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이국 땅에서 생활해온 한 실존적 자아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페이소스
시를 쓰는 일이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간의 천을 짜는 일이거나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
[서울=뉴스핌] 김용락 기자= "예외 없다 우리 안에는/긴 세월을 불어간 폭우의 흔적이 있다/그랬다 지난 삶은 여정이었고/여정이 삶을 이루었던 그런 나날들.../나를 바라보는 거기/지난 날들의폭풍과 폭우가 잠들어 있다/그랬나, 모든 삶은 그런 거였나/제 물길 스스로 지우며/아주 먼 곳으로부터/아주 먼 곳으로 노 저어가는/여정이라는 이름의 한 척 거룻배"('서시-나는 박물관에 간다' 부분)
"한 땀 한 땀 새겨지는 자바의 시간/그녀의 눈동자는 꿈을 짓고/무한을 그리는 점과 선 우주를 수놓았다/천천히 아주 천천히/염료 속에 젖어들어/새겨지는 세월의 문양//구루 사공, 바틱을 알면 인도네시아가 보일 거예요/그녀의 말은 깊고도 푸른 바다"('바틱2' 부분)
사공 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이자 시인이 새 시집 '불멸의 테이블'(한국문연)을 펴냈다. 이 시집은 0부에서 4부까지 표제시 '불멸의 테이블'을 포함해 총 57편의 시가 실려 있다. 반세기 넘게 이국 땅에서 생활해온 한 실존적 자아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페이소스가 짙게 드러나 있다. 더불어 일제 식민지 인도네시아에 망명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했던 독립운동가 장윤원, 징용에 끌려갔다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양칠성 같은 망명객들을 호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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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 경 시인(한·인니문화원장)이 새 시집 '불멸의 테이블' 을 출간했다.[사진=한국문연] 2025.12.02 yrk525@newspim.com |
본질적으로 이 시집은 인도네시아인 수디르만을 비롯한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 인도네시아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요노조 화가와 위디얀토 도예가 같은 예술가들, 인도네시아 고유의 직물이자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재 유산으로 등재된 바틱 같은 인니 고유의 직물을 소환해 역사와 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예술과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공 경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너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시는 나에게 일종의 영적 실천이었습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고통과 회복, 아름다움은 언어 이전의 언어로 나를 흔들었습니다"라면서 "시를 쓰는 일이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간의 천을 짜는 일이거나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으로 그리는 바틱 문양과도 같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도종환, 최준 시인이 발문과 해설을, 채인숙 시인 최경희 고려대 아세안센터 부소장과 해인 스님이 각각 표사를 담당했다. 해인 스님은(해인 인문학아카데미 대표)는 이 시집에 대해 "먼저 맨주먹 붉은 피로 조국의 독립에 목숨을 바친 고귀한 분들께 예경을 드린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영웅을 호명해준 시인의 열정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시인 혼자서 외롭게 불렀던 60여 편의 영화 같은 시집 '불멸의 테이블'을 이제 함께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사공 경 시인은 대구에서 출생해 경북여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인도네시아에 가서 한·인니문화원 원장을 지냈으며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를 비롯한 11권의 저서를 낸 바 있고, 2023년 제17회 세계한인의 날에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yrk52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