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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자선 사업가 꿈 꿨던 조경태, 정치 뛰어든 계기는

기사입력 : 2024년09월13일 16:00

최종수정 : 2024년09월13일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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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국민의힘 6선 조경태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스토리를 공개했다.

조 의원은 13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학창시절 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조 의원은 1968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사하중과 경남고를 나와 부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토목공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생 때인 1988년 총선 당시 노무현 부산 동구 통일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36살에 첫 금배지를 달고 22대 총선까지 부산 사하을 지역에서만 내리 6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사진=뉴스핌DB]

다음은 조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의원님 근황 먼저 여쭤볼게요. 좀 요즘 굉장히 바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조경태 의원. 이하 조)최근에 당에서 격차 해소위원회를 좀 맡아달라 해서 격차 해소위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가 특히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또 새로운 영역에서의 격차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나아가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열심히 해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신)바쁘신데 혹시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는지

▲(조)휴가를 가려고 마음을 상당히 많이 먹었다가도 휴가철 되면 또 지역의 현안들도 많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좀 살펴야 할 게 좀 많이 있고 아직도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가지고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만큼은 휴가를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10년 이상 아마 휴가를 안 간 것 같습니다.

-(신)10년째 휴가를 안 가신 거예요?

-(최연혁 교수. 이하 최)국민들은 휴가 떠난다고 그러면 부산으로 많이 가거든요. 부산에 계신 자체가 휴가 기간이 아닌가 또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조)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라는 영역이 국민들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제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점부터 보면 좀 정치가 많이 국민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의원님 제가 찾아보기로는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셔서 이제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졸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에 의원님 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저희 때는 이제 초등학교라고 표현을 안 하고 국민학교라고 표현했거든요. 국민학교 전부터 영유아 시절 쭉 부산 사하구, 그때는 서구였는데 신평동이라고 있어요. 신평동에서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고 거기가 이제 부산에서도 좀 변두리다 보니까 상당히 좀 시골스러운 그런 전경들이 많이 있었거죠. 논도 있고 밭도 있었고 거기서 친구들과 또 동료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게 상당히 정서적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그 유년 시절이 오히려 지금 저에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신)혹시 의원님 어린 시절에도 꿈이 약간 정치 쪽으로 있으셨는지.

▲(조)나이가 들었을 때 이제 결혼 정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제 꿈이 이제 자선 사업가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의 아내한테 자선 사업가가 제 꿈이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내가 되게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남한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그게 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마 중학교 때쯤 제 동료한테 제가 제 꿈을 이야기를 했대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제가 정치인이 꿈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거든요. 이십여 년 전에 당선됐을 때 이 친구가 저한테 이제 메일을 보내왔는데 '우리 경태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이제 제가 '중학교 때 청소년 시기의 꿈이 정치인이었구나' 제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거든요. 간접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셨을까

▲(조)저는 약간 이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서 가난하고 힘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듬어주고 도와줘야 된다 이런 직업군이 저는 정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 보니까 그거는 아니더라고요. 자기들의 이익, 계파의 이익, 어찌 보면 기득권의 못된 어떤 세력들의 어떤 권력 다툼 권력화 이게 세계사적으로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정치에 대한 어떤 교육 또는 정치에 대한 영역이 성인이 됐을 때의 정치에 대한 영역하고는 완전히 반대인 것 같아요.

