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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아베노믹스'에서 배워야 할 것

기사입력 : 2013년02월19일 10:54

최종수정 : 2013년02월19일 11:34

-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편들 눈길 끌어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노인(老人). 연륜과 지혜의 대명사였던 시절은 추억이 됐다. 201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본인이나 타인에게나 부담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국가가 매월 20만원씩을 꼬박꼬박 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고인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을 떨어뜨리는 데엔 나쁘지 않은 구상이란 평가였다. 삶이 어려운 노인들의 자살률도 최고, 은퇴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들도 많아 노인 고용률 또한 최고인 우리나라다.

하지만 국민연금에서 그 재원을 끌어다쓰겠다는 구체안이 나오자 사회적 갈등이 불거졌다. 젊은이들은 그렇잖아도 저출산-고령화 사이클이 빨라져 국민연금 고갈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마당에 기초노령연금에까지 국민연금을 쓰면 "내 노후는 누가 보장해 주냐"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까지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580만명이었던 노인 인구는 2015년이면 660만명, 2020년엔 800만명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이 아니라 기존대로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만 지급한다고 해도 재정엔 부담이 커진다. 정년을 늘려주려 하면 또 기업들이 아우성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경우 역시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이지만 뒤따라가는 우리로선 어떻게 가고 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65세 이상 노인이 이미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더 빨리 늙어가고 있다. 20년 후 노인이 15세 이하 어린이의 네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하는 젊은 인구는 적어지는데 이들은 조부모뿐 아니라 증조부모까지 부양해야 하게 됐다.

산업계 지도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고객이 줄어드니 일본에선 폐업하는 주유소와 소매점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간단한 물품을 사려해도 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하는 '장보기 난민(買い物難民)'이란 말까지 생겼다.

초고속으로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있는데도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 팩스가 널리 쓰이는 희귀한 곳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이 급격히 산업화될 때 팩스를 주로 사용했던 노년층이 인터넷, 이메일보다 팩스 사용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에만 일본에서 170만대의 팩스가 판매됐으며 일본 정부 부처에선 100%, 일본 가정의 45%가 팩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이 역시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잘라파고스란 일본이 IT 산업 등에서 자신들만의 표준을 고수하는 폐쇄성 때문에 오히려 고립된 현상을 말하는데,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이미 전시된 팩스가 아직까지 널리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출처=Telegraph)
이렇게 '노인국'이 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부담이야 오죽하랴. 이미 재정적자는 경제 규모의 두 배나 된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죽고 싶은 노인은 빨리 죽도록 해야 한다(hurry up and die)"며 고령자에 대한 과도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건 정부의 속내를 무의식 중에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 정부는 한 달에 수백만엔씩 노인 연명치료에 쏟아붓고 있다. 특히 2000년 노인 간병을 지원하는 개호보험(介護保險) 제도가 생겨 노인을 위한 정부 지출은 더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들이 눈에 띈다. 소득세율을 높이고 상속세 대상을 넓히겠다고 한 이른바 부자증세안은 보수 집권세력으로선 보기 드물게 신속히 마련됐다. 세수 확보의 원론적인 해답이지만 뽑기 어려운 칼을 과감히 뽑은 것이다. 전체 국민들이 져야 할 소비세(부가가치세)율 인상에 대한 일종의 충격 완화 장치이기도 했다. 

감세나 면세안도 들여다 볼 만하다. 우선 조부모가 손자에게 학비를 증여할 경우 1인당 세금을 최대 1500만엔(약 1억7700만원)까지 면제해 주기로 했다. 돈은 많으나 쓰지 않고 있는 단카이(團塊, 1947~1949년생) 세대가 지갑을 열도록 해 이 자산이 젊은이들에게 옮겨가 소비가 이뤄진다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복안이다. 

기업들에게도 당근이 있다.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든지 기존 인력에 대한 임금을 높여주면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식이다. 일본 기업들은 오랜 불황 속에서 내부 유보금을 잔뜩 쌓은 채 고용이나 임금인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재계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를 풍자한 삽화(출처=Financial Times)
아베노믹스에는 무제한 돈 풀기와 엔화 약세 유도라는 극단적 방법만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편들도 있다. 경기활성화란 일관적인 목표도 있다. 우리나라에 당장 그대로 갖다 쓰긴 어려워 보이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싶다.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연금에 손을 대지 않으려면 현실적으로 다른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새 정부의 계획들에서 증세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경기가 어려우니 법인세 인상은 하지 않겠다' 는 인기관리식 발언만 들린다. 

대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도 직설화법이 없다. 부자증세를 밀어붙이고 대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강력히 주문하는 조건으로 법인세 감면 카드를 내미는 아베 총리식 재정과 정책 관리가 더 '경제적'이고 '스마트'해 보인다면 과장일까.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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