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예슬 기자]신한은행 설립의 주역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이희건(사진) 명예회장이 지난 21일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고 이희건 명예회장은 일제 식민지 시대이던 1917년 경상북도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대구사범대에 응시했지만 낙방하면서 좌절을 맛봤다.
이 회장은 허망함에 빠져있던 중 서울로 상경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충무로의 한 제과점에 취직했다. 근면한 모습을 눈여겨 본 주인은 이 회장에게 일본행을 제의했고 19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그가 가장 먼저 취직한 곳은 재단법인 오사카 계명회다. 해방이 다가오면서 이 회장은 재일동포사회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해방직후 교포들은 오사카 쓰루하시지역을 중심으로 무허가 시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곳에서 암거래가 이루어져 범죄의 위험이 있다며 1946년 시장을 폐쇄해버렸다. 이 때 이희건 회장은 재일동포들을 모아 일본 정부에 항의, 1년만에 시장 재개 승인을 얻어내 시장 부활을 선도했다.
1955년 이 회장은 마침내 마음이 맞는 상공인들과 함께 대판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했다. 금융업과 인연을 맺게 된 첫 사례다. 대판흥은은 그 후 쑥쑥 자라 당시 일본 내 신용금고·신용조합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74년에는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1977년 재일교포들이 제일투자금융을 세울 때 이 회장은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김준성 당시 외환은행장에게 부탁했다. 이 때 소개받은 사람이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이다.
이 명예회장은 1982년 7월 340여명의 재일동포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집해 서울 명동의 옛 코스모스백화점 본점(현 신한은행 명동지점)에 국내 최초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은행설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던 이 회장에게 정부가 민간은행설립을 검토하면서 허가를 내준 것이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100억엔을 모아 한국에 보내는 등 고국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무궁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일본에서 '국내송금보내기운동'을 주도하는 등 재일동포들의 조국돕기운동에 앞장서 꾸준히 외화를 유치했다. 1998년 동국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신한은행 회장으로 재임할 때는 주주들의 힘을 모아 유상증자에 성공, 은행 조직 및 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주는 등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노력 끝에 신한은행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우량 선도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은 평소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평소 신한은행 임직원들에게 소개해 신한은행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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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박예슬 기자 (yesl11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