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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우수에 찬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

기사입력 : 2017년11월17일 12:00

최종수정 : 2017년11월17일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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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2)

말러는 교향곡을 주로 만든 20세기 초반의 작곡가이다. 그는 9개의 완성된 교향곡과 1개의 미완성 교향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교향곡을 내용면에서 그리고 연주 시간과 규모 면에서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올려놓았다. 또한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교향곡에 성악을 주입하는 시도를 자주 하였다.
그의 《교향곡 3번》은 일반적인 교향곡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긴 약 95분 시간을 소요한다. 또 일명 ‘천인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은 천 명이 넘는 연주자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교향곡 중 가장 거대한 악기 편성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또 교향곡 일부에 니체와 괴테의 철학, 중세 종교 상징주의와 영성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기본 레퍼토리의 일부가 되어 있다.
말러의 음악은 생전에는 그리 자주 연주되지는 않았고, 반응 또한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대중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작품은 상대적으로 짧고 고전적 형태를 띤 《교향곡 4번》과 1910년 뮌헨 초연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교향곡 8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 쓴 곡들은 그의 생전에 연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 말러의 교향곡은 다시 주목을 받아 활발하게 연주되었으며, 말러 또한 오늘날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 위상이 재정립되었다.

말러는 방대한 악기 편성과 거대한 구상을 가진 9개의 교향곡을 완성하여, 후기 낭만파의 웅대하고도 화려한 양식 속에 독일의 전통을 꽃피웠다. 그는 또 가곡 분야에서도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작품이 교향곡과 가곡에 한정되고, 더구나 이질적인 분야가 훌륭히 융합된 예는 음악사상 드문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자신의 표현대로 말러의 교향곡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나 다름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그의 교향곡 속에 담아내려는 듯 갖가지 악기들을 총동원해 온갖 신기한 소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교향곡에서는 알프스 산중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방울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군대의 신호나팔 소리나 술집의 밴드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간혹 거대한 망치가 악기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며, 썰매방울 소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회초리나 딱따기 같은 이상한 물건들도 오케스트라의 타악기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교향곡을 통해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던 말러에게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악기들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말러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교향곡 6번과 7번에 사용된 소방울에 대한 일화이다. 말러는 오스트리아 산중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방울 세트를 특별히 주문 제작했다. 그리고 리허설과 연주를 할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녔다. 1906년 11월, 뮌헨에서 교향곡 6번을 리허설할 때는 연주자의 목에 커다란 소방울을 걸게 한 후 앞뒤로 오가게 했다. 음악적 표현을 위해선 이처럼 우스꽝스런 연주법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말러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연주가들이 수시로 무대 앞뒤를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악기의 관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연주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말러가 악보에 지시한 특별한 음향효과 때문이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 성악가들이 입장하는 시점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말러는 교향곡 속에 인간의 목소리를 편성함으로써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된다. 말러의 교향곡 2번과 3번, 4번, 8번과 《대지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간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여러 악기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성악이 가미된 교향곡이라 해도 《교향곡 8번》과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나머지 성악 교향곡의 경우 모든 악장에 성악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독창자들이 언제 등장해야 할지, 합창단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야 할지를 사전에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러의 10개 교향곡 중에서도 2번 《부활》은 가장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대한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가 이 제2번 교향곡의 작곡에 매진하고 있던 1889년에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11월에 있었던 교향곡 1번의 초연은 말러에게 큰 실망을 맛보게 한다. 그에게 연이어 닥친 이런 불행은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교향곡 제2번의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제1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거인이 무덤에서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되며, 2악장에서는 과거의 회상이 순간의 햇빛처럼 찬란하게 그려진다. 3악장에서는 꿈같이 아름다웠던 현실이, 4악장에서는 독창자 알토가 등장해 ‘신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노래하며, 마지막 제5악장에서는 부활을 노래한다. 이 제5악장은 부활교향곡의 백미로 가공할 만한 스케일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또 여기에는 소프라노와 알토의 독창과 중창, 혼성합창이 골고루 사용되고 있다.

