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태희 기자]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규제를 완화하면 가계부채 질이 개선돼 이자 부담도 줄어든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리가 높은 비은행 주택담보대출이 금리가 낮은 은행대출로 전환(대체)될 수 있어서다.
20일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이 낸 'LTV 규제 완화, 가계 부채의 질 개선에 플러스' 보고서에 따르면 LTV가 완화되면 비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은행권으로 넘어와 가계부채 질이 개선된다.
조 연구위원은 "현재 논의 중인대로 LTV가 70%로 일괄 상향되면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에서 금리가 낮은 은행권 대출로의 전환대출 즉 일명 대출 갈아타기가 확산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전체 주택 관련 대출 중 은행의 비중은 지난 2007년 말 75%에서 지난 3월말 66.4%로 줄었다.
반면 비은행권 대출 비중은 늘었다. 지난 6월말 기준 비은행권 주택 대출 비중은 50.3%로 지난 2006년 39.9%에서 10.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가계부채 질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은행에서 주택 관련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비싼 이자를 내고 비은행권에서 주택 대출을 받은 것이다. 비은행권 주택 관련 대출 금리가 은행 주택 대출 금리보다 약 1%포인트 높다.
또 조 연구위원은 건국대학교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근거로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는 신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DTI가 완화되면 저소득층 부채가 늘고 부동산 시장 활성화도 이들 가계부채 문제에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원리금 상환 부담에 추가대출을 받는 악순화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
비은행권에서 금리 낮은 은행으로 대출 갈아타기 나타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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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강선우 구속적부심 기각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공천헌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강선우 무소속 의원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2부(재판장 김용중)는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 의원에 대한 구속적부심 심문을 진행한 뒤, "청구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공천헌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강선우 무소속 의원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은 강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강 의원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의 구속이 적법한지, 계속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를 법원에 다시 심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강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경 전 서울시의원으로부터 공천을 대가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강 의원은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법원은 지난 3일 강 의원과 김 전 시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 16일과 18일 강 의원을 소환해 조사했다.
hong90@newspim.com
2026-03-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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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 88세로 사망
[서울=뉴스핌] 송은정 기자 = 독재정권 시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26일 경기일보에 따르면 이근안은 전날 사망했으며, 현재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상태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5시20분으로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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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고문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과 옥살이 후유증을 앓다 지난 2011년 사망한 고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역시 1985년 9월 4일 '민청련 결성' 사건으로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으로부터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바 있다.
주화 이후 그의 행적은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재조명됐다.
고문 의혹이 불거지자 1988년 수배됐고 약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가 관여한 공안 사건 가운데 일부는 이후 재심에서 조작 정황이 인정되며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근안의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간첩이라 허위 자백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어부 정규용씨도 2014년 38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서울대 무림 사건'과 관련해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2006년 출소 이후 이근안은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적으로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또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고문 행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yuniya@newspim.com
2026-03-26 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