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 가격 경쟁력 저하 현실화
"글로벌 생산 전략, 다시 짜야 할 때"
1Q 반짝 실적 후 2Q 리스크 본격 반영
멕시코 무관세도 안심 못해...재협상 변수
세계 생산기지 총동원...'생존' 달렸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지난해 79억8000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하며 1년 만에 반등을 이뤄낸 가전산업이 예상치 못한 무역 장벽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25%)를 비롯해 중국과 베트남 인도에 각각 34%, 46%, 26%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력 생산기지로 활용해왔던 지역인 만큼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사실상 자국 내 생산을 강요하면서 두 회사는 생산 전략을 재검토하는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세 여파로 인한 가격 상승은 결국 소비자 부담 증가와 기업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면서 불확실성도 커 장기적인 투자 결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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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제공] |
◆예상치 뛰어넘는 1분기 실적도 트럼프 관세 덕?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1분기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1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84%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치(5조1000억원)를 크게 상회했다. 메모리 반도체 출하량 증가와 갤럭시 S25 시리즈 판매 호조가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매출 22조7447억원, 영업이익 1조25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분기 22조원을 돌파했으며, 영업이익은 6년 연속 1조원대를 유지했다. 구독형 서비스와 냉난방 공조(B2B) 사업 성장 등이 실적을 뒷받침했다.
이 같은 '어닝 서프라이즈'의 뒷면에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영향도 있다. 증권가는 2분기 본격적인 관세 부과로 인한 가격 인상 전에 미리 제품을 구매하려는 '풀인(Pull-in) 수요'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호실적은 1분기 일회성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관세를 부과한 미국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모두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미국법인 매출은 약 41조원, LG전자의 미국법인 매출은 약 15조원이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 1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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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에 위치한 베스트바이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삼성 TV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 인도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가전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현지 판매되는 제품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이 선박이나 항공편으로 미국에 도착하면 미국 세관에서 관세를 부과한다. 수입업자 즉 현지법인이 관세를 즉각 납부해야 통관이 가능해 현지 판매가격은 관세까지 포함한 모든 비용을 고려한다.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가격 경쟁력 약화는 판매량 감소와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KB증권에 따르면 베트남(관세율 46%)에 실제로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 스마트폰(MX)사업부가 생산지 이전 없이 관세 부과를 100% 흡수한다면 스마트폰 영업이익의 3분의 1이 직접적 관세 영향에 노출된다고 분석했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관세 인상분을 전부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사실상 마진을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한 숨을 쉬었다. 또 "결국 일부는 기업이 감내해야 하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실적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는 2분기다. 2분기 실적으로 시장은 관세 대응 능력을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관세 확대에 따른 판매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판매량 축소를 최소화하는 선에서의 절묘한 가격 정책으로 2분기 실적을 최대한 방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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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위치한 삼성전자 생활가전 공장에서 직원들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관세 0%' 멕시코가 정답이 아닌 이유
당장 미국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거나 관세가 0%인 멕시코 공장 가동을 늘리는 방안이 가장 쉬운 해결책처럼 보인다. 멕시코는 현재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관세가 0%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 상당 수를 멕시코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사장)은 지난 7일 열린 신제품 행사에서 "북미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대부분 멕시코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관세 이슈는 경쟁사 대비 적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문제는 USMCA의 재협상 여부다.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은 내년 7월 재개정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체결했던 USMCA는 새 협상을 앞두고 중국의 우회 수출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지금은 가전제품의 부품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들여와 멕시코에서 조립해 완제품을 미국에 팔아도 관세가 0%다. 하지만 중국산 등 부품이 일정 비율을 넘으면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멕시코로 (부품을) 보내서 미국으로 간접 수출하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지만, 향후 USMCA 개정 협상에서 이런 간접 수출을 막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이제는 단순히 비용 관점에서 베트남을 택하기보다는 시장 접근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미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생산시설을 늘리는 선택지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기존 인프라, 숙련된 노동력, 공급망 네트워크 등을 고려해야 하고, 이에 따른 투자 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규모 공장 건설, 물류망 재정비, 협력사 이전 등을 모두 고려하면 수천억 원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높은 인건비와 부품 조달 비용 부담도 발목을 잡는다. 일부 업계에서는 미국 현지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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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 대표(앞줄 가운데)가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멕시코에 관세가 영원히 0%가 유지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에는 무리"라며 "개별 협상에 따라 관세가 조정될 영향이 크고 중국, 베트남, 인도도 각각 협상에 나서고 있어 각 나라의 셈법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대처 방식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가전업계는 세계 각지에 퍼진 생산라인을 활용해 대응한다는 계획을 최선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 같은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이미 세계 각 국에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전자는 한 제품을 여러 생산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스윙 생산 체제'를 확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최적의 생산지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1%라도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최대 과제"라며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서 높은 관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저하는 생사가 달린 절박한 문제"라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