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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공직을 꿈꾼 이종배…학창시절부터 키운 '리더십'

기사입력 : 2024년09월02일 16:00

최종수정 : 2024년09월09일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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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 4선 중진 이종배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전 삶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2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모범생' 이종배의 학창시절 꿈과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리더'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1957년생으로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거쳤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충주시장, 행정안전부 2차관, 음성군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2대 총선에서 충주시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이종배 국회의원.[사진=뉴스핌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송기욱 기자. 이하 송)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종배 의원. 이하 이)22대 총선이 끝나서 원구성이 됐고 상임위도 배정이 됐습니다. 이제 정기국회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상임위에서 활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법안소위도 하고 전체회의도 하고 또 이제 결산해야지 될 때고요. 또 정기국회 앞두고 우리 당 워크숍 같은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준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정부 질문에 정기국회에서 참여하려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쁩니다.

-(송)본격적으로 지금 질문 이어가 볼게요. 충주에서 태어나셔서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거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적 의원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산골짜기 입니다. 길 끝에 있는, 길이 가다가 더 이상 못 가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고 충주에서 중학교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대학은 서울.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충주에서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자였습니다. 7남매 되는데 그중에서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어가니까 7남매 중에서 한 명은 공무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키워주셨어요. '공직자다. 넌 나중에 대통령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다른 분들이 와서 네 꿈이 뭐냐 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대통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컸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학교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이)에피소드도 많겠죠.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육자시니까 학교 부근에 사셔서 따라서 학교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살고 학교 운동장에서 살고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재미있게들 많이 운동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렇게 지냈고요.
중학교 때는 제가 충주중학교를 통학했습니다. 기차로 통학을 했는데요. 기차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 1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 또 역 앞에서는 제가 자전거 타고 다니고 깜깜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서 어떤 분이 이 나무를 긴 나무를 지고 오는 걸 몰라서 그 나무가 제 이마를 쳐서 졸도를 해서 그 이튿날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최)그때는 가로등도 없었을 거고요. 칠흑같이 어두웠을 텐데

▲(이)고등학교 때는 제가 하숙을 했는데요. 하숙비가 이 쌀 일곱 말입니다. 집에서 그 쌀을 지고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송)쌀 일곱 말이면 요즘 이제 기준으로 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요즘 요즘 기준으로 한 15만 원 정도 되죠. 식사까지 다 제공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지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송)그렇네요. 이제 식사까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 대학생들 자취하는 비용이 월 40~50만원 정도 하니까 이제 그건 식사 제외하고서도 이렇게 하니까 저렴한 편이네요.

▲(이)그거 따지면 저렴하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받는 것도 현금 없으면 이 쌀로 갖고 오라고 해서 쌀로 갖다 주기도 하고 오셨으니까.

-(송)이제 저희는 이제 보통 이제 자취라는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시기가 대학교육 이후에 하다 보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당시에는 좀 이렇게 하숙이나 자취를 좀 많이 하면서 통학을 좀 많이 했었나요?

▲(이)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까 통학보다 자취, 하숙 그런 걸 많이 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자취하시는 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주에 자취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서 누나가 와서 밥을 해준다든지 뭐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송)상상하면 약간 아름다운 그림들인데요. 가족이 가족 챙겨주는 그런 모습.

▲(이)그렇긴 한데 이제 누나의 또 삶은 별로죠. 요즘 같으면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죠.

-(송)공부를 잘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목표들이 다 있잖아요. 반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 다들 꿈꾸고 하는데 혹시 의원님 학창 시절 최고 성적은 어느 정도셨는지 궁금해요.

▲(이)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했어요. 상위 1, 2등 또는 전체에서 한 5등 안에 저희들이 현재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400~500명 되거든요. 한 학년이 그때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 벽에다가 쭉 붙여놔요. 1등서부터 꼴찌까지 쭉 붙여놓습니다.