이 말러의 《교향곡 2번》을 가장 잘 지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정통 음악인이 아닌 금융잡지사 사장 길버트 카플란이다. 1965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말러의 2번 교향곡 ‘부활’을 숨죽이며 듣던 23살의 청년 카플란은 번개가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날부터 청년은 자신이 죽기 전에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보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이라곤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경영학도였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카플란은 월가로 진출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청년시절의 꿈이었던 말러의 ‘부활’을 직접 지휘해 보기 위해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1983년 카플란이 말러의 ‘부활’을 처음 들은 지 18년이 지났을 때, 그는 마침내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 아메리칸 심포니를 이끌고 ‘부활’을 지휘했다. 그가 처음 ‘부활’을 들었던 바로 그 장소이자 그 오케스트라였다.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의 지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호응을 받는다. 그의 지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전 세계에서 지휘 요청이 쏟아졌다. 런던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 등으로 부터…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주 공연 <사진=이철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1860년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칼리슈트의 유대인 집안 열네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그가 여섯 살 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열다섯 살이 되면서는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연주법과 화성학, 작곡법을 배웠다. 3년 뒤에는 빈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안톤 브루크너가 거기서 강의하고 있었다.
말러는 대학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도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던 중 첫 주요 작곡 시도로 칸타타 《탄식의 노래》를 지었다. 그러나 이 곡은 콩쿠르에서 낙방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작곡가가 아니라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바꾼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여 가난한 집안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러의 지휘자로서의 삶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바트 할의 여름 극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차례로 큰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 자리를 가질 수가 있었다. 1881년 류블랴나, 1882년 올로뮈츠, 1883년 빈, 1884년 카셀, 1885년 프라하, 1886년에는 라이프치히로 갔다.

1887년, 그는 몸이 아프던 아르투르 니키쉬를 대신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며 명성을 확고히 다질 수가 있었다. 이처럼 점차 지휘자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경제적인 안정을 얻었고 명성도 높아지게 된다. 1891년 그는 함부르크 오페라와 생애 첫 번째 장기계약을 맺었고 거기서 1897년까지 머물렀다. 작곡가로서의 활약이 시작된 것도 이 기간부터인데, 그즈음 교향곡 1~3번을 작곡하였다.
1897년 37세가 되던 해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 들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적 지위인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감독직을 제안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당시의 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맡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말러는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교로 종교를 바꾸게 된다.
그가 감독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빈 오페라의 레퍼토리와 예술적 기준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그의 치열한 성격과 완벽주의와 완고한 의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기간에 말러는 교향곡 4번부터 8번, 《뤼케르트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북 치는 소년》 등을 작곡했다.

한편, 말러의 개인적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1902년 말러는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런데 첫째 딸은 성홍열로 다섯 살에 죽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져 있던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든다.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운동을 제한하고 걸음 수를 세라는 처방을 받았다. 또 예술적 문제에 대한 그의 완고함은 오페라단 안팎에서 많은 적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에 언론의 반유대주의적인 공격은 그를 더욱 괴롭혔다. 결국 1907년 빈 오페라 감독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로부터 지휘자 제안을 받았다. 1908년 거기에서 한 시즌을 지휘했지만, 이듬해 토스카니니에게 밀려나게 된다. 때마침 뉴욕 필하모니에서 요청이 있어 1908년에서 1911년까지의 세 시즌 동안을 지휘했다. 이 시기에 그는 《대지의 노래》와, 마지막 완성작이 된 《교향곡 9번》을 완성했다.

그즈음 말러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겹쳐서 일어났다. 우선 부인 알마의 외도이다. 말러의 부인 알마 쉰들러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이었다. 그녀는 말러의 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부인이었고, 유명한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부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알마는 세 번이나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 셋 중 누구의 성(姓)을 따를 것인지 난감해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879년 비엔나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알마는 미모와 지성으로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17개의 가곡을 작곡한 재능있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알마의 아버지는 비엔나의 여러 지식인,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고 지냈다. 그중에는 구스타브 클림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마는 22세 때 말러에게 청혼을 받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극렬히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러의 나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말러는 알마보다 20살이나 많았고 심지어 장인보다도 한 살이 더 많았다. 알마와 말러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가 않았다. 알마는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으나, 결혼으로 인해 예술활동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말러 또한 알마가 예술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알마는 자기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과의 스캔들을 자주 일으켰다. 첫 상대는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이 사실을 안 말러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를 찾아가 자문을 받기까지 했다. 이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나자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알마는 그로피우스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다른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1920년 그로피우스와 이혼하고 소설가 베르펠과 결혼했다.

