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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가,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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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4)

칸딘스키 대표작품의 하나인 《노랑 빨강 파랑》은 색의 3원색인 노랑, 빨강, 파랑을 기본색으로 하여 녹색, 분홍, 초록, 보라색으로 된 점과 선 그리고 원형으로 된 기하하적 무늬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면의 왼쪽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형상 또는 사람의 얼굴을 노랑을 주조로 하여 표현하였고, 오른쪽은 곡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파랑색을, 그리고 화면의 중심에는 빨강을 배치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 칸딘스키는 곡선과 직선, 면, 그리고 색채를 단순히 배열한 것이 아니라 화면을 체계적이고 조화롭게 구성하였음을 알게 된다.

‘노랑 빨강 파랑(Jaune-rouge-bleu)’, 캔버스에 유채, 128x201.5cm /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사진=이철환>

칸딘스키의 미술사에 남긴 커다란 족적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적 세계를 개척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미술과 음악의 결합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전까지의 미술작품을 보면 거의 모두가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조를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칸딘스키가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된다. 1910년경 어느 저녁 무렵, 칸딘스키는 자신의 화실에 들어서면서 아주 낯선 이상한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불타는 듯 아름다운 색채로 빛나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신이 그린 작품이 거꾸로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칸딘스키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스쳐갔다. 그림은 내용과 상관없이 오직 색채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20세기의 미술을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에서 추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색채는 건반, 눈은 화음,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Color is the keyboard, the eye ball, the soul is the piano with strings).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에는 음악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은 형태가 없는 소리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이 관점에서 음악 또한 하나의 추상이다. 그리고 음악에 소리가 있다면 미술은 색채의 예술이다. 칸딘스키는 음악의 소리와 같이 미술의 색채 역시 고유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를 이용하면 인간의 정신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추상미술이란 정해 놓은 대상이 없이 어떤 생각이나 내용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대가로 꼽힌다.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고 작품세계 또한 동일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였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차이가 있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이란 보편과 편견의 시각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또 외면만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간파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물질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 실재성인 내적 필연성을 그의 작품을 통해 계속 강조하였다. 또한 내적 필연성은 예술의 외적 필연성으로부터 해방과 자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서 몬드리안의 작품은 정형화되고 계획된 공간의 분할을 통해서 선과 색의 완벽한 단순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회화라기보다는 오히려 화면상의 공간 디자인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칸딘스키의 작품세계를 ‘뜨거운 추상’ 또는 ‘비정형의 추상’이라고 부르는 데 비해 몬드리안의 작품세계를 ‘차가운 추상’ 혹은 ‘정형의 추상’이라고 부른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1866년 모스크바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색, 소리, 언어에 특출한 감각을 보여 그의 부모는 일찍부터 그에게 미술과 음악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자라서 그는 모스크바대학에 입학해서 법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892년 같은 대학교에서 법학 강사가 되었다.
칸딘스키는 나이 30세가 되던 1895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게 되는 두 가지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 전시회에서 모네의 《건초더미》를 본 것이 그 하나이고, 모스크바 궁중극장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 공연을 본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의 한 전시장에 걸린 그림 한 점을 접하고는 돌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바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이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이 혼재된 모네의 붓 터치는 칸딘스키에게 내재되어 있던 그림을 향한 욕망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또 칸딘스키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공연을 보면서 음악에서 색을 느끼는 공감각(共感覺)을 경험하게 되고, 음악이 그림이 될 수 있고 그림이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그는 촉망받는 법학자의 길을 버리고 새로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896년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를 떠나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해 살면서 미술 습작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이 시절은 칸딘스키가 ‘청기사파(靑騎士派, Der Blaue Reiter)’라는 이름으로 모인 화가들과 함께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운 인생의 황금시기였다. ‘청기사파’란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 등 9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여 추상미술 활동을 펼친 유연한 형태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정확히 알리고 소리와 색채 간의 상징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예술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 이념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의 연장선상에서 프랑스 상징주의와 러시아의 신화적인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청기사’란 이름은 물론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온 것이다. 그렇지만 ‘말’, ‘푸른색’ 등 다른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요소들도 담고 있었다. 이 모임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해체될 때까지 세 번의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는 독일을 넘어 유럽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칸딘스키는 이 시기에 철학과 미학에 대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야수파와 신인상주의가 남긴 업적과 풍경화를 발판으로 추상에 이르게 된다. 이때 나타난 즉흥적인 주제와 낭만적인 주제는 그가 마지막 생을 보낸 파리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청기사는 해체되었고, 러시아 국적을 지닌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생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칸딘스키는 조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거기서 수년간을 지냈다. 그러다 1921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1933년까지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원, 직선, 사각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인 요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6년 그의 가장 중요한 이론서인 《점, 선, 면(Punkt und Linie zu Fläche)》을 발표하면서 추상미술 예술론을 완성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나치는 칸딘스키의 예술관을 좋지 않게 평가했다. 그가 러시아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치는 그의 작품을 ‘퇴폐 예술’로 규정하고 57점을 압수했다. 다행히 미국의 철강 재벌 상속인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솔로몬 구겐하임은 구겐하임 재단을 세우고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150점 가까이 사들였다. 이때 모았던 칸딘스키 작품들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나치를 피해 프랑스로 정착지를 옮긴 칸딘스키는 거기서 여생을 보냈다.

칸딘스키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작품은 자유분방한 형태와 색채로 가득한 캔버스일 것이다. 그러나 칸딘스키가 처음부터 추상미술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청기사파 화가들과 함께 활동하기 전에는 칸딘스키 작품은 대부분 구상회화 중심이었다. 그러나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라는 여성을 만나면서부터 추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1901년 칸딘스키가 설립한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당시 칸딘스키는 뮌터보다 나이가 11살이나 위였고, 러시아에 두고 온 아내도 있었다. 그렇지만 유복한 베를린 출신의 어린 소녀 뮌터에게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성으로 번뜩이고 이국적 모습을 한 칸딘스키 선생님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이후 칸딘스키와 뮌터는 서로 추구하는 회화적 방향에 끌리게 되면서 약 10년 동안 예술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낸다. 칸딘스키는 뮌터와 함께 한 이 시절 동안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1911년 청기사파에서 같이 활동하였고, 그즈음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라는 추상이론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두 사람을 갈라놓게 된다. 청기사는 해체되었고,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3년 후 1917년 칸딘스키는 러시아의 어느 장군의 딸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 소식에 칸딘스키를 기다리던 뮌터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이후 뮌터는 한동안 그림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후에도 칸딘스키와 함께했던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았다. 죽기 전 뮌터는 나치로부터 지켜낸 칸딘스키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과 함께 뮌헨 시립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1962년 8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칸딘스키는 그의 진정한 예술동반자 뮌터보다 18년 앞선 1944년 12월, 77세를 일기로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사망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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