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속보

더보기

중국 증권당국 인재 유출, 신뢰 상실 '방아쇠' 역할했다

기사입력 : 2015년08월31일 15:37

최종수정 : 2015년08월31일 15:37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증감회, 해외 스카웃 고급인력 방치"

[뉴스핌=배효진 기자] 중국 정부가 대규모 주식 매입을 통한 부양을 중단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식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정부의 기준금리·지급준비율 인하 조치에 3200선을 회복하며 살아나는 듯 했던 투자심리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이처럼 주식시장의 혼란에 투자자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팔라진 증권당국 내 전문인력 유출이 증시 혼란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8일자 스트레이트타임스(Strait Times)는 중국 금융당국이 해외파 인재의 이탈을 막지 못해 증시 혼란을 더 부추긴 측면이 있고, 나아가 작금의 신뢰 상실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2008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인 감원을 단행하자 중국 정부는 주식시장 개혁에 필요한 중국계 인재들을 해외에서 포섭하기 시작했지만 정부와 증권당국은 인재들을 끌어온 이후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제대로 된 업무 배분도 없이 이들을 방치해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블룸버그통신>
당시 가장 국제금융에 박식한 해외파 인재들은 '바다거북(sea turtle)'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 모국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바다거북의 회유성질에 빗댄 것이었다.

고연봉 직장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모국으로 돌아왔던 이들 전문가들을 기다린 것은 냉대였다. 최고의 실려가 20명은 과거 내전 시기에 마오쩌둥이 본거지로 삼았다는 징강산(井岡山)으로 보내져 특수 훈련까지 받았다. 그러나 쥐꼬리 연봉에다 자신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직면한 이들이 조국에 기여한다는 환상은 깨어졌고, 대부분 실망한 채 다시 민간으로 복귀했다.

당시 해외에서 중국으로 돌아와 증권당국에 협조했던 한 전문가는 외국 언론과 대담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누구하나 승진하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뚜렷한 업무와 직책을 배정조차 받지 못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호주뉴질랜드(ANZ)은행의 리우리강 중국 경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는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국내외 인력을 필요로 했다"면서 "그러나 정작 국제적 경험이 풍부했던 전문인력들은 쫓겨나는 신세에 처했다"고 말했다.

당시 증권당국을 뒤로하고 떠난 이들 가운데는 ABN암로에서 신종 신용 파생상품 책임자 출신으로 증감회의 개혁과 외국인 투자자 접근 분야를 담당했던 탕샤오동과 증감회의 전략기획에 관여했던 JP모간체이스의 리빙타오 국제 채권담당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교수의 제자로 증감회의 제도개혁을 이끌었던 루오 덩판 등이 있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 로고 <출처=CSRC 홈페이지>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최근에도 중국 증권 당국의 내부 사정은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상하이 증권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거의 매주 퇴직을 신청하는 직원이 나오고 있으며 퇴직자가 나오는 속도도 가팔라지고 있다"며 "최근 1년간 규제 당국을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시장 관계자들은 당국에서 전문인력이 가파르게 빠진 것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홍콩 소재의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증권당국이 최근 수년간 필요한 수준의 전문지식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며 "악성 공매도 규제와 같은 잘못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다른 한 대형 운용사의 고위 임원은 "증권당국이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증감회 관계자에 의하면, 규제당국은 신용거래 융자 잔고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문인력의 유출에서 비롯된 능력 부재가 정부의 신용을 갉아 먹는 시발점이 됐고, 오히려 무리한 개입만 불러와 정부의 금융개혁에 대한 시장의 믿음도 잃게 만들었다는 판단이다.

중국·유럽 국제 경영대학원의 올리버 루이 교수는 "해외에서 유입됐던 전문인력들은 증권당국을 박차고 나간 즉시 높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구할 수 있다"며 "제한된 승진기회와 박봉 그리고 중요 정책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에 불만을 가졌던 이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무리가 아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