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 경쟁 격화…美·中 성장세에 韓 '고전'
韓 100조 투자 계획…AI 투입 자원은 제한적
입법조사처 "韓 자원 총량, 절대적으로 부족"
'총량'보다 '구조' 주목…민간 주도 전환 필요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민간·정부를 총동원한 수백조원대 '투자 전쟁'에 나서면서 글로벌 기술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AI 100조 투자'는 정부 재정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규모·속도·투자 구조 모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은 오픈AI·앤트로픽(Anthropic) 등 선도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하고, 중국은 국가 주도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AI 경쟁력의 '판' 자체가 달라지는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투자 전략의 방향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 AI 스타트업 투자, 美 763억·中 52억…韓 6억달러뿐
14일 정부와 국내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한국은 향후 5년간 1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AI 3대 강국' 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00조원 투자 규모 자체는 국내 AI 산업 기반을 확장하는 데 의미 있는 자원으로 평가되지만, 미국·중국 등 주요 선도국들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미국의 AI 투자 규모는 이미 단일 국가 차원을 넘어섰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 AI 스타트업 투자액은 763억달러(약 103조원)로 한국의 '5년간 100조원' 투자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올해 1분기에도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AI 기업에 대형 투자가 집중되면서, 이 기간에만 609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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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기업인 오픈AI는 올해 3월 400억달러(약 53조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가 3000억달러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면 불과 반년 만에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앤트로픽(35억달러)과 xAI(누적 121억달러) 등 주요 AI 스타트업도 연쇄적으로 조 단위 투자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도 규모에서는 미국에 뒤처지지만, 국가 차원의 장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투자는 2017년 158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경기 둔화와 기술 안보 갈등 등이 맞물리며 매해 하락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AI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52억달러로 미국의 약 7%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은 정부 주도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면서 국영펀드 등 공공 자본을 꾸준히 민간 생태계로 끌어들였다. 올해 AI 연구·개발(R&D) 예산도 전년 대비 10% 증가한 3981억위안에 달했다.
또 중국 AI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선별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빅테크가 공동 투자하는 'AI 타이거즈(Tigers)'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로부터 4억달러를 유치하고, 최근 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UAE)와도 AI 솔루션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문샷(Moonshot) AI와 바이촨(Baichuan) AI 등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모두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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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의 AI 투자는 미국·중국 대비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 AI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2022년 5802억원(약 3억9000만달러) ▲2023년 5536억원(3억8000만달러) ▲2024년 9694억원(6억6000만달러) 등으로 최근 1년 사이 크게 늘었지만, 양대국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다.
류승희 삼정KPMG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거 미국과 중국이 고율 관세 등 경제적 수단을 통해 상호 견제를 해온 양상이 AI 기술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향후 이런 격돌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AI 질서 재편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인 정책과 선택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韓 100조 투자 '구조 문제' 지적…"재정 중심 단일 구조"
한국이 제시한 'AI 100조원 투자'는 겉으로 보면 대규모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중국이 구축한 투자 생태계와 질적으로 다른 구조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정부 재정 중심의 단일 구조가 고착돼 있고, 민간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는 통로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 그 핵심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 100조원은 AI뿐만 아니라 반도체·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 함께 배분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어, AI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자원의 규모가 제한적이다. 한국의 AI 인프라 투자도 GPU 확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확보 예정 물량은 1만3000장 수준으로 글로벌 선도 기업이 보유한 GPU 규모와 비교하면 격차가 매우 크다. 지난해 오픈AI는 무려 72만장의 고성능 GPU를 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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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미국·중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가 수백조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1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AI를 포함한 여러 첨단전략산업 등에 나눠 활용할 예정"이라며 "세계 3위의 꿈을 위해 세계 3위 정도의 자원이 투입돼야 하지만, 우리의 자원 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구성 요소 자체도 주요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각국의 AI 정책 수단은 미국 124개·영국 93개에 달하지만, 한국은 양 국가의 절반에도 달하지 못하는 41건에 그쳤다. 이는 정책 수단의 숫자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과 민간투자 촉진, 규제 정비, 산업 전환 지원 등 산업 확장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한국의 정책 설계는 공급 측면에 기울어 있는 구조다. 데이터 구축·인프라 마련·기반기술 연구개발 등에 비중이 실리는 반면, 산업·서비스 분야에서 AI를 실제로 도입해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미국과 영국이 공공 AI 도입과 규제 혁신, 산업별 AI 전환 촉진 등 수요 중심 정책을 통해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는 구조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결국 입법조사처는 한국의 현실적 자원 규모를 고려할 때 '양적 경쟁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대신 투자 구조를 바꿔 민간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산업이 자발적으로 확장되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부 재정 중심의 일회성·하향식 투자가 아니라 민간 투자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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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특히 공급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AI 기술을 실제로 사용하는 산업과 서비스 분야의 수요를 키우는 것이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는 핵심 열쇠라고 강조한다. 공공 부문의 AI 도입을 확대하고, 규제 정비를 통해 산업별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식이 민간 자본의 참여를 촉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경로라는 설명이다. 이런 정책 전환 없이는 100조원 투자가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단발성 효과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이에 한국이 AI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자 총량을 늘리는 것보다 투자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AI 인프라와 기업 성장을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한국이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와 요인들이 빠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경쟁력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규제를 정비해 경쟁국보다 조금 더 나은 AI 환경과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공공 부문이 선도적인 AI 수요자가 돼 신뢰할 수 있는 AX 경험을 확산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기업·기관·개인이 AI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