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양진영 기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인간 본연의 가장 뜨거운 사랑과 삶, 죽음을 얘기한다. 러시아 특유의 낯설고 특별한 분위기 속 약간은 뻔한 이야기지만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절대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정선아, 옥주현, 민우혁, 이지훈, 서범석 주연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국내에서 전세계 라이선스 초연으로 올라간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이다. 우아한 귀족 부인 안나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 자유와 행복을 택하고 결국은 죽음까지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다소 전형적인 스토리를 담았다. 이야기의 진부함을 넘어서는 특별한 감동이,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발걸음을 여운 속에 붙잡아둔다.
◆ 17년 만의 한파 속 추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겨울의 뮤지컬
오프닝 무대부터 웅장한 세트와 앙상블을 이용해 기차를 형상화한 노련한 연출력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러시아 스타일의 역동적인 군무, 주인공 안나의 그림자처럼 대칭을 이루며 복선을 까는 MC의 역할이 더없이 특별함을 안긴다. 퍼 장식이 곳곳에 사용된 화려한 안나의 드레스와 제복과 롱코트를 활용한 브론스키의 의상도 극에 몰입감을 돕는다. 오프닝 넘버의 반주마저 극장을 나갈 때까지 귓가에 맴돌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나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눈보라' 신은 이 작품이 올 겨울을 지배할 뮤지컬임을 단번에 알게 한다. 아름다운 눈발이 휘날리는 기차역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안나와 브론스키. 저절로 관객 모두가 그들의 사랑에 깊이 빠져든다. 맹추위가 몰아친 현재의 서울 날씨에 더없이 어울리는 감성, 배경,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카레닌과 안정적인 가정에서 살던 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도덕적으로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동안, 다른 등장인물 키티, 레빈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초반에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안나-브론스키, 다른 상대를 바라보는 키티와 레빈의 엇갈린 사랑이 대비되고, 후반부에는 불같은 사랑 끝에 불행해진 안나와 진정한 사랑을 만난 키티의 처지가 대비된다. 두 커플 대비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메시지나 교훈을 담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보여주기에 그치는 방식이 오히려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 높은 완성도와 별개로, 진부한 연출이 남긴 피로감
극 전체를 아울러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초대형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단점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새롭고 세련된 방식을 쓰기보다 진부한 표현을 반복해 강조하는 연출이 아쉽다. 뻔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남녀 주인공의 불같은 사랑과 주변의 분노 어린 감정들이 예상했던 대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격한 감정의 강도에 당황할 뿐 반전이나 변주는 전혀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안나의 인생에 공감하게 하려는 의도이겠으나, 과도한 진부함이 주는 피로감과 한계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안나 카레니나'가 무대에서 빛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완성도 높은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 덕이다. 쉬운 단어로 쓰였지만 문학적인 넘버, 유려하게 이어지는 대사와 연기는 객석을 숨 쉴 틈도 없이 극에 몰입하게 했다. 늘 그랬듯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고 완벽에 가까운 '클린'을 보여준 안나 역의 정선아의 공은 말할 것도 없다. 민우혁의 브론스키, 서범석의 카레닌, 이지혜의 키티, 최수형의 레빈은 모두 고전 속 인물임에도 그 안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 겨울 추위와 함께 즐길 만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오는 2월2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