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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물] 中 건설재벌 런즈창 부동산불패 30년 지속

기사입력 : 2014년03월20일 16:46

최종수정 : 1970년01월01일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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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동산 붕괴없다 확신

 

[뉴스핌=조윤선 기자]  중국 부동산 업계의 독설가로 알려진 런즈창(任志强) 화위안(華遠)부동산 회장이 최근 고조되는 부동산 위기와 관련, "중국 부동산은 20~30년내 붕락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런즈창 회장은 19일 중국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베이징 집값은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며, 2·3선 도시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거나 경기가 악화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항저우 등 일부 도시 부동산 급락세로 인해 시장 위기감이 커지면서 부동산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중국 부동산 시장은 20~30년 안에는 붕괴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역설했다.

올 1~2월 통계를 볼 때 중국 대도시가 포진해 있는 동부지역은 거래량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부지역의 2·3선 도시 부동산 거래량은 여전히 높은 증가세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중국은 대대적인 도시화 추진 과정에 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도시화율이 70%에 달해야 부동산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가 꺾이는데 중국은 2025년이 되어서야 도시화율이 70%에 달할 것으로 본다"면서 "최소 10년 이상 중국 부동산 시장은 끄떡없다"고 강조했다.

중국부동산연구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앙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볼 때, 향후 3·4선 도시가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인구를 수용하는 주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진단, 런즈창의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런 회장은 1951년 3월 산둥(山東)성에서 고급간부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런취안성(任泉生)은 해방 직후 상업부(商業部) 부부장을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런 회장은 3세때 부모님을 따라 베이징(北京)에 정착하게 된다. 1969년부터 11년간 군복무를 한 경력도 있다.

33살이 되던 1984년 그는 국유기업인 화위안부동산의 전신인 화위안경제건설개발총공사에 입사했다. 화위안그룹에 입사한 후 50여개의 부동산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1996년 화위안부동산을 중국 1호 부동산 상장사로 키워냈다. 런 회장이 이끄는 화위안 부동산은 수년간 30%가 넘는 고속 성장세를 유지하며 승승장구 했다.

2011년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화위안부동산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동시에 베이징시 정협위원도 맡았다.

런 회장은 화위안부동산을 이끌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그는 '런 대포'라는 악명을 얻고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는 그의 직설적인 스타일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집값 급등을 이용해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이득을 본다는 비판이 일자, 그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상인의 본분이 가난뱅이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 "투자자들은 돈을 벌어오길 원하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맞받아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은 돈은 많은데 집값은 너무 싸다", "돈이 없으면 농촌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 아니냐" ,"부동산은 본래 폭리산업이다"라는 등등 중국 서민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실제 2010년 다롄(大連)부동산협회 포럼에서 강연을 하던 런 회장은 청중으로부터 신발 투척 공격을 받기도 했다. 중국 부동산 문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TV드라마를 비꼬던 그를 향해 한 청중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우물쭈물하는 경영인에 비해, 상인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기업활동을 하는 점은 인정해줄만 하다는 긍적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뉴스핌 Newspim] 조윤선 기자 (yoons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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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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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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