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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공직을 꿈꾼 이종배…학창시절부터 키운 '리더십'

기사입력 : 2024년09월02일 16:00

최종수정 : 2024년09월09일 09:25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 4선 중진 이종배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전 삶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2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모범생' 이종배의 학창시절 꿈과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리더'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1957년생으로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거쳤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충주시장, 행정안전부 2차관, 음성군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2대 총선에서 충주시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이종배 국회의원.[사진=뉴스핌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송기욱 기자. 이하 송)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종배 의원. 이하 이)22대 총선이 끝나서 원구성이 됐고 상임위도 배정이 됐습니다. 이제 정기국회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상임위에서 활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법안소위도 하고 전체회의도 하고 또 이제 결산해야지 될 때고요. 또 정기국회 앞두고 우리 당 워크숍 같은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준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정부 질문에 정기국회에서 참여하려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쁩니다.

-(송)본격적으로 지금 질문 이어가 볼게요. 충주에서 태어나셔서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거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적 의원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산골짜기 입니다. 길 끝에 있는, 길이 가다가 더 이상 못 가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고 충주에서 중학교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대학은 서울.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충주에서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자였습니다. 7남매 되는데 그중에서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어가니까 7남매 중에서 한 명은 공무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키워주셨어요. '공직자다. 넌 나중에 대통령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다른 분들이 와서 네 꿈이 뭐냐 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대통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컸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학교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이)에피소드도 많겠죠.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육자시니까 학교 부근에 사셔서 따라서 학교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살고 학교 운동장에서 살고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재미있게들 많이 운동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렇게 지냈고요.
중학교 때는 제가 충주중학교를 통학했습니다. 기차로 통학을 했는데요. 기차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 1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 또 역 앞에서는 제가 자전거 타고 다니고 깜깜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서 어떤 분이 이 나무를 긴 나무를 지고 오는 걸 몰라서 그 나무가 제 이마를 쳐서 졸도를 해서 그 이튿날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최)그때는 가로등도 없었을 거고요. 칠흑같이 어두웠을 텐데

▲(이)고등학교 때는 제가 하숙을 했는데요. 하숙비가 이 쌀 일곱 말입니다. 집에서 그 쌀을 지고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송)쌀 일곱 말이면 요즘 이제 기준으로 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요즘 요즘 기준으로 한 15만 원 정도 되죠. 식사까지 다 제공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지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송)그렇네요. 이제 식사까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 대학생들 자취하는 비용이 월 40~50만원 정도 하니까 이제 그건 식사 제외하고서도 이렇게 하니까 저렴한 편이네요.

▲(이)그거 따지면 저렴하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받는 것도 현금 없으면 이 쌀로 갖고 오라고 해서 쌀로 갖다 주기도 하고 오셨으니까.

-(송)이제 저희는 이제 보통 이제 자취라는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시기가 대학교육 이후에 하다 보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당시에는 좀 이렇게 하숙이나 자취를 좀 많이 하면서 통학을 좀 많이 했었나요?

▲(이)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까 통학보다 자취, 하숙 그런 걸 많이 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자취하시는 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주에 자취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서 누나가 와서 밥을 해준다든지 뭐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송)상상하면 약간 아름다운 그림들인데요. 가족이 가족 챙겨주는 그런 모습.

▲(이)그렇긴 한데 이제 누나의 또 삶은 별로죠. 요즘 같으면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죠.

-(송)공부를 잘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목표들이 다 있잖아요. 반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 다들 꿈꾸고 하는데 혹시 의원님 학창 시절 최고 성적은 어느 정도셨는지 궁금해요.

▲(이)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했어요. 상위 1, 2등 또는 전체에서 한 5등 안에 저희들이 현재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400~500명 되거든요. 한 학년이 그때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 벽에다가 쭉 붙여놔요. 1등서부터 꼴찌까지 쭉 붙여놓습니다.

