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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판사에서 여당 대표까지…'미스터 스마일'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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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와보니 실망도…아내 말 듣고 크게 반성"
"옛 정치, 여야 구분 없이 동료애·끈끈함 있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가난하지만 열기 있고 나라사랑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참 그리운 그 시절이 제 인생의 밑바탕이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출신 황우여 상임고문은 20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판사,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삶을 돌아봤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30일 촬영됐다.

황 상임고문은 20년 넘게 판사로 재직하며 MBC 언론통폐합 결정을 뒤집는 'MBC 주식 반환' 판결, 국내 1호 재산분할 판결, 국민저항권을 인정한 명동 사건 등 굵직한 재판을 담당했다.

정계 입문은 이회창 당시 대법관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황 상임고문은 "정치 가문인 아내는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자녀들은 절연하듯 반대했다"며 당시의 복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정치 초기에 실망과 우려도 컸지만 아내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을 앞두고 당대표실을 광주로 옮기는 등 57일간 호남 곳곳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다. 그는 "당시 우리 당이 최초로 호남에서 두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진=뉴스핌TV]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난 황 상임고문은 송림초·인천중·제물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와 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69년 제10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를 비롯해 춘천·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뒤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을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어 황 상임고문은 1996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16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인천 연수구에서 내리 당선되며 5선 의원을 지냈다.

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국회 선진화법안 등을 통과를 주도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첫 새누리당 대표를 맡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올해는 21대 대선 경선과 당 전당대회에서 각각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황앤씨로펌 대표변호사이자 당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황 상임고문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오늘은 5선 당대표 출신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 고문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고문님, 안녕하세요. 요즘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황우여 상임고문, 이하 황 상임고문)
그동안 밀려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잠깐 외국에도 갔다 오고요. 동지들이 고생하면 제가 변호사니까 찾아뵙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신 기자)
정치 후배님들도 많이 만나시나요?

▲(황 상임고문)
네, 연락 오면 제가 만나러 가고요.

-(신 기자)
네, 고문님 그럼 이제 어린 시절 이야기 좀 여쭤볼게요. 1947년 인천 송림동에서 자라셨는데 당시 어떤 꿈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송림동이 인천에서 아주 어려운 동네예요. 인천이 그때는 아주 조그마한 도시였는데 수도국산 뭐 이러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 반이 대개 한 80명으로 12반까지 있어서 한 학년이 거의 1000명 가까이 되고. 한 학교는 5000~6000명 되는 그런 학교를 어렸을 때 다녔죠. 친구들하고 잘 지냈고 가난했지만 안전하고 화목하고 뭔가 열기가 있는 그러한 생활, 그때 당시는 나라 사랑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국산품 쓰자고 하고, 교장 선생님도 말씀하실 때는 웅변조로 얘기를 하시고 굉장히 독립투사 같은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고 또 이제 6.25 전반에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천막에서 공부했는데 그래도 참 그리운 시절이었죠.

-(신 기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서울대 법대 전공하시고 28살이라는 사실 되게 어린 나이에 판사 생활을 시작하셨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꿈이 판사셨는지.

▲(황 상임고문)
고시 붙기는 69년도 대학교 졸업하면서 합격을 해서 군대 갔다 오니까 사법대학원 2년에 군대 갔다 오니까 5년. 그렇죠. 만으로는 한 스물일곱 정도에서 판사 시절을 시작했는데 인천이 법조 분위기가 아니에요. 고시 보고 그러는 것보다는 장사하고 특히 이공계가 강하고 그런 도시 분위기였는데 저도 그때 법대가 뭔지 모르고 갔는데 그 계기가 맨 처음에는 이제 농대 가려고요. 이공계에 가서 공부하다가 우리 교장 선생님이 '땀을 흘리는 것이 최고다'라고 해서 '유한흥국(流汗興國) 땀을 흘려야 나라가 흥한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땀 제일 많이 나는 학과가 농과다 그래서 제가 농과를 가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집에 농토가 없잖아요. 그때 역사 토인비 신드롬이 있어서 역사학자가 되려고 문과로 바꿨는데 아버님은 자꾸 상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제 은행이 취업이 제일 좋은 때니까.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겼고, 특별히 마음도 안 정해지고. 또 특별히 잘하는 일도 없는 사람은 법대가 좋다라는 유진호 선생님의 수필을 하나 읽었어요. 그래서 법대를 가게 된 거예요. 고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제가 산 타는 걸 좋아해서 암벽 등반에 아주 매료 당해갖고 대학교 3학년 넘어까지 그러고 나니까 영장이 나오는 거예요.