-(송)대학생으로 넘어가 보면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셨잖아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대학을 입학할 때도 제가 행정학과를 가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공무원 꿈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 행정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대 행정학과가 좀 제 실력으로는 좀 어려워서 우리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그래도 다음 두 번째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인데 이제 법대 안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대법대면 괜찮다. 사회적으로도 명망도 있고 괜찮다고 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제 꿈이 계속 이어진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의 어려운 사정도 제가 잘 살펴주기도 하고 잘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또 공부 잘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좀 잘못하는 학생이 가르쳐달라고 그러면 제가 잘 가르쳐 주고 집에도 놀러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그냥 그대로 지냈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과목 들어갈 때는 과대표도 하고 그랬습니다. 과대표하다 보니까 그때 1975년도 그때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긴급 조치가 떨어지고 막 그랬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 안에 탱크가 들어오고 그랬는데 제가 과대표를 하다 보니까 항상 앞장서서 뛰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북경찰서까지도 끌려다녔고 저는 뭐 재판까지 받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앞장서 봤기도 했고 그러다가 제가 제 정체성을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 와서 철학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다시 복학해서 그때서부터는 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만에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송)2년이라는 기간은 남들보다 빨리 합격하신 그런 걸까요?

▲(이)네 그냥 중상 정도 그렇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대에 가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장교로 가는 게 좋겠다 소대장을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지망을 해서 가서 전방에 가서 소대장 까지 훈련 기간만 합쳐서 한 39개월,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기간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합니다.

-(송)혹시 군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이)홍천 11사단 홍천 훈련 많은 곳으로 유명하죠. 1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송)혹시 군생활 에피소드는 좀 있으신가요? 이제 다들 남자라면 이제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있잖아요.

▲(이)군대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것들이 숫자를 보고 문자로 바꾸고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이런 음어거든요. 대표를 지냈기도 했고 저희가 이제 조금 영어를 한다고 해서 미군하고 같이 합동으로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미군들하고 아주 한 1~2개월 동안 지냈던 것이 뜻깊다 생각하고요. 요즘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그런 사병들 또는 다른 부대에 있던 장교들하고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송)벌써 알겠는 게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교 생활하실 때도 그렇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고 리더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그래서 제가 행정고시 합격하고 어느 부처를 갈 것인가 자기가 희망을 하거든요.희망을 할 때 제가 내무부로 가서 군수시장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내무부를 지망했습니다.그 당시에 제일 커트라인이랄까 경쟁이 센 데가 이제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좀 셌고, 내무부도 센 편이었습니다. 군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의 소망이었거든요. 합격생들보다 이제 부모님이 와서 고향에 와서 군수 한번 하라 이런 걸 자꾸 요구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행히 돼서 저는 그 젊은 나이에 충북 음성군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그때가 몇 살 때십니까?

▲(이)그때가 39살입니다.

-(최)그럼 39살에 이제 군수로 가셨을 텐데 그러면 나이 훨씬 더 많으신 분들이 말하자면 이제 같이 일하시는 분일 텐데 어떻게 융합을 하셨어요?

▲(이)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지만 리더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되거든요. 또 리더는 갑이 아니고 을이라 생각하고 대신 리더는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줘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그렇게 제가 잘 모시면서 지냈고 또 기관장, 단체장들 이런 분들하고 소통을 잘해서 수시로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그분들은 그 당시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어린 저를 항상 상석에 앉으라고 그러면서 군수가 아니고 성주라고 이렇게 불러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예우를 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낮은 자세로 그분들을 모시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제가 음성군수 한 것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충주시에서 국회의원 하는데도 충주시 내에 음성 출신이 상당히 있습니다. 한 1~2만 정도는 되는 거로 제가 생각되는데 그 분들이 우리 음성군수 하셨던 분이고 또 고향에 누구한테 얘기 들으니까 음성군수할 때 잘해주셨다고 그러면서 저를 지지를 많이 해주신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의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릴 때부터 이제 공부를 잘하셨고 또 아버님께서도 이제 교육계에 계셨고 자연스럽게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도서관이 옆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이런 꿈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릴 때부터 쭉 지금까지 이제 정치인, 행정인, 그리고 이제 정치인의 삶을 살아오시는 동안에 이끌어주셨던 멘토를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주위에서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저를 만들어주신 분은 부모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이 이제 부모님이 생각하실 때는 뭐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직자로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건 공직자 아니겠느냐 그런 걸 많이 심어주신 것 같고요.
또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씀을 주셔서 저는 그것들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우리 시민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늘 진정성 있게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정치할 동안도 부모님이 계속 생존해 계셨습니다.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들이 제 정치하는 거 보시면서 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수시로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저희의 정치의 하나의 길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타인을 위한 삶,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앞에서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에 행정을 하시고 그리고 또 정치를 하시고 이제 그런 일관성 있는 어떤 그런 말씀에 어떤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정치에 입문하시고 나서는 또 어떤 정치적인 멘토 혹은 롤 모델은 있으셨습니까?

