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지류 일제히 인상…최대 25% 상승
불황에 원자재값 올라도 판매가 반영 어려워
[서울=뉴스핌] 나병주 기자 = "인쇄골목은 가뜩이나 발길이 뜸한데 잉크랑 종이 모두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이 가득합니다.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죠."
1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골목. 35년째 이곳에서 인쇄소를 운영해 온 김용섭(60) 씨는 굳게 닫힌 셔터가 줄지어 선 골목을 천천히 훑어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요즘 들어 방문객이 확 줄어든 거리보다 더 무서운 게 '소문'이라고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잉크 등 인쇄용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자, 불황에 찌든 상인들 사이엔 다시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잉크는 인쇄의 생명줄이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1차 석유화학제품 '나프타'를 기초 원료로 쓰는데, 최근 중동발 군사 충돌로 나프타 가격이 급등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잉크값도 연쇄적으로 튀어 오른다.

김씨는 "전에 사뒀던 잉크가 남아 있어 당장은 버티고 있지만 다음 주문 때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털어놨다.
인근 인쇄소 사장 A씨 역시 "아직 가격이 오르진 않았지만 조금만 있으면 (가격을 올린다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도매상으로부터 "이달부터 잉크 공급가를 인상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인근에서 소규모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잉크 공급업체로부터 당장 4월부터 잉크값을 10% 올린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아직은 쓰던 잉크가 남아 있어 당장 체감하진 못하지만 재고가 다 떨어지고 난 이후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전쟁으로 가격이 오른 것은 잉크뿐만이 아니다. 인쇄 공정에 필요한 필름과 지류(종이)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전쟁과 환율이 그대로 업계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처럼 달러 강세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고공행진하는 달러/원 환율도 인쇄소 골목 사장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달러/원 환율이 오르면 수입가격이 올라 원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문화사를 운영 중인 60대 송모 씨는 "다음 주부터 필름과 지류 가격을 최대 25% 인상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며 "여기에 조만간 잉크값까지 오를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송씨가 보여준 공지문에는 '미-이란 전쟁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공급 가격을 올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특히 '가격 인상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추가 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문장이 홀로 굵게 표기돼 눈에 띄었다.

더 큰 문제는 인쇄소들이 원자재 상승분을 단가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단가를 올리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거래처마저 끊길까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하는 인쇄업자들이 대부분이다.
24년 경력의 인쇄소 대표 고용재 씨는 "인쇄업은 일하는 사람을 빼면 전부 수입산에 의존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잉크값과 종잇값이 천정부지로 솟아도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그만큼 납품가를 올려 받겠다고 하면 대체 어느 거래처가 용납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여의도 등 곳곳에 벚꽃이 피며 봄을 알리고 있지만, 이곳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한 것 같다.
lahbj1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