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후쿠시마 참사 뒤 일본 국회는 안전신화 붕괴와 책임 추궁으로 급변했다.
- 아베는 강한 일본을 내세워 안보법제와 국가주의를 밀어붙였다.
- 기시다와 이시바는 분배와 숙의로 돌아섰지만 비자금 스캔들에 흔들렸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후쿠시마, 안전우선이라는 국가의 약속이 깨진 사건
대재앙의 충격 속에서 2011년 일본 국회의 속기록은 언어의 급격한 전회를 맞이했다. 1990년대의 정치개혁, 2000년대의 구조개혁이라는 추상적 거대 담론은 썰물처럼 물러나고, '생명', '방사능', '안전', '은폐', '국가 책임'이라는 원초적이고 처절한 단어들이 회의록을 가득 채웠다.
초기 국회는 초당적 협력의 자세를 취했다. 2011년 4월 22일 중의원 본회의,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법안들이 이의 없이 가결되자 요코미치 다카히로(横路孝弘) 의장은 가결을 선포했고 장내에는 무거운 숙연함 속에 박수가 울려 퍼졌다. 단상에 선 간 나오토 총리는 수만 명의 희생자와 실종자 앞에 고개를 숙이며 국가의 무한 책임을 다짐했다.
그러나 사태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의회의 질문은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과 조직적 정보 은폐의 실체를 향해 날카롭게 정조준되어 있었다. 2011년 6월 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간 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송곳 같은 추궁에 식은땀을 흘리며 국가 권력의 은폐 관행을 일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 나오토(菅 直人) 내각총리대신:
"원전 사고 초기, 관저와 도쿄전력 사이에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을 뼈아프게 인정합니다. 노심용융(멜트다운) 발표가 지연되고 정부의 공식 설명이 수차례 번복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왜 진실의 전달이 지체되었는지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장내 고함, 야당 의석 "정부가 국민을 기만했다!", "총리는 사퇴하라!", 여당 의석 "정쟁을 중단하라!" 고성 교차)
이는 전후 일본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통렬한 신뢰의 위기였다. 정·관·산(도쿄전력)이 구축해 놓은 폐쇄적 '원전 카르텔(원자력 무라)'이 수십 년간 앵무새처럼 되뇌어 온 "일본의 원전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안전 신화의 언어가 백주대낮에 파멸적인 거짓으로 판명 난 것이다.
2011년 7월 국회 토론에서 간 총리는 "일본이 반세기 동안 원전을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여 온 이상, 이 참사는 국가 전체의 구조적 책임"이라며 기존 에너지기본계획의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정치적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자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내각 퇴진의 지렛대로 삼아 불신임안 공세를 폈고, 간 총리는 7월 8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행정 공백은 결코 없으며 원전 수습에 직을 걸겠다"고 맞섰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민주적 책임 추궁과 당리당략적 권력투쟁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혼란 속에서,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이 환멸과 피로감은 2012년 12월, 자민당의 정권 탈환과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화려한 귀환으로 직결되었다.

아베 신조, '강한 일본'이라는 언어의 귀환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는 전후 일본 정치의 문법을 뒤흔드는 가장 강력하고 공세적인 국가주의 언어를 전면에 들고나왔다.
"強い日本。"
"강한 일본."
2013년 1월 28일 제183회 통상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20년에 걸친 만성 디플레이션, 후쿠시마 참사 이후의 침체, 그리고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의 공세적 군사 팽창을 묶어 국가 존립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의 해법은 명쾌했다.
고도성장기 총리들이 "국민의 지갑을 얼마나 채워줄 것인가"에 골몰했다면, 아베는 경제적 번영을 국가 자체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하부구조로 재배치했다. 대규모 양적 완화와 재정 지출을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는 단순한 경기부양이 아니라,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보통국가 일본'을 재건하기 위한 군사·외교적 자강의 물질적 기반이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그리고 헌법 해석을 변경하여 밀어붙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과 평화안전법제는 이러한 '강한 일본'의 서사가 낳은 구체적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 의회는 1960년 안보투쟁 이후 가장 격렬한 헌정사적 충돌을 겪었다.

