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안중근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가 13일 일본서 환수됐다
- 국가유산청은 덕수궁 중명전서 환수 사실을 공개했다
- 허민 청장은 문화유산 환수로 독립정신을 되새긴다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며칠 앞두고 남긴 유묵이 일본서 환수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1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덕수궁 중명전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환수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자리에는 허민 국가유산청장을 비롯해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환수된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만국공법', 즉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해당 유묵은 1910년 2월 중국 뤼순감독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가 국제법의 무력함에 느낀 깊은 회의를 담겼다.

이날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뜻깊고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하게 돼 감사하다. 이 환수 유산이 안중근 의사 유묵이다. 만국공법불어대포가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법이 하나의 대포만도 못하다는 표현인데, 이 표현에 담긴 서사나 마음은 당시의 뤼순감옥에 있던 안중근 의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라며 "또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 굉장히 가슴 아픈 대목"이라고 했다.
허 청장은 "후손인 우리에게 이번 유묵을 통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 중명전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 유묵을 공개하게 돼 뜻깊다고 생각한다. 우리 재단은 지난해 5월 유묵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전문가의 자료 조사와 현지 조사를 마쳤다"라며 "이후 소장자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고국의 품으로 가져와 국민 앞에 첫 선을 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환수된 유묵 1910년 3월 사형집행을 앞두고 남긴 글씨이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힘 있는 필체는 숭고한 의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는 유묵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보물로 지정된 '일통청화공'을 함께 공개하게 돼 기쁘다. 죽는 날까지 감옥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평화정신을 되새기고, 광복절의 참뜻을 환기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론화'에서도 알 수 있듯, 안 의사는 만국공법에 따른 동양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주장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에도, 그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정당한 전쟁 행위를 수행한 것이라 주장하며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안중근 의사를 단순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만국공법불여대포' 여덟 글자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번 유묵 왼쪽 하단에는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손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 위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이는 안 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긴 유묵임을 알 수 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안 의사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필획의 처리방식, 자형 구성, 운필의 속도감 등 서풍 전반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손도장도 일치하여 전문가들로부터 진본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뒷면의 묵서를 통해 최초 소장자와 전승 경로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묵서에는 1910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최초 소장자, 본 유묵을 표구 및 보존한 이유, 유묵을 표구한 소장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뤼순감옥의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소장했던 것을, 후에 스스로를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고 밝힌 인물이 전해 받았으며, 그가 유묵을 보존하기 위해 표구하고 보관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구리하라는 여러 일화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수감 기간 중 인간적인 배려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어, 유묵의 전승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이번에 환수된 유묵은 지난해 5월 국외재단이 현지 협력망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면서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이후 국가유산청의 행정적 지원과 국외재단의 면밀한 조사와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 반입에 성공했다.
배지영 국외소재문화재단 유통조사부책임은 환수 경과에 대해 "2025년 5월 유물 정보를 입수하게됐다. 이전에 해당 작품에 대해 파악하고 있던 것은 없었기에 전문가 서면 자문을 실시했고, 6월 매도신청서를 접수하고 일본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8월 매도인 측과 매입 협의 진행을 했고, 9월 문화유산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추후 해당 유묵의 소장처에 대해 "현재 이 유묵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임시 보관 중이다. 내부 검토를 거쳐 관리처가 지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70점 안팎이나, 이중 30여 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이번 유묵은 순국을 며칠 앞두고 남긴 만큼 추후 보물 지정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유묵 중 국보로 지정된 것은 없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이게 처음에 지정이 되고 난 뒤로, 유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보물 지정이 30점까지 된 것 같다. 당연히 차등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모든 게 보물이기 때문에 다음도 보물로 지정되는 수순인 것 같다. 중요한 작품은 국보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위원회에서 별도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환수 유물인 '만국공법불여대포'와 보물 '일통청화공'은 시기적으로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3월에 쓰였으며, 내용적으로는 동양의 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담고 있다.
또한 기록을 통해 전승경로가 확인되는 유물이라는 점, 서예사적으로는 두 유물에 모두 사용된 글자인 '공(公)'자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서체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등 비교연구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끝으로 허민 청장은 "우리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것은 국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오는 물리적 회복을 넘어서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온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유산청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모니터링 강화해 환수에 힘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lice0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