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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이슈] '냉동피자'로 뜬 조흥, 주가 제자리..."4Q 격려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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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작년 냉동피자 매출 660억원..점유율 약 72%"

[뉴스핌=김양섭 기자] '냉동피자' 이슈로 지난해 5월 43만원대까지 올랐던 오뚜기 계열사 '조흥' 주가가 최근 24만원대까지 내려왔다. 작년 4분기 실적이 공개되면서 주가가 추가로 급락한 것. '이익' 규모가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원가율 상승과 격려금 지급 등으로 4분기 이익률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조흥 최근 1년 주가 추이 <자료=네이버>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조흥 주가는 지난 22일 8% 급락해 25만1000원을 기록했다. 장중 11%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이날은 조흥이 '매출액 또는 손익구조 30%(대규모법인은 15%) 이상 변경' 공시를 통해 작년 실적을 공시한 날이다. 매출액은 1621억원으로 전년대비 25%, 영업이익은 147억원으로 28%, 당기순이익은 115억원으로 41% 급증했지만 투자자들은 오히려 팔았다.

3분기까지 누적 실적은 매출 1223억원, 영업이익 140억원, 순이익 107억원이다. 이에 역산하면 4분기 실적은 매출 398억원, 영업이익 7억원, 8억원 수준. 결국 매물을 던진 투자자들은 4분기 이익률이 급격하게 하락한 데 주목한 것이다.

경쟁자들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인해 기대했던 냉동피자 이익률이 떨어지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조흥측에서는 경쟁자들의 유입으로 향후 이익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작년 4분기 이익률이 하락한 주요 요인은 '원가율 상승과 직원 격려금'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흥 관계자는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치즈인데, 상반기엔 무관세 쿼터를 적용한 물량이 원가에 반영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관세가 적용된 물량이 원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원가율이 높아지는 구조이며 이는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올해 4분기엔 직원 격려금으로 약 10억원 가량이 지급돼 이익률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조흥은 '치즈 및 식품첨가물 제조' 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 오뚜기 계열사다. 오뚜기(지분율 29.95%)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67.20%다. 오뚜기 외에도 BGF리테일에 냉동피자를 공급하고, 뚜레쥬르, 샤니, 파리크라상 등에도 제과·제빵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또 피자 전문점에는 피자치즈를 공급한다.

오뚜기에 따르면 국내 냉동피자 시장규모는 2016년 약 300억원에서 2017년 약 900억원 이상으로 대폭 성장했다. 오뚜기는 "시장을 이끌고 있는 1등 브랜드 오뚜기피자의 시장 점유율은 약 72%, 매출액은 2017년말 기준 약 660억으로 전년대비 200% 이상 성장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링크아즈텍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냉동피자 시장은 약 1300억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홈플러스, CJ제일제당, 사조대림, 삼립식품 등이 잇따라 냉동피자 제품을 출시하면서 오뚜기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장 성장과 함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조흥 주가는 지난해 초 18만원대에서 냉동피자 이슈가 불거지면서 3월 28만원대로 가파르게 올랐고 1~2개월간 20만원대 초반대까지 조정을 받은 뒤 재상승을 시작해 5월에 43만원대까지 올랐었다. 이후 다시 조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최근까지 약세 흐름을 보였다. 올해에도 28만원대에서 추가 하락 시작해 최근 24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26일 종가는 24만9000원이다.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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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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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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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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