-(송)대학생으로 넘어가 보면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셨잖아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대학을 입학할 때도 제가 행정학과를 가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공무원 꿈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 행정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대 행정학과가 좀 제 실력으로는 좀 어려워서 우리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그래도 다음 두 번째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인데 이제 법대 안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대법대면 괜찮다. 사회적으로도 명망도 있고 괜찮다고 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제 꿈이 계속 이어진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의 어려운 사정도 제가 잘 살펴주기도 하고 잘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또 공부 잘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좀 잘못하는 학생이 가르쳐달라고 그러면 제가 잘 가르쳐 주고 집에도 놀러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그냥 그대로 지냈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과목 들어갈 때는 과대표도 하고 그랬습니다. 과대표하다 보니까 그때 1975년도 그때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긴급 조치가 떨어지고 막 그랬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 안에 탱크가 들어오고 그랬는데 제가 과대표를 하다 보니까 항상 앞장서서 뛰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북경찰서까지도 끌려다녔고 저는 뭐 재판까지 받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앞장서 봤기도 했고 그러다가 제가 제 정체성을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 와서 철학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다시 복학해서 그때서부터는 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만에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송)2년이라는 기간은 남들보다 빨리 합격하신 그런 걸까요?

▲(이)네 그냥 중상 정도 그렇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대에 가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장교로 가는 게 좋겠다 소대장을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지망을 해서 가서 전방에 가서 소대장 까지 훈련 기간만 합쳐서 한 39개월,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기간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합니다.

-(송)혹시 군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이)홍천 11사단 홍천 훈련 많은 곳으로 유명하죠. 1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송)혹시 군생활 에피소드는 좀 있으신가요? 이제 다들 남자라면 이제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있잖아요.

▲(이)군대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것들이 숫자를 보고 문자로 바꾸고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이런 음어거든요. 대표를 지냈기도 했고 저희가 이제 조금 영어를 한다고 해서 미군하고 같이 합동으로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미군들하고 아주 한 1~2개월 동안 지냈던 것이 뜻깊다 생각하고요. 요즘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그런 사병들 또는 다른 부대에 있던 장교들하고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송)벌써 알겠는 게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교 생활하실 때도 그렇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고 리더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그래서 제가 행정고시 합격하고 어느 부처를 갈 것인가 자기가 희망을 하거든요.희망을 할 때 제가 내무부로 가서 군수시장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내무부를 지망했습니다.그 당시에 제일 커트라인이랄까 경쟁이 센 데가 이제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좀 셌고, 내무부도 센 편이었습니다. 군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의 소망이었거든요. 합격생들보다 이제 부모님이 와서 고향에 와서 군수 한번 하라 이런 걸 자꾸 요구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행히 돼서 저는 그 젊은 나이에 충북 음성군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그때가 몇 살 때십니까?

▲(이)그때가 39살입니다.

-(최)그럼 39살에 이제 군수로 가셨을 텐데 그러면 나이 훨씬 더 많으신 분들이 말하자면 이제 같이 일하시는 분일 텐데 어떻게 융합을 하셨어요?

▲(이)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지만 리더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되거든요. 또 리더는 갑이 아니고 을이라 생각하고 대신 리더는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줘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그렇게 제가 잘 모시면서 지냈고 또 기관장, 단체장들 이런 분들하고 소통을 잘해서 수시로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그분들은 그 당시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어린 저를 항상 상석에 앉으라고 그러면서 군수가 아니고 성주라고 이렇게 불러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예우를 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낮은 자세로 그분들을 모시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제가 음성군수 한 것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충주시에서 국회의원 하는데도 충주시 내에 음성 출신이 상당히 있습니다. 한 1~2만 정도는 되는 거로 제가 생각되는데 그 분들이 우리 음성군수 하셨던 분이고 또 고향에 누구한테 얘기 들으니까 음성군수할 때 잘해주셨다고 그러면서 저를 지지를 많이 해주신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의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릴 때부터 이제 공부를 잘하셨고 또 아버님께서도 이제 교육계에 계셨고 자연스럽게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도서관이 옆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이런 꿈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릴 때부터 쭉 지금까지 이제 정치인, 행정인, 그리고 이제 정치인의 삶을 살아오시는 동안에 이끌어주셨던 멘토를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주위에서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저를 만들어주신 분은 부모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이 이제 부모님이 생각하실 때는 뭐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직자로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건 공직자 아니겠느냐 그런 걸 많이 심어주신 것 같고요.
또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씀을 주셔서 저는 그것들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우리 시민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늘 진정성 있게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정치할 동안도 부모님이 계속 생존해 계셨습니다.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들이 제 정치하는 거 보시면서 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수시로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저희의 정치의 하나의 길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타인을 위한 삶,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앞에서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에 행정을 하시고 그리고 또 정치를 하시고 이제 그런 일관성 있는 어떤 그런 말씀에 어떤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정치에 입문하시고 나서는 또 어떤 정치적인 멘토 혹은 롤 모델은 있으셨습니까?

