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대체 언론
매년 디지털 매체의 소비 패턴 변화와 신뢰를 측정하고 있는 로이터 통신 연구소의 자료는 우리나라의 정부와 정당들이 앞으로 어떻게 언론 전략을 짜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래 <도표 2>에서는 각국 국민이 공영방송과 신문사의 뉴스 콘텐츠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에 대한 결과를 보여준다.
유럽의 경우 포르투갈(58%), 덴마크(57%), 네덜란드(57%), 노르웨이(53%), 스웨덴(50%) 순으로 뉴스에 대한 신뢰가 높게 나타나고, 동유럽 및 남미 국가들이 대체로 낮다. 우리나라 국민은 뉴스를 신뢰하는 수준이 대만과 같은 28%로 그리스(19%), 헝가리(25%), 슬로바키아(27%) 다음으로 낮다. 가장 높은 핀란드의 69%에 비하면 무려 41%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출처: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4. 38쪽 |
그나마 다행인 것은 로이터 통신 연구소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뉴스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 신뢰도가 22%를 기록하고 있다. 두 시기의 신뢰 수준을 비교해 보았을 때 2024년 측정치가 8년 전에 비하면 6%포인트 소폭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6년의 탄핵 정국 상황에서 조사된 측정치였기 때문에 상승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의 뉴스에 대한 불신 수준이 탄핵 정국 상황에서 측정된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매우 낮은 수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부각된다.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뉴스 콘텐츠를 신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국민은 과연 어디서 뉴스를 접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까?
그다음 자료 <도표 3>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출처: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4. 22쪽 |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공영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소비하는 국민의 비율이 핀란드(63%), 노르웨이(59%), 덴마크(53%), 스웨덴(51%)에 이른다. 북유럽 4개국의 경우 공영방송국이 제공하는 콘텐츠뿐 아니라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유료로 구독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KBS, MBC, YTN 같은 공영방송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 보는 소비 행태를 띤다. 유튜브와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보는 비율이 67%에 이른다. 그리고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도 17%에 이른다. 단지 6%의 국민만이 공영방송의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뉴스 소비 패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정치사회적 환경은 명확하게 갈린다.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은 공영방송과 신문사의 뉴스를 골고루 소비하는 북유럽 독자들은 균형 잡힌 정치적 식견과 양극단의 장단점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되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에 대한 선호도는 상당히 높은 반면,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 선호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시민들은 자기 신념만 강화하고 사회를 균형 있게 보는 식견과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이렇게 형성된 여론은 거리와 광장의 강 대 강 충돌로 이어지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된다.
결국 언론 장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언론의 낮은 독립성, 그리고 대기업 의존도는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낮은 신뢰도로 연결되고 갈등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 개혁과 변화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구조적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고 무한 반복된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황색 언론과 가짜 뉴스와의 전쟁
언론의 국가 감시 기능이 고장 나면 가짜 뉴스와 황색 저널리즘이 지배하게 된다. 프랭크 루터 모트(Frank Luther Mott)는 황색 언론을 식별하기 위해 다섯 가지 특성으로 구분했다. (American Journalism: A history of newspapers in the United States through 250 years, 1690-1940,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42. Internet Archive에서 재인용)
● 큰 활자로 헤드라인을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내용으로 구성
● 사진이나 이미지를 과도하게 부각 시켜 보여줌
● 가짜 인터뷰, 사이비 과학 자료와 전문가의 허위사실 보도 등 기법 사용
● 근거와 출처가 불분명하고 주로 익명을 자료원으로 사용
● 기득권에 반대하는 "약자"에 과도한 동정심을 보여줌
1880년대 뉴욕 양대 신문 간의 과열된 경쟁에서 시작된 황색 저널리즘 논쟁이지만, 놀랍게도 144년이 지난 지금 현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항목들이다. 황색 저널리즘과 가짜 뉴스가 워낙 고도화, 지능화되고 있어 뉴스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분야는 요즘 한창 떠오르는 블루오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래 팩트체크 사이트 모음 참조) 서울대 연구소가 팩트체크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 6년여 동안 4,700개가 넘는 팩트체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2023년 한국언론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 환경은 인공호흡기를 단 것과 같은 매우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균형 잡힌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면 국민은 편향적으로 치우쳐 사회 갈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과 주요 언론에 신뢰가 없으니 정치 편향성이 강한 뉴스를 스스로 찾아보게 되어 전투성은 더욱 배가된다.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정치 뉴스를 제작하는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국회 충돌로 민생과 미래에 대한 논의는 정치에서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없고 정쟁만 존재하는 곳이 국회가 되어버렸다.
