 세제 혜택부터 인프라와 인력 양성까지 묶은 대규모 지원책을 제시하며 유치전에 힘을 실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번 착공식에서 충분한 전력과 용수에 이어 주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인디애나를 선택한 이유로 제시했다. 인디애나주는 최대 5억5470만달러의 세금 환급을 비롯해 최대 8000만달러의 조건부 성과연계 지원, 각각 최대 300만달러의 교육훈련 및 제조준비 지원, 4500만달러 규모의 인프라 개선 지원 등을 제시했다. 퍼듀대와 퍼듀연구재단도 부지 할인 등을 포함해 약 6000만달러 상당을 지원했다. 인디애나가 최종 투자지로 결정된 이후에는 미국 연방정부도 가세했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최대 4억58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마이크 브라운 인디애나 주지사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산업계와 대학, 지방·주·연방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협력과 리더십이 필요했다"며 "이 모든 요소를 한데 모으는 것이 한 주를 다른 주와 차별화하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SK하이닉스와 퍼듀대는 미국의 기술적 미래를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의 파급효과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yu@newspim.com 2026-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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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계엄 가담 1심 징역 12년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봉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현태 전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이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7-2부(재판장 오창섭)는 27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단장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김 전 단장은 이날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법정 구속됐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12·3 비상계엄 직후 병력을 이끌고 국회로 출동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이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08.27 photo@newspim.com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테러작전 등을 담당하는 최정예 특수부대 707지휘관으로서 병력을 헬기에 탑승시켜 국회에 진입시킨 뒤 현장에서 봉쇄를 직접 지휘했다"며 "특히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부수고 병력을 침투시켜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전원 스위치를 내리는 등 계엄 해제 의결을 저지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피고인은 수사기관과 법정에 이르기까지 '계엄이 정당했고 자신은 정당한 상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고 관련자를 비난하는 등 법치주의와 사법시스템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함께 기소된 이상현 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에게는 징역 10년, 김봉규 전 정보사 중앙신문단장·정성욱 전 정보사 100여단 2사업단장에게는 각 징역 7년,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실형이 선고된 김현태 전 단장, 이상현 전 단장, 김대우 전 단장에 대해선 도주 및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고 법정 구속했다. 다만 박헌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과 고동희 전 정보사 계획처장은 각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폭동에 가담할 의사나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들에 대한 양형 이유를 밝히며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군사력을 개인과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법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할 수 없는 내란 범행의 엄중한 책임을 피고인들에게 물을 책무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요구받았다"며 "사건의 중대성에 상응하는 처벌을 통해 향후 다시는 내란을 도모하거나 가담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태 전 단장과 이상현 전 단장은 계엄 선포 후 병력을 이끌고 국회로 출동해 내부 봉쇄 등 임무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김대우 전 단장은 방첩사 인력 위주로 체포조를 구성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권 주요 인사 14명을 체포하려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동희 전 처장은 정보사 요원들을 데리고 중앙선관위 청사에 진입해 직원들의 휴대폰을 빼앗은 혐의를 받는다. 김봉규·정성욱 전 단장에게는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 모임 등을 거쳐 선관위 직원 체포·구금 임무를 수행할 정보사 요원들을 편성하고 임무를 부여한 혐의가 적용됐다. 박헌수 전 본부장은 방첩사에 보낼 조사본부 수사관 100명을 편성하고 정치인 수용 시설을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등 체포조 지원과 구금시설 준비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다 파면되거나 전역한 뒤 민간인 신분이 되자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 요청에 따라 지난 1월 사건이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되면서 재판을 받게 됐다. 박헌수 전 본부장 사건은 별도로 공판이 진행되다가 지난 5월 나머지 피고인 6명의 사건과 병합됐다. 특검팀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김 전 단장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또 이상현 전 단장에게 징역 15년을, 김대우 전 단장·김봉규 전 단장·정성욱 전 단장에게 징역 12년을, 고동희 전 처장과 박헌수 전 본부장에게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당시 특검팀은 피고인들에 대해 "병력을 사적으로 동원해 핵심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국가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이날 법정에서 나와 "(선고 결과가) 다소 아쉽기는 하다"면서도 "판결문을 검토해보고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내란특검팀은 27일 법정 밖으로 나와 판결문을 본 후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08.27 yek105@newspim.com   yek105@newspim.com 2026-08-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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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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