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다른 시도 교육청과 달리 경기도 교육청의 일부 학교에서만 유해 도서로 판단돼 폐기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각 교육감 시각에 따라 유해도서 선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란 비판이 나왔다.
23일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도서관은 아이들 교양, 교육적 목적에 필요한 도서를 구입하는 게 목적"이라며 "학교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도서관 장서 구성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률적 지침을 내리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12일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한 시민이 열차 안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다. [사진=뉴스핌 DB] |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21일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24학년도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 운영 현황'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경기 용인의 한 공립중학교와 여주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열람이 제한됐다. 성남의 한 여고는 '채식주의자'를 폐기하기도 했다. 이 학교는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 '성행위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임 경기교육감에게 채식주의자가 성교육 유해 도서로 판단돼 폐기된 것을 두고 '경기도교육청의 도서 검열 탓'이라고 질타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 목록 제출', '심각한 경우 폐기 가능' 등의 문구가 담긴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공문을 총 3차례 보냈기 때문이다.
임 경기교육감은 검열이 아닌 각 학교 도서관운영위원회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문제 도서를 선정했다고 반박했지만, 백승아 의원은 "공문을 세 번이나 보냈다면 학교 현장에서는 충분히 압박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교조 경기지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경기교육청은 '도서 폐기는 각급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졌으며, 교육청은 지시를 한 바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면서 "상급 기관인 도 교육청의 반복된 도서 처리 공문이 어떻게 검열이 아닐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현재까지 경기도교육청을 제외한 나머지 16개 시도교육청에서는 유해도서 선정과 관련한 공문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더구나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인 서울 학교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유해 도서로 선정될 가능성이 낮다. 정근식 서울교육감이 교육감 후보였던 지난 13일 논평에서 "조전혁 후보가 교육감이 된다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이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김현애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 이사장도 "채식주의자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 없이 소설이 일부 불편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호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해서 유해도서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며 "문학은 작가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인간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해도서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해 교육감, 지자체장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유해도서가 결정된다"며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유해도서 합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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