-(최)제가 경력을 쭉 봤더니 토목공학을 전공을 하셨습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상식과는 조금 멀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에서 시작을 하셨는데 그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는 문학 소년이었거든요. 약간 서정적인 부분에 가까운 사람 같았는데 이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이공계를 많이 지원하도록 그때 부추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과 쪽으로 이 가게 됐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공대에 나와가지고 건설 현장에 뛰어들면 빨리 돈을 벌 수 있겠다' 이 생각으로 그쪽 과를 선택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공부에 대한 욕심이 또 생기더라고요.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를 마치니까 저희 학교에 선생님들께서 원서를 가져왔는데 포스코 관련된 회사의 연구원으로 신청 안 해보겠느냐 하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대기업이고 또 연구소니까 좀 괜찮은 직장 같아 보였는데 그때 만약에 제가 포스코로 갔었으면 아마 정치인 조경태는 없었겠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앞서 제가 꿈을 이야기했을 때의 그 자선사업가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좀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우리 정치가 조금만 더 어떤 정치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국민들이 좀 안심하고 이쪽 정치인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거기서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 것은 자선 사업가와 정치를 아까 지속적으로 말씀을 주셨는데 부모님의 역할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어떤 그런 소년 시절에 책을 읽거나 혹은 어떤 영향을 받아서 누구를 좀 도와줘야 되겠다, 또 약자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혹시 있었습니까?

▲(조)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소망 중에 하나가 새 학기가 되면 새 학습지하고 새 전과가 그때 유행이었잖아요. 동아전과, 표준전과라고 있었습니다. 이게 유행했는데 보통의 집들은 새 학기니까 새 책을 주잖아요, 부모님이. 그런데 저희들 같은 경우는 가난하다 보니까 새 책을 못 주고 이제 헌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 어린 마음에 보면 새로운 걸 갖고 싶어 했거든요. 남의 손때가 안 묻는 새책. 근데 그걸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거든요.
저희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키우면서 그 과정들을 상당히 어렵게 하다 보니까 제 이웃 세대는 좀 더 건강하고 구김살이 없는 그런 삶을,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해서 아마 자선 사업가가 돼서 그 사람들을 좀 도와야겠다라고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한 것 같아요.

-(최) 정치를 입문하시게 돼서 첫 번째로 접했던 분이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조)정치에 입문한 게 제가 28살이었거든요. 정치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제 알게 된 첫 인연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좀 제가 마음에 들었던가 봐요. 그때부터 대통령 된 이후까지 제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죠. 그래서 제가 남들은 저보고 친노라고 하는데 저는 친노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제가 제 친조가 되겠죠.
나이적으로는 그리고 훨씬 그분이 더 여러 가지 많이 갖췄지만 제가 누구 누구가 좋아서 일방적으로 쫓아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 나름대로의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했고 또 그분은 그분대로 독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만난 거고 그분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좀 도와드린 거고 뭐 이런 거거든요.

-(최)그분께 받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이랄지 혹은 그분이 정치적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셨는지, 또 그것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정치에서 풀어내고 계신지

▲(조)제가 96년도에 첫 정치에 들어와 왔습니다마는 그전에 참 인연이라는 게 묘하더라고요. 1988년도에 전국 선거가 있었거든요. 총선. 제가 그때 대학교 3학년인가 그랬거든요. 제 선배분이 한 분이 어느 날 저보고 부산 동구에 노무현 변호사라는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들러보자, 그냥 단순히 들러보자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누군데요?' 그러니까 인권 변호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선배가 한번 가자 하니까 한번 가봤어요. 가서 보니까 이제 선거가 한참 진행 중이더라고요.
저는 한 번 빠지면 또 좀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가 거기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선거가 굉장히 좀 험악해서 개표하는 날도 투표함이 뒤바뀔까 싶어서 그 투표함을 지켜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남아서 새벽 찬이슬 맞아가면서 꼬박 하루를 밤샘을 했답니다. 상상이 잘 안 되죠. 운동장에 앉아가지고 그때만 해도 숫자로 몇 명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좀 많았다가 다 집에 가버리더라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끝까지 남아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 구호 외치고. 이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노무현 그분이 이제 저희들한테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갈 거 아닙니까?
인사할 때가 첫 만남이거든요. 96년도니까 8년 전에. 그런데 그 이후에 저는 정치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다가 8년 이후에 제가 출마를 한 거예요. 그 인연은 제가 나중에 이야기를 했어요. 대통령 되시고 나서.

