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의 시즌 오픈작 '빅 마더'가 알고리즘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 언론 권력의 실체를 파헤친다. 저널리즘과 국가 권력, 정치 이슈 같은 무거운 소재를 현실 밀착형의 에피소드로 풀어내 마치 한 편의 '미드'를 보는 듯하다.
연극 '빅 마더'가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원작자 멜로디 무레는 다수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사회를 예리하게 포착하며 주목받은 작가다. 이 작품은 프랑스 연극계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5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성과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빅 마더'는 거대 권력의 음모를 폭로하려는 뉴욕 탐사 기자들의 사투를 담는다. 온라인 플랫폼과 SNS의 편의 속에 '조작된 사실'이 범람하는 환경과 마주한 현재의 상황, 기자들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실보다는 사용자들이 좋아하고 편안해 하는, 원하는 정보를 생산하고 의도를 감추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을 특정 의도대로 길들이는 과정과 진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풀어낸다.
오웬 그린 역의 유성주, 조한철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 만큼, 전혀 다른 에너지의 캐릭터를 빚어낸다. 조금 더 친근하고 거칠지만 정 많아 보이는 유성주의 오웬, 딱딱하고 꼰대같지만 중심이 단단한 조한철의 오웬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언론사란 조직의 숙명과 복잡한 가정사, 소중한 동료와 딸과의 관계 앞에서 고민하는 표정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가장의 얼굴이다.
알렉스 쿡을 연기하는 이강욱, 김세환 역시 각각의 색깔로 비슷한 듯 다른 인물을 그려낸다. 사장 아들이라 기자가 됐다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 가장 치열하게 '진짜 기자'가 되고자 몸부림 친다. 쿡의 가장 개인적인 욕망이 대의와 맞닿아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금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줄리아 역의 신윤지는 기자의 사명을 위해 죽을 각오도 마다치 않지만, 사적인 이유로 그 사명을 저버리기도 하는 캐릭터다. 가장 많은 장면에 등장해 복잡한 사연에 자꾸만 얽히고 방대한 텍스트를 소화한다. 최나라의 케이트 역시 적재적소에 등장해 인물들을 일깨우고 극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빅 마더'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와 비교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의 언론 장악이 어떻게 연성화됐는 지를 비교적 쉬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리 어렵지 않은 데이터 수집과 사적인 정보를 통해 사용자의 취향과 선호를 파고들고 심지어 특정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게끔 조작한다. 엄격하게 통제되는 독재자의 언론장악이 아니라 가장 편안하고 손쉽게 손 끝으로 다가와 인지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오웬의 가정사, 줄리아의 연애사와 사사건건 엮이는 저널리즘에 대한 에피소드도 저널리즘의 본질을 묻게 한다. 실제 대사 속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가 하면 엡스타인, 일론 머스크 같은 현재 실존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가장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 치고 내용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적 투명성, 여론 왜곡, 딥페이크와 언론권력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다행히 이 연극은 꽤 유쾌하고 친근한 구석이 있다. 마치 미국 언론사를 배경으로 하는 미드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빠른 호흡과 산뜻한 연출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날로그적인 무대 연출을 선호하는 이준우 연출이 대형 미디어 스크린과 라이브 송출 같은 장치를 사용한 점도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되, 나 역시도 '빅 마더'의 안온한 품에 안겨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jyy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