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시정' 위한 제2 플라자 합의 나오나
LNG 개발 투자도 협상 재료
'마러라고 합의' 종용 가능성도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해외로부터의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한국시간 9일 오후 1시 1분 전면 발동됐다. 일본에는 합계 24%의 상호관세가 적용된다.
일본 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7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갖고, 양국 고위 당국자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이 관세 협의와 관련해 양자 공식 채널을 만든 건 일본이 처음이다.
협상 대표는 일본에서는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이, 미국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맡는다.
일본이 발 빠르게 나서고는 있지만 트럼프의 관세 채찍을 피할 대응 수단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엔저 시정'을 내세운 환율 협의, 미국산 LNG 개발 투자가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로 보인다. 미국 측이 마러라고 합의를 일본에 종용할 가능성도 있다.
![]() |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 [사진=신화사 뉴스핌 특약] |
◆ '엔저 시정' 위한 제2 플라자 합의 나오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엔화 약세·달러 강세를 줄곧 문제시해 왔다.
지난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엔화든 중국의 위안화든 그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우리에게 매우 불공정한 가져 온다"며 "관세는 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며,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자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채찍으로 삼아 달러화 약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5년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영국, 프랑스, 서독 등과 달러화 약세에 합의했던 '플라자 합의'의 재연이다.
베센트 장관도 7일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일본은 비관세 무역 장벽이 특히 많은 국가"라며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문제 등에서 이번 협상이 매우 결실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이 불만을 가진 엔저가 가속화된 것은 2022년 이후다. 그 해 초에는 1달러=115엔 수준이었던 달러/엔 환율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등을 배경으로 지난 1년 동안 140~160엔 사이에서 추이했다.
엔저는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일본 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도 엔저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에 떠밀리듯 추진해왔던 측면이 있다.
BOJ 내부에서는 엔저 시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속도가 완만해지면 "금리 인상 판단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급격한 엔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있어 미일 간 인식 차이는 크지 않아, 양국이 시작할 협의가 이러한 엔저를 수정하기 위한 대규모 합의로 발전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허들은 높다. 지금은 1985년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미일이 공동 개입에 나선다 하더라도, 환율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효과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달러 약세 유도는 자의적인 환율 조작을 금지한 주요 7개국(G7) 합의에 저촉된다.
일본 정부도 급격한 엔고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과도한 엔고가 되면 수출기업의 수익 증가 효과가 사라지면서 관세 부담과 함께 이중 타격이 될 수 있다. 임금 인상 분위기도 꺾이고, 내수 성장으로 가는 선순환이 멀어질 수 있다.
![]() |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 [사진=블룸버그] |
◆ LNG 개발 투자도 협상 재료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투자도 협상의 재료로 거론되고 있다.
베센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이 일본의 관세 협상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8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 그리고 대만이 많은 가스관과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관세 협상에서) 그들이 먼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원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센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참여할 것이고, 우리는 무역 파트너들이 무엇을 제안하는지 지켜볼 것"이라면서 "그들이 확실한 제안서를 갖고 협상 테이블에 오면 좋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시바 총리도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투자 확대를 포함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폭넓은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월 시정연설에서 알래스카의 LNG 사업과 관련해 "일본과 한국이 파트너가 되길 원하며, 각각 수조 달러가 투자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2월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산 LNG의 일본 수출 확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
![]() |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마러라고 합의' 종용 가능성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작년 11월 작성한 '국제 무역체제 재구성을 위한 지침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미국의 채무 부담을 관세나 안보와 결합해 일부 해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외국 중앙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100년물 무이표채(Zero Coupon Bond)로 교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무이표채는 이자가 지급되지 않고, 100년 뒤 액면가에 적힌 금액만 찾아가야 한다.
주요 대상은 일본과 같이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들이다. 이자 한 푼 안주고 원금을 100년 뒤에 돌려주겠다는 국채를 누가 살까. 미란은 관세라는 채찍으로 사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마러라고 합의' 종용이다. 일본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미란의 발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가 많지만, 미국 정부가 일본과의 협상에서 이 애기를 꺼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