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하반기 대규모 물량 확대…양산 안정성 승부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출하를 앞두고 각기 다른 전략으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 엔비디아에 HBM4를 먼저 공급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최고 수준의 성능을 앞세우고 있고, SK하이닉스는 하반기 대규모 물량 확대를 통해 시장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같은 HBM4를 놓고도 '선공'과 '물량'이라는 전략 차이가 뚜렷해지면서 시장 판도에 관심이 모인다.
◆ 삼성전자, 선공·기술력으로 주도권 노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설 연휴 이후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베라 루빈'에 탑재될 HBM4를 업계 최초로 양산 출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공급을 시작하겠다는 방침으로, '최초 공급' 타이틀을 확보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기술 측면에서도 공격적인 선택을 했다. 삼성전자는 HBM4에 10나노 6세대(1c) D램을 적용했고, 로직 베이스다이는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했다. 메모리와 로직, 패키지를 모두 갖춘 수직계열화 구조를 통해 최고 성능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실제 성능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전자 HBM4의 데이터 처리 속도는 JEDEC 표준(8Gbps)을 넘어 최대 11.7Gbps에 달한다. 이는 표준 대비 37%, 전 세대 HBM3E(9.6Gbps) 대비 22% 향상된 수치다. 단일 스택 기준 메모리 대역폭 역시 최대 3TB/s로 전작 대비 2.4배 높아졌다. 12단 적층 기술을 통해 최대 36GB 용량을 구현했다.
이 같은 전략에 대해 송재혁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코리아 2026' 기조연설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술력으로 대응했던 삼성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사장은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AI가 요구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고, 그것이 적합하게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HBM4에 대한 고객사 피드백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SK하이닉스, 물량·안정성으로 승부
반면 SK하이닉스는 공급 시점보다는 물량과 안정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회사는 다음달부터 HBM4 공급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했지만, 엔비디아 요구에 따른 일부 사양 수정(리비전)을 거치며 공급 일정이 다소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시점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섰지만, 연간 전체 물량 기준에서는 SK하이닉스가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올해 HBM4 전체 공급 물량의 절반 이상을 SK하이닉스가 맡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70%를 웃도는 수준의 물량을 잠정 배정받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 전략 역시 삼성과 차별화된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10나노 5세대(1b) D램을 적용하고, 로직 베이스다이는 TSMC의 12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성숙한 공정을 통해 초기 양산 안정성과 수율 확보에 무게를 둔 선택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충북 청주 M15X 팹이 하반기 본격 가동되면 HBM 생산능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패키징 전용 설비 확충과 P&T3 증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하반기에는 HBM4 생산량이 기존 주력 제품인 HBM3E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플랫폼이 본격 양산에 들어가는 하반기, 양사의 전략 차이는 HBM4 시장 판도를 가르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플랫폼은 그래픽처리장치(GPU) 1개당 탑재되는 HBM 용량이 늘어나고, NVL72 같은 랙 단위 시스템에서는 HBM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결국 하반기에는 단순 스펙 경쟁이 아니라 베라 루빈 물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의 HBM4가 엔비디아의 성능 요구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 구도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양강 체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HBM4는 단순히 생산만 가능한 제품이 아니라 고객사의 까다로운 성능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시장"이라며 "마이크론 변수가 이어질 경우 국내 업체들에는 중장기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kji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