▲(이)저는 어떤 한 분을 따라서 이렇게 롤 모델로 삼지 않고 내가 어떤 정치인이 돼야 되느냐를 늘 생각을 하고 있죠. 정치인으로서는 저희가 이제 정치 신조, 신념을 무신불립 으로 해서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과 약속한 걸 꼭 지켜야 되고 나 스스로도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늘 그런 걸 염두하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송)공직자로서 이제 꽤 오랜 삶을 살아오셨고 이제 여러 직책들을 거치셨잖아요. 공직자로서의 이종배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본인 스스로 돌아보셨을 때.

▲(이)저는 그래도 공직에서 행정고시 합격하고 최고로 올라가는 게 차관이거든요.차관까지 제가 올라갔고 동기들에 비해서 좀 빨리 승진을 한 편이었습니다.저는 이 일에 이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해서 전념해서 일을 처리하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또 승진을 하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이렇게 또 경험하고 다시 또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내무부가 나중에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는데요.그 이후에도 승진을 할 때는 지방에 가서 지방에 가서 또 근무하고 그래 근무하다 보면 또 중앙에서 불러들이면 다시 또 보고 이걸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저같이 이렇게 세 번 지방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한 사람도 상당히 드물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또 저희 동기들이 이제 내무부에 온 동기들도 군수를 다 못한 사람도 있어요.군수 1995년도에 지방자치가 실시가 돼서 자치단체장 선거가 처음에 있었거든요.

