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성평등 문화 정착' 강조하지만, 현장은 '온도차'
"발령나니 대뜸 임신계획부터 물어봐", "여경은 숨 죽이며 살아아 할 뿐"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경찰 간부가 임신 중인 여경에게 "우리 조직에서 임신하면 죄인 아닌 죄인"이라고 발언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일선 여경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경남지방경찰청은 조만간 경남 진주경찰서 소속 A 과장과 관련해 감찰처분심의위원회(감찰위)를 연다.
[사진=경찰청 본청] |
A과장은 지난 2월 3일 인사 관련 면담 자리에서 임신 9주차인 여경 B씨가 "출산 휴가와 업무 환경 등을 고려해 부서 변경 없이 기존 근무처에 잔류하고 싶다"고 말하자 '우리 조직에서 임신하면 죄인 아닌 죄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찰위는 A과장과 B씨의 주장이 엇갈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징계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여경들 사이에서는 "남성 중심 조직인 경찰에서 여경은 항상 숨 죽이며 살아야 한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신도 죄라고 말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성평등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경기도 한 경찰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여경 C씨는 "처음 지구대 발령 났을 때 지구대장이 대뜸 결혼 여부와 임신 계획부터 물어봤다"며 "여경이라고는 혼자뿐이니 불쾌한 내색도 하지 못하고 '아직 임신 계획은 없다'는 정도로 상황을 모면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여경 D씨도 "여성 간부가 있는 부서로 배치되면 임신, 출산, 육아 등에서 상대적으로 덜 눈치가 보이는데 나이 지긋한 간부가 있는 부서에서는 임신하면 그야말로 죄인 취급"이라며 "꼭 간부가 아니더라도 동료 남경들도 은연 중에 눈치를 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경들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수시로 '조직 내 성평등 문화 정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선에선 여전히 여성 차별적 문화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 청장은 지난해 8월 첫 총경급 이상 지휘부 회의를 '성평등 감수성 향상교육'으로 대체했고 이후 경찰청 내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도 신설했지만, 현장 체감도에는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경찰의 고위직 인사에서 여경들이 대폭 약진하면서 남성 중심 문화가 일부 개선될 것이라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단행된 경찰 고위직 인사에서는 이은정 경찰대학장이 사상 두 번째 여성 치안정감이 됐고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에는 여경 9명이 이름을 올리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경감급 여경은 "경찰 조직에서 여경이 승진하려면 아주 일찍 아이를 낳거나 아예 딩크족(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 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며 "지휘관들에게 아무리 성평등 교육을 해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사급 여경은 "여경을 배려하거나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라 정말 상식적인 수준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도 현장에선 그런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번에 피해를 입은 여경의 경우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지만 여경이라면 심심찮게 겪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청은 A과장에 대해 경남지방경찰청 감찰위가 징계 여부를 결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시 징계 수위를 판단할 예정이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