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이 주변국 국채 수익률 상승을 차단하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선 가운데, 금리 상승에 노심초사하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일본은행(BOJ)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초저금리에도 자금몰이를 하고 있지만, 수익률이 튀어오르는 순간 상황은 급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는 물론이고 정책자들도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일본의 부채 비율은 GDP의 230%에 이른다. 디폴트 위기를 맞은 그리스의 16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채권자의 대다수가 국내 기관투자자인 데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국채를 매입하면서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은행권이 보유한 국채 비중이 44%에 달했고, 보험사가 21%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국채 금리가 오를 경우 국내 금융회사가 눈덩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는 데 있다. 현재 10년물 일본 국채 수익률은 1%를 밑돌고 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BOJ 총재는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일본 시중은행의 손실이 3조5000억엔(49조 2000억 원 상당)에 달하며, 지역은행의 손실 역시 2조8000억엔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수익률 1%포인트 상승은 전례가 없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물 수익률은 1.895%까지 상승, 두 배 가까이 뛴 바 있다.
국내 금융권의 대규모 국채 보유에 대한 우려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재정적자가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가 국채 발행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애널리스트는 일부 일본 은행이 장기물을 중심으로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나선 것으로 판단했다. RBS의 후쿠나가 아키토 전략가는 “최근 몇 년 사이 은행권이 금리 상승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감한 국채 매도는 오히려 가파른 금리 상승과 국채 가격 하락을 초래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메릴린치의 오츠키 나나 애널리스트는 “대형 은행이 보유한 일본 국채 듀레이션은 지난해 말 기준 2~3.3년이었다”며 “듀레이션을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줄일 전망”이라고 전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는 저축률 하락이 금리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저축률은 가처분 소득의 5%에 그치는 실정이다. 가계 저축이 국채 매입의 주요 자금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우려스러운 추세라는 지적이다.
미국 국채 역시 시장이 우려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준이 단기물 국채를 팔고 장기물을 사들이는 이른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와 양적완화를 동원해 수익률 상승 차단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영속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키네틱 스트래티직 그룹의 마이클 윌리엄스 트레이딩 및 전략 헤드는 “연준의 채권 매입이 아니면 현재 발행금리로 국채 투자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의 부채위기가 미국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결국엔 투자자들이 쌍둥이 적자와 여전히 불안정한 금융시스템에 눈을 돌릴 것이라는 데 투자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자산 보유 규모를 줄이는 중국의 움직임도 투자자들을 긴장하게 하는 요인이다.
프랭클린 템플턴 채권 그룹의 크리스 몰럼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채 투자 수요가 당장 크게 꺾일 가능성은 낮지만 올해 말 이후 리스크가 뚜렷하게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