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홍 라이프자산운용 변호사
내 주식은 왜 오르지 않을까? 한국 증시는 왜 저평가받을까?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최근 뜨거운 상법 개정 논쟁 속에 있다. 이는 단순히 법률 조항 하나를 바꾸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오랜 관행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호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찬성 측은 '소수주주 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대의를 외치고, 반대 측은 '경영권 위축'과 '기업 사냥꾼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위기론으로 맞선다. 이 팽팽한 대립의 기저에는 '소수주주 vs 지배주주'라는 익숙하고 자극적인 프레임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은 과연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당연해 보이는 대립 구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관계는 정말 서로의 이익을 빼앗는 제로섬 관계일까?
주주는 지분율의 많고 적음을 떠나 '회사의 주인'이다. 그들의 가장 본질적인 이해관계는 '보유한 주식 가치의 극대화'라는 단 하나의 목표 지점에서 만난다. 회사가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 모든 주주의 자산이 늘어나고, 반대로 무리한 투자로 위기에 처하면 모든 주주가 함께 손해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운명 공동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들을 대립 관계로 인식하는가? 갈등의 진짜 진원지는 '주주'라는 동일한 정체성 내부가 아니다. 문제는 지배주주가 '주주'라는 얼굴과 '경영자(혹은 그룹 총수)'라는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때 발생한다. 이 두 역할은 때로 심각한 이해상충을 일으킨다.
지배주주는 '주주'로서는 회사 가치를 높여 자신의 지분 가치를 극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경영자'로서는 회사 자원을 이용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장사의 자금과 기술력으로 키운 알짜 사업부를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사에 헐값으로 넘겨 이익을 빼돌리는 식의 '터널링(tunneling)'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행위는 회사 전체의 가치를 명백히 훼손하여 소수주주는 물론, '주주'로서의 지배주주 자신에게도 손해를 입힌다. 하지만 '그룹 총수'로서는 지배구조 유지나 부의 편법 승계 등 다른 곳에서 그 이상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결국 지금의 갈등은 '지배주주 vs 소수주주'의 대결이 아니다. 정확히는 '사익을 추구하는 경영자 vs 회사 전체의 이익을 지키려는 주주들'의 구도다. 이 구도에서 소수주주는 단순히 자신의 작은 이익을 지키려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재산인 '회사의 곳간'에서 부가 부당하게 새어 나가는 것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개정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소수주주가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다. 이는 소수주주의 표를 모아 자신들을 대변할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가능성을 열어주기에, 지배주주 일색인 이사회를 견제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또한, 전자투표제의 전면적인 도입과 활성화도 시급하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소액주주가 손쉽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주주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함께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파수꾼'으로서의 주주 역할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금번 상법 개정과 추가 개정에 대한 진지한 우려도 존재한다. 첫째, 소송 남발로 경영이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우려는 역설적으로 그간의 '과감한 결정'이 얼마나 견제 없이 이뤄졌는지 묻게 한다. 개정의 핵심은 미래를 위한 '도전적 경영'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원을 동원하는 '무모한 경영'을 막자는 것이다. 우리 법은 이미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강력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이는 경영진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이다. 즉, 선의의 실패는 보호하되, 명백한 배임 행위나 태만은 막겠다는 취지이므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위축될 이유는 없다.
둘째, 회사를 키운 '기업가 정신'을 부정한다는 비판이다. 상법 개정은 기업가 정신을 꺾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가 정신이 창출한 가치가 특정 개인에게 부당하게 착취되는 것을 막아, 그 위대한 정신의 과실이 모든 주주에게 지분대로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장치다. 진정한 기업가 정신은 파이를 키워 모든 이해관계자와 이익을 나누는 것이지, 자신만의 몫을 부당하게 늘리는 것이 아니다.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다지는 길이며, 이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상법 개정 논의를 '주주 간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낡고 왜곡된 프레임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 논의의 본질은 '경영 책임의 정상화'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기업 가치의 정상화'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우리 기업들이 가진 본질적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제 그만 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그 핵심 원인으로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취약한 주주권이 지목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이사의 충실의무를 바로 세워 경영 책임을 정상화하는 것은,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게 하여 모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제 소모적인 대립의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경영 책임의 정상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바로 세워 모든 주주가 함께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