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조차 없는 부모 고국으로 추방될 위기"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1. 미등록 이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A(18) 군의 꿈은 사회복지사다. 현재는 서울 동작구 소재 한 고등학교에 다니며 교내 봉사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다. 16명의 부원들을 통솔하면서 2주에 한 번씩 지역 요양원을 찾아 청소, 배식, 말벗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A군이 이 같은 꿈을 꾸게 된 건 오롯이 가족들의 영향이다. A군 아버지는 시각 및 청각 장애를 갖고 있고 현재는 건설일용노동자를, 어머니는 큰언니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뒤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A군은 체류자격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 당한 사람들, 특히 장애인과 그 자녀가 겪는 어려움을 몸소 겪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군의 꿈은 모래 위에 성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현행법상 미등록 이주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강제추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이면 A군은 가본 적 없는 아버지의 고국으로 추방될 수 있다.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았던 A군은 낯선 곳으로 추방될 수 있다는 걱정에 늘 두려움에 떨고 있다.
#2.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 B(19) 군은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현재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지난해와 달리 이제는 강제추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B군의 부모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이주민이 됐다. 이들 부부는 사실혼 상태에서 지난 2001년 B군을 낳았고 그 뒤로도 두 명의 딸을 더 낳았다.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던 B군의 어머니는 요양을 위해 급하게 고국으로 자진 출국했고 B군은 12살 나이에 사실상 가장이 됐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B군은 올해부터 단속반을 피해가며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B군은 법무부의 '특별 자진출국제도'를 활용할까 고민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서울 중구 삼일대로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청사 전경.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
한국에 오랫동안 머문 미등록 이주아동을 강제 퇴거(출국) 조치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고 6일 밝혔다. 또 이들이 국내에 지속적인 체류를 원하면 체류자격을 신청해 심사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도 함께 권고했다.
인권위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한 자녀들을 강제 출국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낸 A군과 B군 부모의 진정에 대해 상당 부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강제퇴거를 통해 얻는 공익보다, 한국에서만 거주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입는 개인적 불이익이 더 크다고 봤다. 별다른 보완책 없이 무조건적으로 강제퇴거 조치를 명령하는 건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인권위 설명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강제퇴거 조치는 법무부의 재량에 속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헌법과 국제협약, 개인적 이익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고 형량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릴 때는 인권존중과 과잉금지원칙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