말러의 또 다른 불행은 그의 만성적인 심장병현상이었다. 1911년 2월, 그는 연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발열이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가졌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결국 심장발작 증세로 1911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50세였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빈 외곽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잠든 그의 딸 옆에 안장되었다. 이에 따라 작곡 중이던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말러의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다. 남들은 한두 개도 겪기 어려운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여러 가지 안고 살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 출신이어서 당시 주류사회에 끼기가 어려웠다는 것, 열네 명의 형제 중 여덟 명이 어린 시절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다는 것, 가톨릭으로 개종은 했지만 유태인이었기에 유무형의 차별을 당했다는 것, 사랑하는 딸을 다섯 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저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공공연한 불륜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의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말러는 스스로 이런 탄식을 했다고 한다.
“나는 3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서.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닥친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커다란 영감과 에너지가 되어 위대한 말러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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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22~26일 유엔총회 참석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안전보장이사회 토의를 주재한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일정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선 22일 뉴욕에 도착해 세계경제포럼 의장인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을 만나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의원단을 접견해 한미관계 발전을 위한 의회의 역할도 당부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동포 간담회도 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뉴욕 한인 동포들과 자리한다. [워싱턴 로이터=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08.26 photo@newspim.com 다음 날인 23일에는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을 한다. 이 대통령은 190여 개 국가 정상들 중 7번째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위 실장은 "전 세계 정상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대한민국 대외정책을 천명하는 주요 무대가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하고 한반도 정책 등 한국 정부의 외교 비전을 제시하고 인류 평화와 번영을 이뤄나가기 위한 방안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글로벌 현안 대응과 관련해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유엔 총장의 지지도 당부할 예정이다. 저녁에는 미 조야의 오피니언 리더와 만찬을 하면서 한미관계 발전 방안에 대한 제언을 듣고 의견을 나눈다.  뉴욕 방문 사흘째인 24일 오후 3시에는 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 공개 토의를 주재한다. AI와 국제평화 안보 주제 회의에서 '모두의 AI 기조와 국제사회 평화 안보 공동 대응'에 대한 논의를 주도할 예정이다.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에는 미 금융가 월가와 한국 금융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한민국 서밋 행사에 참석한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핵심 투자자들을 만나 한국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요청할 방침이다. 위 실장은 "이 자리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본격적으로 알려 연중 최고가를 경신 중인 한국 증시에도 활력이 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pcjay@newspim.com 2025-09-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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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2만명 'IMEI·폰번호 유출 우려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KT가 18일 서울 광화문 웨스트 사옥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2차 브리핑을 열고, 불법 초소형 기지국(일명 펨토셀) 신호와 연계한 추가 피해 정황 및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KT는 전수 분석을 통해 불법 기지국 아이디(ID) 4개를 확인했고, 해당 신호를 수신한 고객이 누적 약 2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1차 브리핑 당시 KT가 발표한 2개 ID·1만 9,000여 명에서 범위가 더 확대된 수치다. 