저는 마음으로만 갖고 있다가 96년도에 제가 같은 당을 하게 됐거든요. 또 부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저하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그런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임이 있었거든요. 일요회라고 한 열 서너명이 모이는 모임에 같은 멤버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 멤버는 아닙니다. 제가 오리지널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인연이 그렇게 된 거고요.

영향력이라고 하면 이분이 굉장히 좀 정직한 분이잖아요. 지금 뭐 민주당에 그런 정치인이 없잖아요. 자기들이 죄를 지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되잖아요. 맞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랬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양심적이었어요. 자기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죠. 용기 있는 사람.

근데 지금 뭐 정치인들 보면 막 생까잖아요. 죄를 지어도 안 지은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에 가는 분들 있잖아요. 정말 그 사람들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은 그런 정신은 1도 없으면서 가서 막 우는 척하고 인연도 없잖아요. 따져보면 인연도 없는데 왜 부모, 형제를 빼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울음이 나옵니까? 그건 가식과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향을 그걸 받은 것 같아요. 겸손하되 당당해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개혁에 대한 마인드도 있었지만 통합에 대한 마인드도 많았거든요. 이분은 보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안 했어요.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단 말이에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보면 박근혜, 그 당시에 야당이었거든요.

대연정을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 내각까지 다 책임지게 되니까 우리 같이 하자 했거든. 그걸 대연정이라고 합니다. 선거가 끝났으니까 이젠 우리가 한마음이 돼 가지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크게 같이 이바지하자. 노무현의 대연정은 노무현의 대통합과 같은 의미입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실천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습니까? 거기 가서 읊조리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대당하고 잘 지내보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너희들이 말할 만한, 너희들이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또 정직한 분이었고. 또 이분이 가지고 있는 저하고 일치되는 철학이 뭐냐 하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이거에요. 이게 정직한 사회잖아요. 저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정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아야지, 사기치는 사람이 잘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그래요.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인정받아야 되죠. 아버지, 어머니 백으로 들어가면 가짜잖아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잘 사는 사회, 이게 노무현 정신이고 조경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모시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정신을 기린다고 하면 그분이 했던 그 철학을 그대로 본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반대의 길을 가면서 그분이 인기가 있으니까, 그분이 조금 더 존경받으니까 그 이름만 따가지고 빌린다? 우리 국민들께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꼭 그것을 명심하시고. 진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올리려면 내 자신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도 타인에 대해서 타 세력에 대해서 더 존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찾아보니까 의원님께서 처음에는 민주당 전신 정당에서 활동을 쭉 해오시다가 이제 보수 정당으로 오셔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혹시 그렇게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조) 그 시기가 이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문재인 세력 일파가 당을 장악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했던 얘기가 '패권화시키지 마십시오'. 이 패권화가 굉장히 무서운 거잖아요. 패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은 다 무시해버리거든요.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는 게 아니고 차별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세력들만 막 보태기를 하고 그렇지 않은 세력들은 다 배척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친문 패권화를 갖다가 제가 없애라고 이야기를 주장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병들고 힘들어지는 어떤 시점들이 보면 조선시대도 그렇고 고려시대도 그렇고 패권화가 되면 일종의 독재화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격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제 이야기를 안 듣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 권력을 더 많이 크게 쥐고 있는 사람하고 타협해서 아부하고 하면 주류로 편성될 수 있겠지만, 특권 의식을 가지고 이 세력화하는 패권 세력들하고 야합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뭐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제가 이제 민주당을 떠날 시기가 왔구나. 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이제 당시 새누리당으로 영입돼서. 제가 영입 1호거든요.

어차피 정치는 똑같아요. 지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정치인의 정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아쉬운 것은 양 정당이 아직도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에 좀 미흡하다. 이 당에서는 거의 뭐 50보 100보입니다.