급한 마음에 '아 그러면 나도 변호사 시험을 하나 따놓고 취업 걱정에서 벗어나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그때부터 고시를 봐서 다행히 이제 졸업할 때 합격을 해서 이제 영장 기피는 안 했죠. 제가 만약에 그때 고시가 안 됐으면 저는 군대 갔다 와서 방향을 다른 걸로 바꾸려고 마음을 먹고 했는데 다행히 변호사 자격을 땄죠.

-(신 기자)
그러면 판사로는 총 몇 년을 재직하셨나요?

▲(황 상임고문)
한 20년 넘게 했죠. 부장 판사까지 했으니까요.

-(신 기자)
돌아보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화나 이런 게 있으셨을까요?

▲(황 상임고문)
큰 재판을 많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거는 민사부장 할 때에는 MBC가 언론 통폐합을 해서 다 이렇게 묶였어요. 근데 그걸 '강압에 의해서 한 것이다'라고 해서 취소하는 소송이 들어왔어요. 제가 보니까 '이거는 좀 우리 민사법상 문제가 있다. 취소해라 다시 정당하게 수용을 하든가 뭐 다른 계약을 해라' 이런 판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MBC 사건이 그때 사회 이슈가 됐었고.

그리고 제가 가정법원에 있을 때는 재산 분할을 처음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최초의 1호 사건이었어요. 그때 법이 바뀌어갖고 이혼할 때 위자료가 아니라 재산을 나눠가지라고 하는 게 법이었는데, 저는 남자 대학생과 여자 대학생이 결혼해 가지고 가정은 여자 대학생이, 부인이 책임지고 또 외부에서 여러 재정적으로 충당하는 건 남자가 했다고 하면 두 사람 사이에 그 재산은 공동으로 모은 것으로 합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재산을) 반반씩 하라고 판결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뒷말이 많았죠. 국제적으로는 대개 여자한테 3분의 1 주라 그러는 게 기준이었나 본데 우리는 양성평등 아니에요. 그리고 또 부부가 그렇지 않고는 누가 가정을 지키겠어요? 그때만 해도 대부분 주부들이 가정을 지키고 아기 기르고 그런 데 전념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판결이 기억에 남고.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제가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단을 내린 판결이 있었어요. 명동 사건이라고 굉장히 큰 사건인데 성직자도 있고 그래서 제가 사실은 피하려다 목사님들이나 여러분들 얘기가 그냥 맡겨줬으면 하는 게 옳다 그래서 했죠.

그때 전상석 부장께서 이제 재판정이셨는데 (저항권 문제를) 한번 연구해서 써보라고 해서 제가 각종 문안을 섭렵하고 저항권 부분을 정리했죠. 그 판결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국민 저항권에 대한 판결이었죠. 대법원에서도 그 부분은 받아들여지고 그랬어요.

-(신 기자)
판사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잘 하시고, 오래 하셔서 애정이 많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정계로 넘어오셨을 때 고문님 스스로나 아니면 가족분들 우려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원래는 교수 하라고 우리 선생님이 교수 수업을 시켰는데 판사 한 다음에는 그걸 천직으로 생각하고 판사에 충실하려고 했죠. 그런데 당시 우연치 않게 MBC 판결 같은 것이 뒷말이 있었어요. 당시 이회창 대법관께서 감사원장을 가시면서 저보고 같이 좀 가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아주 훌륭한 법관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덕망이 높은 분이거든요.

제가 기도하고 나서는 그냥 모시고 가야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고 감사원까지 가는 것은 괜찮았는데 감사원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겹치면서 결국은 이회창 감사원장이 정계에 들어오면서 또 저보고 가자고 그러셔서 그때는 좀 어떡할까 하고 고민했죠. 감사원까지만 해도 사법부지만 정계는 우리 사법관들로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거거든요.

