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장기화 땐 '고환율 체제' 진입 우려
유가·원자재 상승 → 통화정책 제약 → 스태그 압력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이란 전쟁 여파로 달러/원 환율이 주간 거래 기준 처음으로 1500원을 돌파하면서 한국 경제가 '고환율 체제'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환율 상승이 일시적 충격을 넘어 구조적 흐름으로 굳어질 경우 수입 물가 상승과 금리 인하 제약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 위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번 환율 급등의 핵심 변수는 전쟁 자체보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흐름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달러/원 환율 역시 1500원대에 안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현재 환율 상승은 구조적 수급 불균형이라기보다 단기 충격 성격이 강하다"며 "수출업체 환헤지와 정책 대응 여력이 존재하는 만큼 1500원대가 바로 고착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투기적 수요가 유입될 경우 일시적인 1500원 상회 시도는 가능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 연구원은 "유가가 100달러를 넘기느냐가 핵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전쟁 대비 지금 유가가 고점 대비 39% 정도 올라왔는데 여기서 더 올라갈지가 중요한 것 같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작년 12일 전쟁처럼 현재 레벨을 유지하다가 잠시 꺾였다가 올라가는 등 상황을 거쳐 안정될 것인지, 그냥 점진적으로 안정될 것인지 봐야 한다.
시장에서는 환율의 방향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유가 100달러'를 지목하고 있다. 유가가 해당 수준을 돌파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구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원 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유가가 100달러에 안착하지 못하면 환율 역시 1500원대에서 머물기 어렵다"면서도 "반대로 유가가 100~120달러 구간에서 장기화될 경우 1500원이 새로운 기준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 장기화 여부도 핵심 변수다. 금융권에서는 통상 지정학적 충돌이 한 달 이상 이어질 경우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며 시장 영향이 본격화된다고 보고 있다.
민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처럼 초기에는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이후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된다"며 "헬륨 등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생산 지연과 비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원자재와 비료 가격은 이미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전쟁 장기화를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그는 "전쟁 초기에는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이 적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더 중요한 것은 유가 상승이 주요국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가격 상승이 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수준으로 이어질 경우 환율 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유가는 지난 번에 119달러를 갔었기 때문에 일단 120달러까지는 갈 수 있다고 본다"라며 "우크라이나전쟁 때는 130달러까지 갔었기 때문에 2차로는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500원대에서 장기 고착화될 경우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입 물가 상승이 상시화되면서 소비 여력이 약화되고,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도 어려워지는 '고환율·고물가·저성장' 구조가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상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확대되면서 수출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책 대응 여력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구두 개입과 시장 안정 조치를 통해 환율 상승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경우 통화정책 운용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 국면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본 유출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전문위원은 "당국의 방어 의지는 분명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1500원대가 새로운 기준이 되는 시점이 올 수 있다"며 "그 시기는 1년 내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이전 1100원대였던 환율이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1200원, 1300원대로 단계적으로 올라선 것처럼 이번 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또 한 번의 '환율 레벨업'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단순한 단기 변동성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새로운 환율 체제에 진입할지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dedanh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