▲(이)저는 어떤 한 분을 따라서 이렇게 롤 모델로 삼지 않고 내가 어떤 정치인이 돼야 되느냐를 늘 생각을 하고 있죠. 정치인으로서는 저희가 이제 정치 신조, 신념을 무신불립 으로 해서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과 약속한 걸 꼭 지켜야 되고 나 스스로도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늘 그런 걸 염두하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송)공직자로서 이제 꽤 오랜 삶을 살아오셨고 이제 여러 직책들을 거치셨잖아요. 공직자로서의 이종배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본인 스스로 돌아보셨을 때.

▲(이)저는 그래도 공직에서 행정고시 합격하고 최고로 올라가는 게 차관이거든요.차관까지 제가 올라갔고 동기들에 비해서 좀 빨리 승진을 한 편이었습니다.저는 이 일에 이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해서 전념해서 일을 처리하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또 승진을 하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이렇게 또 경험하고 다시 또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내무부가 나중에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는데요.그 이후에도 승진을 할 때는 지방에 가서 지방에 가서 또 근무하고 그래 근무하다 보면 또 중앙에서 불러들이면 다시 또 보고 이걸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저같이 이렇게 세 번 지방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한 사람도 상당히 드물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또 저희 동기들이 이제 내무부에 온 동기들도 군수를 다 못한 사람도 있어요.군수 1995년도에 지방자치가 실시가 돼서 자치단체장 선거가 처음에 있었거든요.