제4권력, 언론이 다시 살아나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낙하산 인사와 노조 파업, 편파 시비로 언론사의 내부 구성원들 간에 반목과 대립으로 반쪽이 나 있는 상태는 더 큰 문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두 세력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언론사의 지나친 일부 기업 의존도는 또 다른 문제다. 자극적이며 편 가르기식 기사로 회사의 이익에 편승하지 않고, 논리적 설득의 필력으로 승부해야 떠난 독자들이 돌아올 수 있지만, 그런 기사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숭늉을 구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 AI의 발전으로 긴 방송과 글 대신 '짧은 동영상'으로 불리는 짧은 영상이 중심이 되고 '클릭' 실적주의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언론 환경이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다.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공영방송의 뉴스 보도는 폐지하고 문화와 체육, 예능과 교육만 남기든지, 굳이 남겨 놔야 한다면 상업화를 배제하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 이미 떠나버린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방법을 찾기 위해 완전한 시스템 교체가 시급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영방송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돈을 아껴 쓰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돈이 많이 드는 자체 사업은 정리하고, 임원 수를 줄이면서 임금을 동결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유료화하거나 외부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방법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골라서 볼 것이 많은데, 왜 굳이 시청료를 내야 하는지, 유료화된 정보를 구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언론 자유 지수 측정에서 연속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공영방송과 신문의 유료화된 정보를 구매하는 비율이 40퍼센트, 3위인 스웨덴도 31퍼센트에 이른다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4, 95쪽, 107쪽). 시청료를 내고, 유료정보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질 좋은 콘텐츠와 공정성이다. 공정한 뉴스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보도, 질 높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 보도, 국내 및 글로벌 주요 이슈에 대한 분석과 특파원들의 심도있는 보도, 여야의 건설적인 정책 토론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 방식에는 정치 평론가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공영방송의 공정하고 질 높은 콘텐츠가 넘쳐나게 되면 양극단으로 치우친 뉴스와 동영상에 사로잡혔던 시청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유턴 현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치권과 언론에 바란다
진영 구분 없이 야당일 때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권력을 잡으면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무리수를 두는 모습은 이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국밖에 남지 않는다.
정권을 가진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은 어떨 때는 양보하고 포용하면서도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통치력이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제대로 뽑았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지속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C-SPAN의 조사에 따르면, 최악의 대통령으로 14대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와 15대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이 선정되었다(https://www.c-span.org/presidentsurvey2021/?page=overall). 최고의 대통령으로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이 올랐다. 두 사람이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자명하다. 내란으로 향하는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치닫게 만든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여당은 정부와 함께 통치할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국회의원 자리를 모두 다 내놓는 결단이 더 낫다. 헌법에 국회의 성원은 최소 200인 이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여당 의원 전원이 사퇴하면 국회는 해산되어야 한다. 차라리 재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다시 한번 여당의 자격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더 현명한 방법으로 이 기회에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위해 여야가 협상을 시작하고, 대통령 선출과 국회의 신임을 함께 물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국회가 22대 들어 합의에 의한 법안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도 호통과 어깃장, 폭언과 막말을 늘어놓는 현재의 입법부를 차제 다수 위원회의 기능의 일부를 묶어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나 특검제청위원회로 분리시키고, 새로운 민생입법위원회를 신설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정쟁은 하되 정치도 함께 풀어가는 방식으로 현 난국을 헤쳐 나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입법부는 국민의 권익 증진과 행복, 그리고 안위를 지키고 법을 만들기 위해 토론과 합의를 하는 곳이지 면책특권 뒤에 숨어 정쟁과 언어폭력을 일삼는 곳이 아니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언어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4권력을 살리는 것은 곧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과 같다. 독립적 언론은 국가의 건강한 작동에 필수적이다. 언론이 공정해야 균형 잡힌 여론이 생겨 생산적인 토론과 합의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언론을 내 편으로 만들려 노력하지 말고, 야당도 더 이상 언론 장악을 시도하려 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다수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길 바란다. 언론도 공정보도, 객관보도, 그리고 진실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어야 총체적 파국을 막을 수 있다.
펙트체크 사이트 모음:
국제 팩트체크 사이트
● AFP fact checking (https://factcheck.afp.com/): 국제팩트체킹 네트워크의 기준을 적용하며 듀크기자회연구소의 자료데이타 베이스에 사용됨.
● Reuters Fact Check (https://www.reuters.com/fact-check/): 국제팩트체킹 네트워크 기준 사용.
미국 팩트체크 사이트
● FactCheck.Org - 이 사이트는 전직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및 CNN 기자들이 함 2003년 설립한 펙트체크 기업.
● PolitiFact.com -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있는 포인터 연구소(Poynter Institute)에서 비영리 프로젝트로 운영. 이 프로젝트는 2007년 Tampa Bay Times(당시 St. Petersburg Times)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음. 대통령, 국회의원 , 대선후보자, 로비스트, 이익 단체 및 미국 정치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발언의 정확성을 체크함
● FactChecker – The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fact-checker/.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기능을 거친 기사.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