▲(이)95년도면 제가 공직에 나가서 15년 정도 이렇게 된 기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군수로 승진할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수를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었고 군수를 하신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조금 빨리빨리 제가 승진을 했고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제 삶은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제가 누구를 부리고 시키는 것보다도 앞에서 모범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도 빨리 된 것 아닌가 주위에서도 이종배가 승진해야 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됐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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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테더 '5700원·1600원' 제각각 거래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 가격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크게 널뛰었다. 한때 가상자산 시장이 흔들리자 1600원에서 5700원까지 오가며 심한 변동성을 나타낸 것이다. 달러와 1:1 연동돼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불안정적인 자산이 된 셈이다. 1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6시쯤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테더 가격이 1655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이 급락했고 이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에 수요가 몰린 여파다. 빗썸에서 거래된 테더 시세창. [사진= 빗썸 갈무리] 테더는 달러와 1: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때 달러/원 환율은 1436원이었지만 김치프리미엄이 10% 이상 붙으면서 테더 가격이 환율 이상으로 벌어졌다. 김치프리미엄은 국내와 해외거래소 간 가상자산 가격 차이를 의미한다. 같은 시각 빗썸에서는 테더 가격이 5755원까지 오르는 이상 급등 현상도 발생했다. 달러/원 환율을 상회한 것은 물론 업비트를 비롯한 다른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거래 가격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특히 빗썸의 경우 렌딩(코인 대여) 서비스 청산 과정에서 이 같은 급등 현상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빗썸의 렌딩서비스는 대여한 메이저 자산의 시세가 급등락해 자동상환 레벨에 도달하면 모두 시장가로 매도되는 구조다. 이후 확보된 원화로 대여했던 가상자산을 시장가로 매수해 상환하게 된다. 청산 과정에서 시장가 매수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테더 가격을 계속 밀어 올렸다는 관측이다. 테더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빗썸에서 테더를 대여한 일부 투자자들은 예기치 못한 청산 사태를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빗썸은 상환 매매 발생 시 시세 왜곡 상태를 방지하는 '도미노 청산 방지 시스템'의 작동 여부 등을 점검하고 후속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상 달러 등 실물자산과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혀왔다. 테더 또한 국내 시장에서 달러 자산의 저장 및 거래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게 평가됐다. 그런데 이번 변동성 장세에서 국내 거래소의 테더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 사실상 '스테이블코인=안전성'이라는 개념이 깨진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테더(USDT) 는 스테이블코인이기 때문에 다른 코인 가격이 변하더라도 가치는 유지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테더 수요가 높은 국내 하락장에는 1달러보다 가격이 높아지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며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파생상품을 사용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거래 청산을 막기 위해 추가 테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국내시장에서 테더를 포함한 특정 가상자산에 대한 공급 대비 수요가 순간적으로 크게 앞서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 이날 기준 빗썸 내 대여금액 1위 종목은 테더로 대여 금액은 933억원이 달한다. 이는 2위인 비트코인 대여금액(218억원)의 4배 수준이다. 코인 대여 서비스 상위 자산인만큼 변동성 위기 시 청산 위험도 높게 평가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 급등락이 발생할 때 국내 거래소에서 해당 가격변동이 100% 반영되지 않아 김치프리미엄 또는 역프리미엄이 발생하고 여기에는 테더도 포함된다"며 "이번 폭락 사태의 경우 국내 거래소의 원화 거래가격이 폭락을 전부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김치프리미엄이 붙게 됐다"고 설명했다. romeok@newspim.com 2025-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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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온스당 4100달러 돌파…유가 상승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과 중국 간 여전한 무역 갈등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13일(현지시간) 금값이 온스당 4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유가는 반등했는데 백악관이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위한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주목하며 배럴당 60달러 아래에 머물렀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12월물은 3.3% 뛴 온스당 4,133달러에 마감했다. 금 현물은 장중 한때 4,116.77달러까지 올랐다가 한국시간 기준 14일 오전 2시 47분 기준 2.2% 오른 온스당 4,106.48달러를 기록했다. 금괴 [사진=로이터 뉴스핌]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한 중국에 오는 11월 1일부터 추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이달 말 한국 경주에서 예정됐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만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부정적으로 발언해 긴장감을 키웠다. 이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을 만날 것으로 낙관하면서 갈등 완화를 시사하긴 했으나,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 56% 상승하며 지난주 처음으로 4,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번 상승세는 지정학적·경제적 불확실성,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금 매입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블루라인퓨처스의 최고시장전략가 필립 스트리블은 "금 가격의 상승 모멘텀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며 "2026년 말까지 5,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매입, 탄탄한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 미·중 무역 긴장, 그리고 낮은 미국 금리 전망이 금 시장의 구조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레이더들은 10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확률을 97%, 12월 인하 확률을 100%로 반영하고 있다. 금은 이자 수익이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저금리 환경에서 강세를 보인다. 애나 폴슨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전국 경제학회(NABE) 연례회의에서 올해 2차례 추가 금리 인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들은 금 가격이 2026년에 5,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스탠다드차타드는 내년 금 가격 평균 전망치를 4,488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상품 리서치 글로벌 헤드 수키 쿠퍼는 "이번 랠리는 지속될 여력이 있다고 보지만, 장기 상승세를 위해서는 단기 조정이 오히려 건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물 은 가격은 3.1% 오른 온스당 51.82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때 52.12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과 마찬가지로 은 가격도 금리 인하 기대와 공급 부족 등 요인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유가도 미중 관련 소식을 지켜보며 반등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2월물은 배럴당 59센트(0.9%) 오른 63.32달러에 마감했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물은 59센트(1%) 상승한 59.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11월 1일로 예정된 관세 부과 계획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 깊숙이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토마호크 미사일'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 회원국으로부터의 원유 공급 차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가 상승 재료가 됐다. DBS의 애널리스트 수브로 사카르는 "현재 시장의 매도세는 워싱턴과 베이징이 협상 의지를 보이면서 진정된 모습"이라며 "단기적 유가 흐름은 결국 무역 협상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OPEC은 이날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의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했다. OPEC은 보고서에서, OPEC+ 산유국들의 증산이 이어지면서 2026년 석유 공급 부족 규모가 이전 예상보다 훨씬 작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이뤄지면서, 전 세계 원유의 3분의 1이 생산되는 중동 지역에서 전투가 재점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완화됐다. 이날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생존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했다. kwonjiun@newspim.com 2025-10-14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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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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