▲(이)95년도면 제가 공직에 나가서 15년 정도 이렇게 된 기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군수로 승진할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수를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었고 군수를 하신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조금 빨리빨리 제가 승진을 했고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제 삶은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제가 누구를 부리고 시키는 것보다도 앞에서 모범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도 빨리 된 것 아닌가 주위에서도 이종배가 승진해야 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됐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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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고객신뢰위원회 출범 [서울=뉴스핌] 정승원 기자 = SK텔레콤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대응책으로 고객신뢰위원회를 구성했다. 고객신뢰위원회는 안완기 전 한국생산성본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5인 구성으로 이번 사고로 떨어진 고객 신뢰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SK텔레콤은 18일 데일리 브리핑을 개최하고 고객신뢰위원회 출범을 공식화했다. SKT는 앞선 16일 고객신뢰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 활동은 2년이다. 서울 시내 한 티월드 대리점에서 유심 교체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영은 인턴기자] 위원회는 안완기 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현 한국공학대학 석좌교수)이 위원장을 맡고 신종원 전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 손정혜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김채연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전 고려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관심이 모아졌던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직접적으로 논의하지는 않는다. 앞서 SKT는 위원회 출범 전 위약금 면제 여부 등을 포함한 고객신뢰 회복 방안을 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홍승태 SKT 고객가치혁신실장은 "위약금 면제와 관련해 고객의 생각을 정리해 회사에 전달하는 등 고객 시각을 반영하는 역할을 위원회가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T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의 청문회에서도 위약금 면제와 관련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번에 구성된 고객신뢰위원회에서 직접적으로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해 결정하지는 않지만 관련한 고객들의 의견을 회사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위원회에서 고객 입장을 반영한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면 SK텔레콤 이사회에서 이에 대해 추가로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객신뢰위원회는 격주로 회의를 진행하며 각종 조치에 대해 자문할 계획이다. 또한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중장기적인 로드맵 마련을 회사에 요구하고 발표할 예정이다. 홍 실장은 "위원회 구성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고 위원들을 모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조언을 듣고 향후 계획에 도움을 받기 위해 위원회를 출범했다"며 "1차 회의에서 고객신뢰위원회의 운영 방안, 업무 범위 등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주 진행될 2차 회의에서 다양한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심 카드 물량이 대량 입고되면서 유심 교체에도 속도를 낸다. 이날 0시 기준 누적 유심 교체 고객은 210만명이며 잔여 예약 고객은 669만명이다. 유심 물량의 확보로 전날 유심을 교체한 인원도 17만명으로 지난 13일 10만명 이후 4일만에 다시 10만명을 넘어섰다. 임봉호 MNO 사업부장은 "17일에 유심 물량이 87만5000개가 입고돼 오늘(18일) 30만개가 배부된다"고 전했다. SKT는 이달 말까지 500만개, 내달 추가로 500만개를 확보해 유심 교체에도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도 19일부터 시행한다. 19일부터 6월 말까지 T월드 매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전국 도서벽지 100여 개 지역 300여 곳을 방문하기로 했으며 SKT와 멤버사 구성원이 직접 도서 벽지 노령층을 중심으로 유심보호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유심 교체 및 재설정 솔루션도 제공할 예정이다. 류정환 네트워크인프라센터장은 "초기 대응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았다. 엔지니어로서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추가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전했다.  origin@newspim.com 2025-05-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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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4차 공판...박희영 첫 정식재판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이번 주 법원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4차 공판이 열린다.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항소심 정식 재판도 시작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19일 오전 10시 15분 내란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의 4차 공판기일을 연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3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지상출입구를 통해 걸어서 출입할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3차 공판 당시 처음으로 지상으로 출입했으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등의 취재진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19일 오전 10시 15분 내란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의 4차 공판기일을 연다. 사진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3차 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지난 1~3차 공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에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검찰 측 증인인 조성현 국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제1특전대대장은 12·3 비상계엄 당일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부관은 '피고인(윤 전 대통령)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세 번째 통화 내용이 무엇이었나'라는 검찰 질문에 "'아직도 (본회의장에) 못 들어갔느냐'고 피고인이 말했고 '본회의장 앞까지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이 전 사령관이 말하자, 피고인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말씀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날 4차 공판에서는 검찰 측 증인인 박정환 육군 특수전사령부 참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며,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사건에 대한 심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16일 내란 사건 전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의 술접대 의혹과 관련해 "윤리감사관실에서 국회 자료,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가능한 방법을 모두 검토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향후 구체적인 비위사실이 확인될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지 부장판사가 1인당 100만∼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그 판사가 돈을 낸 적이 없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 1심서 이임재 금고 3년...박희영은 무죄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오는 19일 오후 2시 업무상과실치사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임재 전 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박모 전 용산서 112상황팀장 등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한다. 사진은 이 전 서장이 지난해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금고 3년형을 선고받고 나서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같은 날 오후 2시 업무상과실치사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박모 전 용산서 112상황팀장 등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한다. 이들은 지난 3월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과연 개별적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은 2022년 10월 핼러윈 축제 기간 경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안전 대책 보고에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고,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등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다. 1심은 지난해 9월 이 전 서장에게 유죄를 인정해 금고 3년을, 송 전 상황실장에게는 금고 2년, 박 전 상황팀장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같은 법원 형사9-1부(재판장 최보원)는 오는 20일 오후 4시 업무상과실치사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구청장 등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연다.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는 지역 내 재난 책임자이며 참사 당일 몰린 대규모 인파로 사고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재난 안전상황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1심은 지난해 박 구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박 구청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용산구청 관계자 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안전법령엔 다중군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2022년 수립 지침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재난안전법령에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별도 안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hong90@newspim.com 2025-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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