제가 같이 하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우리 아내가 정치인 집안의 딸내미예요. 그래서 아내는 아버지 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결정이 된다면 자기는 따르겠다고 그랬는데 우리 애들은 아버지하고 딱 절연을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정치한다는 말을 입 밖에도 안 내놓고 그래서 큰딸이 결혼할 때 아무도 몰랐어요. 교회에서 조그맣게 모여서 결혼했는데 큰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겨레 신문사 기자였어요. 걔가 와보더니 '저 사람이 네 아버지냐' 그래가지고는 요만한 기사를 사후에 냈어요. 그래서 알려지게 됐죠. 그런데 애들이 아버지가 정치인이면은 어떤 그런 데 휩쓸릴까 봐 저도 애들은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죠.

-(신 기자)
자녀분들은 반대가 좀 있었더라도 사모님은 이제 정치 생활 하실 때 고민 상담이나 조언 같은 것도 많이 하셨겠어요.

▲(황 상임고문)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주변에 판사나 이런 고위 관료로서 대하던 사람들하고 다른 거예요.
그래 갖고 어떤 때 실망도 되고 너무 걱정도 되고요. 집에 와서 나도 모르게 좀 훌륭한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불만스럽게 했나 봐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이 성경에 다윗 임금을 따라다니던 한 300명가량, 요샛말로 하면은 불한당이나 정말 오갈 데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다윗 임금은 그런 사람들하고 나중에 훌륭한 임금이 되는데 내가 볼 때는 당신 주변의 사람들 아주 훌륭하더라' 이러더라고요.

그때 크게 반성했죠. 이게 내 문제구나 하고. 그래서 주변 분들을 평하고 그러는 거를 제가 딱 금하고 '그래, 맞아. 다윗 임금과 같이 했던 사람들보다는 100배 훌륭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이제 마음을 바꿨고요.

우리 사모님들이 정치인들한테 큰 영향을 미쳐요. 고생하는 것도 우리가 좀 알아드리고 그래서 남편의 일에 그냥 따른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서 잘 좀 대우를 해 드렸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애들은 반대한다기보다도 그걸 이제 절연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우리는 우리다' 그러는데 우리 애들이 그게 좀 강해가지고요. 그런데 선거 때는 아주 열심히 도와주죠.

-(신 기자)
정치 첫 시작을 신한국당에서 하셨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당시에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황 상임고문)
지금은 완전히 자유롭고 선수나 이런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정치 분위기인데 옛날에는 선배들에 대한 것이 아주 엄했어요. 선수에 따라서 아주 딱 정해져 있고 그건 벌써 옛날 얘기죠. 그때는 선배들한테 배우려고 그러고 초선에는 뭘 하고 재선에는 뭘 하고 이게 다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대로만 이렇게 잘 진행하면은 배울 수 있고 또 동료들도 형성이 되고 그러는 분위기고. 그때는 국회의원을 '선량'이라고 그래서 상당히 존경하는 분위기고 지도력이 부여되는 그런 시기였는데 벌써 옛날 얘기죠.

-(신 기자)
정치하시면서 어려우실 때 도움이나 조언을 받았던 정치인 분들도 있을까요?

▲(황 상임고문)
그때 당시에는 저희가 우리 당내뿐만 아니라 여야가 참 친했어요. 아주 친해서 어려운 일이거나 뭐 이렇게 의논하고 서로 의지했던 게 김영진이라고요. 해남 완도 출신 국회의원인데 나보다 선수는 한 해 빠르셨고 나중에 농림부 장관도 지내시고 그런 분인데 같은 이제 교회 장로로서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누면서 우리 당과 민주당의 당론에 좀 어긋나더라도 누가 뭘 하겠다 그럴 때는 서로 도왔어요. 입장을 같이 하고 그래서 당내를 설득하면서 그때 그렇게 했습니다.

-(신 기자)
당시가 조금 더 끈끈했던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황 상임고문)
여야를 넘어서도 뜻이 맞고 올바른 일이라고 하면 마음을 합치는 의원들이 형성이 되고 그랬어요.

-(신 기자)
새누리당 대표도 역임하셨잖아요. 사실 새누리당 때도 내분이 굉장히 심하고 당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혹시 그때 힘들면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황 상임고문)
새누리당 당대표를 할 때는 그때 대선을 치러야 되는 당 대표였거든요. 어려운 자리죠.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당 대표의 최대 임무가 대선을 성공시키는 거였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핵심이 호남이 우리 당을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일 것 같아요.

