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한방에선 따뜻한 물이 몸을 보하는 첩경
청말 민국초 전염병 후 '끓인 물 마시기' 운동 전개
[서울=뉴스핌] 김은주 기자 =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무척 쌀쌀해진 요즘이다. 계절의 시계는 이제 가을의 중반을 넘어서 조금씩 겨울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에도 겨울이 찾아올 때면 각급 학교 캠퍼스에 진풍경이 벌어진다. 누안후(暖壺)라는 큼지막한 보온통을 손에 든 학생들이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온수실 앞에서 길게 줄을 선 장면이다.
따뜻한 물을 받기 위해 온수실 앞에서 길게 줄을 선 학생들 [사진=바이두] |
추운 겨울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사계절 내내 팔팔 끓인 더운물을 마신다. 몸이 안 좋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는 물론이고 더위를 먹었을 때도 따뜻한 물을 찾는다.
이런 생활 습관은 따뜻한 물이 몸에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누군가 병이 나면 주변 사람들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 몸에 따뜻한 물이 좋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 중의학 의사들은 따뜻한 물이 사람의 체온을 보호하고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고 말한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면 면역력이 올라가면서 감기에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고 한다.
이런 중의학과 생리학적 관점 외에도 중국인들이 따뜻한 물을 일상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중화민국 시기(1912∼1949년) 중국은 위생 수준이 매우 열악했고, 흑사병 등 전염병으로 참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겨울철에도 우물가나 강에서 물을 길러 찬물을 스스럼없이 먹었다. 마른 풀이나 지푸라기를 이용해 밥을 지어 먹던 때여서 물을 끓여 먹을 형편도 못됐다.
급기야 1894년에 광둥에서 발발한 흑사병은 삽시간에 중국 전역으로 퍼졌고, 수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1959년까지 계속된 이 전염병은 온 중국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중화민국 시기 중국은 흑사병 등 전염병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사진=바이두] |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도 콜레라가 창궐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후 세균에 오염된 식수를 통해 전염병이 옮긴다는 ‘세균 학설’이 등장하며 콜레라 확산의 원인이 밝혀지게 된다. 유럽은 콜레라 퇴치방법으로 낙후된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해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데 힘썼다.
이후 중국에도 서양의 세균 학설이 전파되면서 정부는 공중위생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가난한 나라여서 서방과 같은 선진적인 식수 시설을 도입할 능력이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균 감염 예방을 위해 물을 끓여 마시는 생활 습관을 권장하고 나섰으며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끓인 물 마시기’ 캠페인도 전개했다.
이 캠페인은 1934~37년 장제스(蔣介石)가 추진한 '신생활운동'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는 중국이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낙후되고 야만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식사 예절'과 '옷 입는 법'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유가의 도덕규범인 ‘예(禮)·의(義)·염(廉)·치(恥)’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덕진흥운동인 신생활운동을 선포하고 있는 장제스 [사진=바이두] |
1936년 신생활운동의 결과 도시 곳곳에 뜨거운 물을 파는 상점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중화민국 초기만 해도 상하이 지역에 159개에 불과했던 물을 파는 상점 수가 무려 2000여 개로 늘어났다.
이 상점들은 차(茶)도 같이 겸해 팔았는데, 동네 이웃들이 이곳에서 물을 사거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만남의 장소 역할까지 하게 된다.
건국 후 전염병 예방과 인민 건강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또 한차례의 대대적인 운동이 전개된다. 195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애국위생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도시 골목골목에 홍보 포스터가 붙었고, 공장, 군대, 학교, 기차역 가릴 것 없이 뜨거운 물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온수실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온수 공급을 위해 전국적으로 무료 보온병 보급 운동도 시행한다. 한때 민간의 보온병 보유량이 간부 업적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될 정도로 중국 정부는 공중위생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뜨거운 물을 파는 한 상점 [사진=바이두] |
'끓인 물 마시기' 홍보 포스터 [사진=바이두] |
하지만 물을 끓이는데 필요한 연료 부족 등의 문제로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야 대부분의 중국인이 마음껏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최근 들어 전기포트 등을 이용해 뜨거운 물을 쉽게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중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온수실 풍경은 점차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인이 뜨거운 물을 마시는 습관만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2014년 1월 16일 베이징 대학교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온수실이 문을 닫았다. [사진=바이두] |
eunjoo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