피해 고객 수도 278명에서 362명으로 늘었고, 누적 피해액도 1억 7,000만 원에서 약 2억 4,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KT는 9월 5일 비정상 소액결제 패턴 차단 조치 이후 새로운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수 분석으로 불법 기지국 ID 4개 확인…2만 명 신호 수신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9월 5일 비정상 소액결제 패턴을 차단한 이후 현재까지 추가 피해는 없다"며 "1차 브리핑 당시 피해 고객 278명(피해액 1.7억 원)으로 파악했으나, 이후 고객 문의(VOC) 기반 추가 분석으로 362명·2억 4,000만원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열린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이어 불법 초소형 기지국 추적 과정에 대해 "소액결제 2,267만 건을 전수로 펼쳐놓고 결제 패턴과 기지국 동작 패턴을 이중으로 분석한 결과, 불법 기지국 ID 4개를 검출했다"며 "이는 VOC 고객의 접속 로그에서 확인된 ID와 동일했다"고 덧붙였다. 또 "불법 기지국 신호를 수신한 고객은 누적 약 2만 명으로 산출됐다"며 "다만 뒤늦게 확인된 두 개의 ID는 작동 시간이 매우 짧아 신호 수신 고객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개인정보 유출 정황에 대해서는 "1차 브리핑에서 국제 이동가입자 식별번호(IMSI)를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민관합동조사단과의 확대 분석 결과 국제 모바일 기기 식별번호(IMEI)와 휴대폰 번호도 단말 기종·사용 환경에 따라 전송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다만 유심(USIM) 인증키는 유출되지 않았고, 고객 성명·생년월일 역시 KT를 통해 유출된 정황이 없어 복제폰 생성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 피해 고객 전액 보상, 2만 명에 '안전안심보험' 무상 제공 김영걸 KT 서비스프로덕트본부장은 추가 피해가 발생한 부분을 고려해 고객 케어 방안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피해 고객 전체에 대한 청구 조정을 진행 중이며, 278명은 조정 완료, 추가 확인된 84명도 금일까지 마무리하겠다"며 "신용카드 결제 시점 차이 등으로 발생한 금액은 즉시 환불 처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김영걸 KT 서비스프로덕트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이어 "현재 무료 USIM 교체와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며 "피해 우려 고객 2만 명 전원에게 'KT 안전안심보험'(가칭)을 3년간 무료 제공해 금융사기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후 3시부터 KT 매장·고객센터·홈페이지에서 피해 여부 확인 시스템을 오픈했고, 24시간 전담 고객센터를 지속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T는 현장 대응 강화도 예고했다. 김 본부장은 "전국 2,000개 매장을 '안전안심 전문매장'으로 전환해 후후 앱 기반의 보안 점검, 악성 앱 탐지, 피싱 대응 안내 등을 상시 지원하겠다"며 "매장별 안전안심 담당자를 지정하고 IT 서포터즈를 활용해 피싱 예방 교육을 연말까지, 내년 이후에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2차 인증 확대와 관련해서는 "고위험 업종에 대해 9월 9일부터~12일까지 PASS 생체/핀 인증을 적용했다"며 "정부·유관기관 지침과 별개로 선제적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펨토셀 18.9만 대 현황 공개…미사용 4.3만 대 차단·회수 착수 KT는 이날 브리핑에서 펨토셀 관리 실태도 공개했다. 구 본부장은 "총 설치 18.9만 대 중 시점별 가동 장비는 15~16만 대 수준"이라며 "3개월 미사용 4.3만 대는 연동 해지 조치했고, 2주 이내 전수 점검해 정상 사용 확인, 철거·회수 또는 영구 접속 차단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 기지국 추정 방식과 원인에 대해 "합법 장비를 불법 개조하거나, 고출력 앰프를 추가 연결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실내용 이동형 형태로 제작해 광범위한 커버리지를 확보한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로그 분석 기준으로는 ID 4개가 확인됐고, 하드웨어 실물 대수는 수사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구재형 KT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기술본부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서 소액결제 피해 관련 대응 현황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9.18 ryuchan0925@newspim.com 복제폰 가능성 논란에 대해 손정엽 KT 디바이스본부장은 "복제폰에는 IMEI·IMSI·인증키 3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며 "인증키는 유심(HSM 주입)과 서버에만 암호화 저장돼 있으며 통신망을 오가지 않는다. 따라서 IMEI·IMSI만으로는 복제 불가"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KT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안 관련 투자도 확대하기로 했다. 황태선 KT 정보보안실장은 "KT는 수개월 전 향후 5년간 보안 투자 1조 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올해·내년 우선순위를 모바일 서비스·단말 보안으로 재배치하고, 보안 거버넌스 강화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펨토셀(Femtocell) :초소형 이동통신 기지국. 가정이나 소규모 사무실에 설치해 휴대폰 신호를 보강하는 장치. 불법 개조 시 해킹·소액결제 범죄에 악용될 수 있음.VOC (Voice of Customer) :고객 불만·문의 사항. 기업이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때 쓰는 데이터 소스. IMSI (International Mobile Subscriber Identity, 국제 이동가입자 식별번호) : 유심(USIM)에 저장된 번호. 이동통신망에서 가입자를 식별하는 고유 번호로, 유출될 경우 특정 가입자의 통신 기록 추적이 가능. IMEI (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 국제 모바일 기기 식별번호) :단말기(휴대폰) 고유 식별번호. 분실·도난 시 기기 차단이나 추적에 활용. USIM 인증키 : 통신사 네트워크에 가입자임을 인증하는 핵심 암호화 키. 유심 칩과 서버에만 저장되며, 유출되면 복제폰 생성 가능성이 생김. 복제폰(Clone Phone) : 정식 단말과 동일한 IMSI, IMEI, 인증키를 복사해 만든 불법 단말기. 원래 가입자처럼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음. dconnect@newspim.com 2025-09-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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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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