대선 기간 동안에 대표실을 광주로 옮겼어요. 그래서 광주에서 조그마한 호텔에서 머물면서 지냈죠. 57일 동안 호남을 샅샅이 다니면서 선거 유세하고 또 무슨 민원이 있으면 우리가 그때 여당이었으니까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최고위회의도 웬만하면 내려오라고 그래서 거기서 하고 이렇게 하면서 호남 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 저희가 두 자릿수의 지지를 받았어요. 최초죠.

수도권에는 호남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거기서 20% 이상의 지지가 나왔다라고 저는 보는 거죠.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 또 한편에서는 호남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호남이 아주 산천 경계가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있어요. 그래서 음식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또 호남 분들이 아주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해요. 그래서 한 번 이렇게 인연을 맺으면 아주 절대적이에요. 지금도 그분들하고 교우를 하고 이렇게 지내는데 좋은 추억이 됐죠.

-(신 기자)
고문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호남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한데요.

▲(황 상임고문)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현지인의 중용이에요. 수도권에 와있는 호남 출신 분을 장관에 앉히고 또 무슨 귀한 일을 맡기고 그러는 것도 고맙지만 현장에 있는 분들 직접 불러야 호남인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호남에서 생활하는 호남인을 발탁해 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와있는, 고향만 호남인 분들만 있다면 호남분들이 '우리도 다 서울 가야 되잖아요' 이렇게 느끼거든요. 그 말은 제가 아주 뼈아프게 받아들여서 그 후에 우리 당에게 제가 '지방을 우대한다고 할 땐 그 지방에 있는 분들을 모셔서 정무직이나 당직을 드리는 게 맞다'고 얘기하죠.

-(신 기자)
고문님 혹시 별명 뭔지 알고 계세요? '어당팔'이라고 '어수룩하지만 당수가 8단'이란 별명인데 혹시 그 별명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요.