아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좋다라고 하지만 속살을 탁 들어가 보면 비슷한 그런 점수를 먹이면 거의 뭐 대동소이 한 50점 정도. 둘 다 그렇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민주당에 있지 왜 떠났냐고 했을 때 그 패권 세력들은 저는 보기 싫더라고요. 여기는 안 그렇거든요.

-(신)제가 보니까 또 되게 화제를 모았던 게 첫 출마인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공보 포스터의 상반신 탈의로 되게 많은 화제를 모으셨더라고요.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한데요.

▲(조)저희 아내가 이제 조금 상당히 좀 진보적 사고, 앞선 사고를 한 것 같아요. 저한테 그 제안을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신출내기 신인이 그 인지도가 약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선거 비용도 거의 없었거든요. 당시에는 선거 홍보물을 두 번을 보낼 수 있는데 한 번은 4면짜리를 보내고 하나는 또 8면짜리를 보낼 수 있도록 돼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가난한 정치 지망생이다 보니까 8면짜리 홍보물은 보낼 돈이 없었어요. 딱 한 번 4면짜리를 보내는데 좀 충격을 좀 줘야겠다. 그래서 아마 아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 같아요.
감출 것 없는 어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것을 당시에 주제로 해서 그런 정신을 좀 살렸던 것 같아요.

-(최)효과는 많이 보셨습니까?

