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심기가 편치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단결력도 예전만 못하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의원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준수하나,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차가 현저하다. 'K'자 형태로 갈라진 체감경기는 미국 중하층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도드라지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물가의 절대 수준 자체가 크게 높아져 있어, 한창 때에 못미치는 물가 상승률에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고(苦)는 계속 가중된다. 생계비 감당 능력(Affordability)을 둘러싼 논란, 일명 'A' 이슈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K'와 결합한 'A'는 마가의 정치 동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CBS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 성인 2명 중 1명(응답자의 50%)이 트럼프의 경제 정책으로 가계 형편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8%에 그쳤다. 식료품 비용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거나 벅차다는 이들은 전체의 72%에 달했다.
이 불만은 고스란히 내년 중간선거 판세에 투영될 참이다.
자연 트럼프의 조바심도 커졌다. 지난 17일에는 몸소 경제 성과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카메라 앞에 섰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분노에 찬 속사포를 보는 듯 했다"는 평가와 "자화자찬식 과장법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비아냥이 새어 나왔다. 트럼프 특유의 자신감이 아닌, 조바심만 부각하고 말았다.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는 트럼프의 불안감은 이미 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진 인터뷰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트럼프답지 않은 신중함이 묻어난 인터뷰였는데, 자신의 경제정책이 내년 11월 중간선거 승리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날의 인터뷰를 곱씹는 것은 트럼프의 다음 발언 때문이다.
"나는 미국으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자금은 미국 경제를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투자 유치가 내년 가을 선거 승리로 이어질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자금이 언제 투입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2분기에는 투입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확보했다는 투자금 중 상당수는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약속한 대미(對美)투자다. 트럼프의 말 속에는 '이들 자금이 제때 유입돼 경제적 효과를 발휘한다면 내년 선거도 해볼만 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따라서 중간선거 일정이 다가올수록 우방을 향한 트럼프의 독촉은 한층 거세질 공산이 크다.
작금의 한국처럼 환율 안정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는 외환시장 수급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 투자집행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 들 테지만,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는 기를 쓰고 그 돈을 받아내려 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화 환율의 무질서한 급변동 시 (연간 200억달러 한도의) 대미 투자금의 조달 규모와 시기 조정을 요청할 수 있고, 미국은 신의를 갖고 이를 검토한다"는 문구의 효력이 내년중 수시로 시험대에 오를 것임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조바심이 내년 원화 가치(환율)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 당국도 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는 '나홀로 개입'이 아닌 '미국과 공조 개입'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임시방편이라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조바심을 틈타, 중요한 실무 현안에서 신속히 협조를 얻어내는 기지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핵잠수함 추진과 핵연료 재처리다. 큰 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얻었지만 실제 건조까지는 미국 내부의 법률 검토 등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