▲(황 상임고문)
정치부 반장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제가 당수는 모르겠지만 검도는 7단에요. 당수는 입문도 안 했는데 이제 (기자들이) 저 사람이 뭘 할까 하고 보면은 '그래도 열심히 해서 일을 해결해내는구나' 생각해서 칭찬 반 놀리는 것 반으로 지은 별명인 것 같습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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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18일 한강공원서 개최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 : DAY OFF SEOUL'이 오는 17일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모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올해 축제는 '한강 위에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가는 청년 문화 축제'를 주제로 마련된다. 음악과 피크닉, 한강, 가을을 결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 참여와 청년 예술가 발굴을 함께 꾀한다. 청년 예술가에게는 시민과 만나는 무대를,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축제의 중심은 청년 음악가들의 버스킹 무대다.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히든스테이지' 출신의 김은찬밴드,신직선,윤태경,윤준,채수빈,심각한 개구리, 채비(Che!vee), 혼즈(Hon'z) 등 10팀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히든스테이지' 대상 심각한 개구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특히 지난 7일 열린 '히든스테이지'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심각한 개구리를 비롯해 최우수상 윤태경, 우수상 김은찬밴드 등 수상자들도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경연 무대에서 실력을 겨룬 청년 음악가들이 이번에는 한강 야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더해 특별 초청 무대도 마련된다. 뉴올리언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재즈밴드 '김루꾸밴드'와 국악·비보이·아크로바틱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팀 '라스트릿크루',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볼거리를 더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부터 재즈와 퍼포먼스, 비트박스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사진 위쪽부터 라스트릿크루, 김루꾸밴드, 비트박서 잭브라이언(Jackbryan).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시민도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참가 희망자는 축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 가능하다. 신청자의 자기소개와 활동 경력, 희망 공연곡과 장르, 공연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참가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참가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킹' 무대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뮤지션의 공연과 함께 시민에게도 직접 무대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대 밖에서는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서울의 향을 찾아서'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해 시향한 뒤 원하는 향료를 더해 자신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 수 있다. 여러 향을 직접 맡아보고 취향에 맞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강 포토 스테이션'에서는 축제 현장의 즐거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 사진 인화 부스 '한강로 사진관'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 축제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한강 포토 스테이션 [사진=감엔터테인먼트] 2026.10.08 taeyi427@newspim.com 음악과 한강의 풍경,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엽서에 적어 남기는 참여형 아카이브 프로그램 '한강 사운드 엽서'도 준비된다. 공연 관람에 더해 향수 제작과 사진, 엽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최 측은 "청년 음악가들이 시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들도 공연과 체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가을 한강에서 음악과 휴식을 함께 즐기는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2026-10-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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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직원 35명' 日 NEC…한달 인건비는 300만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NEC가 인공지능(AI) 에이전트 35명으로만 구성된 '무인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부서장부터 중간관리자, 실무 직원까지 모두 AI로 채웠으며, 한 달간 투입된 비용은 약 35만엔(약 300만원)에 불과했다. AI 에이전트 한 명당 월평균 비용은 약 1만엔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과 비교해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낮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14일 닛케이(日經)비즈니스에 따르면 NEC는 지난 8월 1일 '코퍼레이트 AI·워크포스 부문'을 출범했다. 9월 3일 기준 35명의 AI 에이전트가 소속돼 있으며, 경영진 역할을 맡은 AI부터 재무·전략 담당자, 실무 직원까지 일반 조직과 유사한 구조로 운영된다. 이 부서는 법무·인사 등 기업의 관리 업무 가운데 특히 경영기획에 가까운 일을 맡는다. 사내외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정보 현황판을 작성·운영하는 것이 핵심 임무다. ◆ AI 35명이 월 300만원으로 경영기획까지 NEC가 공개한 실증 결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용이다. AI 부서의 실증 기간인 7월 한 달간 AI가 정보를 처리할 때 발생하는 토큰 비용은 약 300만원이었다. 같은 업무를 사람이 수행한다면 인건비가 훨씬 많이 들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 에이전트 한 명당 단순 평균으로 환산하면 월 약 8만5000원이다. 다만 이 금액은 급여나 전체 운영비가 아니라 AI 모델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사용하는 토큰 비용이다. 시스템 구축·유지보수, 전력, 보안 관리 등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한 총비용과는 구분해야 한다. 실제 업무도 구체적이다. 재무 담당 AI는 매월 사내 결산 자료를 취합해 재무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가 분석 담당 AI는 매일 아침 자사와 경쟁사의 주가 동향을 정리한다. 또 다른 AI는 정부기관의 시스템 갱신 시기를 분석해 영업 대상으로 삼을 고객을 추려낸다. NEC 무인 부서 구성 [출처=닛케이비즈니스] ◆ AI가 AI를 평가하고 조직을 개선 이 부서의 특징은 AI가 단순히 주어진 작업만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에이전트들은 서로 역할을 나눠 자료를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한다. 예컨대 품질관리 담당 AI는 다른 에이전트가 만든 자료를 점검해 누락된 내용을 지적한다. 비용 관리 담당 AI는 토큰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 조직 전체에 공유한다. 재무 담당 경영진 AI는 AI 활용에 투입하는 비용과 성과를 비교해 투자 판단을 내린다. AI 경영진은 매주 '임원회의'를 열어 조직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AI 직원의 역할과 직책이 맞지 않으면 인사 면담을 거쳐 강등하는 사례도 나왔다. 사람의 조직에서 볼 수 있는 평가와 관리 절차를 AI 조직에도 적용한 것이다. 업무 중 오류가 발생하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수정하고 외부 환경 변화에도 대응한다. 실패를 점검하고 개선안을 적용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업무 수행 방식을 계속 다듬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종 평가와 의사결정, 거버넌스 통제는 사람이 담당하며, 사람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에도 직원이 개입한다. ◆ 사람은 AI가 만든 결과로 현실을 움직인다 NEC가 무인 부서를 만든 배경에는 AI 활용 방식을 바꾸려는 전략이 있다.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AI 자체가 독립된 조직처럼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다마 히로시 AI전환최고책임자는 "사람이 AI를 매번 사용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AI의 속도와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인적 자본과 AI 자본을 분리하고, 각각의 강점을 살려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제공하는 분석은 경영 판단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NEC 측은 기존에는 사업 부문이 보고하는 수치가 보수적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AI는 예측에 기반한 객관적인 수치를 제공해 사업 부문과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AI 부서의 업무 범위는 향후 총무 등 기업 관리 업무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곧바로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NEC의 입장이다. [AI 일러스트=오영상 기자] goldendog@newspim.com 2026-10-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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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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