2015년 7월과 9월, 안보법제를 둘러싼 국회 속기록은 다수의 힘과 입헌주의의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역사적 현장의 기록이다. 2015년 7월 27일 제189회 참의원 본회의, 아베 총리는 단상에 올라 법안 처리를 정당화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내각총리대신:
"중의원에서 이미 116시간이 넘는 심도 있는 심의를 거쳤습니다. 엄중해진 안보 환경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하는 정치'를 실천한 것입니다!"
(여당 의석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 야당 의석 일제히 야유와 항의 고함)
야당 의원(단상 아래에서 육성 항의): "위헌이다! 역대 내각의 헌법 해석을 각의 결정 하나로 뒤집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의회를 거수기로 전락시키지 마라!"
(장내 극심한 소란, 의장석 주변에 야당 의원들 쇄도, 진령을 울려 퇴장 경고)
정부와 여당에게 안보법제는 미일동맹의 억지력을 극대화하여 국가를 보위하는 현실주의적 결단이었지만, 야당과 헌법학자들에게 그것은 헌법 제9조의 평화주의와 입헌주의 규범을 정권의 입맛대로 파괴하는 입헌 독재의 폭주였다. 국회 담장 밖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의사당을 포위한 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외쳤고, 본회의장 안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육탄전으로 단상을 점거했으나 의장은 진령을 울리며 강행 표결로 법안을 가결했다.
아베는 2013년 연설에서 여야가 정략적 발목잡기를 멈추고 "상호 관용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나, 정작 1강 체제의 압도적 다수의석을 쥔 집권 권력은 소수파와의 타협을 건너뛰었다. 국가주의적 결단력이 강조될수록 의회의 본령인 견제와 숙의는 뒤로 밀려났다. 강한 리더십이 전후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잠식하는 이 역설은 아베 장기집권기 내내 지워지지 않는 멍에로 남았다.

고도성장 이후의 언어, 분배와 불안이 돌아오다
2020년 아베의 퇴진 이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를 거치는 동안 일본 국회의 언어는 또 한 번 미묘한 궤도 수정을 거친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 글로벌 공급망 교란,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무엇보다 인구 감소와 실질임금의 장기 하락이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국가의 힘'만을 외치던 수사학에 한계가 드러난 탓이다.
기시다 후미오가 2021년 주창한 '새로운 자본주의'는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한 언어적 시도였다. 기시다 내각은 시장 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가져온 극단적 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를 정면으로 지목했다.
지나친 효율성 추구가 사회적 안전망을 파괴하고, 약화된 중산층은 종국에 민주주의 자체의 토대를 무너뜨린다는 진단이었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임금 인상과 하청업체 단가 인상이라는 분배의 언어가 의회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는 1960년대 이케다 시대의 낙관론과는 달랐다.
성장의 과실이 넘쳐나서 나누어 주던 시대가 아니라,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분배의 파이조차 지키지 못하면 국가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방어적 위기감의 언어'였다.

그러나 기시다 정권 역시 자민당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고질적 병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3년 말 터져 나온 '자민당 파벌 비자금 스캔들(정치자금 파티권 페이백 사건)'은 아베파를 비롯한 주류 파벌들을 단숨에 사법 처리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1994년 정치개혁 이후 30년이 지났음에도 장기집권의 밀실 속에서 검은돈의 거래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은 극도의 환멸을 표출했다.
2024년 10월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중의원 소신표명 연설의 벽두에서부터 꺼내 든 단어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였다. 이시바는 2024년 11월 제216회 국회 연설에서 1957년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전 총리의 회고를 인용하며 의회의 본령을 환기했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이념과 정견을 가진 정당들이 각자의 주장을 명확히 밝히되,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대목에서는 과감히 손을 잡고 더 높은 차원의 합의를 빚어내는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입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2024년 10월 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참패하며 소수 여당으로 전락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이시바의 언어는 '힘에 의한 일방적 통과' 대신 '야당과의 정책적 타협과 숙의'라는 의회주의의 고전적 문법으로의 강제된 회귀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과 2026년을 지나며 일본 정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언어적 충돌의 정점으로 치닫게 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