▲(조)당시에는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보통 지금처럼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의 넥타이 하는 정장 차림, 뭐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96년도에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유권자들한테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전국적인 매스컴도 그때 탔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한 40대, 50대 되신 분이신데 그 장면 보고 지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투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던데요. 그런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유세하러 쭉 다니면 초등학교 학생들, 중학교 학생들이 그리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초중학생들이 찍었으면 제가 그때 당선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요.
저한테는 아주 좋은 어떤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런 점에서 그 부분은 제가 굉장히 좀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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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테더 '5700원·1600원' 제각각 거래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 가격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크게 널뛰었다. 한때 가상자산 시장이 흔들리자 1600원에서 5700원까지 오가며 심한 변동성을 나타낸 것이다. 달러와 1:1 연동돼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불안정적인 자산이 된 셈이다. 1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6시쯤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테더 가격이 1655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이 급락했고 이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에 수요가 몰린 여파다. 빗썸에서 거래된 테더 시세창. [사진= 빗썸 갈무리] 테더는 달러와 1: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때 달러/원 환율은 1436원이었지만 김치프리미엄이 10% 이상 붙으면서 테더 가격이 환율 이상으로 벌어졌다. 김치프리미엄은 국내와 해외거래소 간 가상자산 가격 차이를 의미한다. 같은 시각 빗썸에서는 테더 가격이 5755원까지 오르는 이상 급등 현상도 발생했다. 달러/원 환율을 상회한 것은 물론 업비트를 비롯한 다른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거래 가격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특히 빗썸의 경우 렌딩(코인 대여) 서비스 청산 과정에서 이 같은 급등 현상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빗썸의 렌딩서비스는 대여한 메이저 자산의 시세가 급등락해 자동상환 레벨에 도달하면 모두 시장가로 매도되는 구조다. 이후 확보된 원화로 대여했던 가상자산을 시장가로 매수해 상환하게 된다. 청산 과정에서 시장가 매수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테더 가격을 계속 밀어 올렸다는 관측이다. 테더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빗썸에서 테더를 대여한 일부 투자자들은 예기치 못한 청산 사태를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빗썸은 상환 매매 발생 시 시세 왜곡 상태를 방지하는 '도미노 청산 방지 시스템'의 작동 여부 등을 점검하고 후속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상 달러 등 실물자산과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혀왔다. 테더 또한 국내 시장에서 달러 자산의 저장 및 거래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게 평가됐다. 그런데 이번 변동성 장세에서 국내 거래소의 테더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 사실상 '스테이블코인=안전성'이라는 개념이 깨진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테더(USDT) 는 스테이블코인이기 때문에 다른 코인 가격이 변하더라도 가치는 유지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테더 수요가 높은 국내 하락장에는 1달러보다 가격이 높아지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며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파생상품을 사용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거래 청산을 막기 위해 추가 테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국내시장에서 테더를 포함한 특정 가상자산에 대한 공급 대비 수요가 순간적으로 크게 앞서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 이날 기준 빗썸 내 대여금액 1위 종목은 테더로 대여 금액은 933억원이 달한다. 이는 2위인 비트코인 대여금액(218억원)의 4배 수준이다. 코인 대여 서비스 상위 자산인만큼 변동성 위기 시 청산 위험도 높게 평가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 급등락이 발생할 때 국내 거래소에서 해당 가격변동이 100% 반영되지 않아 김치프리미엄 또는 역프리미엄이 발생하고 여기에는 테더도 포함된다"며 "이번 폭락 사태의 경우 국내 거래소의 원화 거래가격이 폭락을 전부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김치프리미엄이 붙게 됐다"고 설명했다. romeok@newspim.com 2025-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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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온스당 4100달러 돌파…유가 상승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과 중국 간 여전한 무역 갈등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13일(현지시간) 금값이 온스당 4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유가는 반등했는데 백악관이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위한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주목하며 배럴당 60달러 아래에 머물렀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12월물은 3.3% 뛴 온스당 4,133달러에 마감했다. 금 현물은 장중 한때 4,116.77달러까지 올랐다가 한국시간 기준 14일 오전 2시 47분 기준 2.2% 오른 온스당 4,106.48달러를 기록했다. 금괴 [사진=로이터 뉴스핌]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한 중국에 오는 11월 1일부터 추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이달 말 한국 경주에서 예정됐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만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부정적으로 발언해 긴장감을 키웠다. 이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을 만날 것으로 낙관하면서 갈등 완화를 시사하긴 했으나,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 56% 상승하며 지난주 처음으로 4,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번 상승세는 지정학적·경제적 불확실성,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금 매입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블루라인퓨처스의 최고시장전략가 필립 스트리블은 "금 가격의 상승 모멘텀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며 "2026년 말까지 5,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매입, 탄탄한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 미·중 무역 긴장, 그리고 낮은 미국 금리 전망이 금 시장의 구조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레이더들은 10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확률을 97%, 12월 인하 확률을 100%로 반영하고 있다. 금은 이자 수익이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저금리 환경에서 강세를 보인다. 애나 폴슨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전국 경제학회(NABE) 연례회의에서 올해 2차례 추가 금리 인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들은 금 가격이 2026년에 5,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스탠다드차타드는 내년 금 가격 평균 전망치를 4,488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상품 리서치 글로벌 헤드 수키 쿠퍼는 "이번 랠리는 지속될 여력이 있다고 보지만, 장기 상승세를 위해서는 단기 조정이 오히려 건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물 은 가격은 3.1% 오른 온스당 51.82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때 52.12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과 마찬가지로 은 가격도 금리 인하 기대와 공급 부족 등 요인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유가도 미중 관련 소식을 지켜보며 반등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2월물은 배럴당 59센트(0.9%) 오른 63.32달러에 마감했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물은 59센트(1%) 상승한 59.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11월 1일로 예정된 관세 부과 계획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 깊숙이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토마호크 미사일'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 회원국으로부터의 원유 공급 차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가 상승 재료가 됐다. DBS의 애널리스트 수브로 사카르는 "현재 시장의 매도세는 워싱턴과 베이징이 협상 의지를 보이면서 진정된 모습"이라며 "단기적 유가 흐름은 결국 무역 협상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OPEC은 이날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의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했다. OPEC은 보고서에서, OPEC+ 산유국들의 증산이 이어지면서 2026년 석유 공급 부족 규모가 이전 예상보다 훨씬 작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이뤄지면서, 전 세계 원유의 3분의 1이 생산되는 중동 지역에서 전투가 재점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완화됐다. 이날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존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했다. kwonjiun@newspim.com 2025-10-14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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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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