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민박' 중인 지구의 백성들
소리없이 함박눈이 내리는 시간이 오고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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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길 위로 소리없이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 오광수] 2025.11.03 oks34@newspim.com |
반달만한 집과
무릎만한 키의 굴뚝 아래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며
이 세상에 여행 온 나는 지금
민박 중입니다
때로 슬픔이 밀려오면
바람 소리려니 하고 창문을 닫고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끝이 아파오면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낮은 천장의 불을 끕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톱만한 저 달과 별
내 굴뚝과 지붕을 지나 또 어디로 가는지
나뭇잎 같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오늘밤도 꿈속으로 민박하러 갑니다
- 권대웅 '민박' 전문. <시집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문학동네)>
모든 것이 적멸(寂滅)에 드는 시간이다. 11월이 되면 빗줄기도 조용조용 저녁 어스름에 흩뿌린다. 낙엽은 사그락거리면서 거리를 배회한다. 걷다가 지친 낙엽도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 끝이 아파오면/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간다.
어느 날 창문을 열면 소리도 없이 첫눈이 내려서 세상을 뒤덮고 있으리라. '때로 슬픔이 밀려오면/ 바람 소리려니 하고 창문을 닫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할 때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슬픔이거나 기쁨이 이사를 하고, 소리 없는 함박눈처럼 이별이 흔해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또 다른 봄이 올 거라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견뎌야 할 때다. 우리 모두 '민박' 중인 지구의 '백성'들이니.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