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공간인 택시에서 여성 승객 상대로 이뤄지는 각종 성희롱
납치·강간·살인사건 빈번했던 택시…위협 느껴 문제 제기 못해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1. 유모(30) 씨는 얼마 전 택시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유씨가 택시에 타자마자 택시기사가 "남자친구 있냐", "나이가 몇 살이냐", "결혼은 왜 안 하냐"고 연이어 사적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왜 부모님보다 나의 결혼에 더 관심이 많은지 상당히 불쾌했다"며 "그동안 요금을 더 지불하더라도 친절하고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는 다른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2. 이모(33) 씨는 택시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혼잣말로 정치 관련 욕설을 퍼붓는 택시기사에 불쾌감을 느꼈다. 이씨는 "내가 내 돈 주고 택시를 타는데 왜 저런 소음을 듣고, 또 참아야 하는지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대전=뉴스핌] 라안일 기자 = 대전시 바우처택시가 도로에 서 있다. [사진=대전시] 2020.05.10 rai@newspim.com |
여성들이 택시기사로부터 과도한 사적 질문을 받아 고통을 받는다며 호소하고 있다. 일부 택시기사는 사적 질문에 성희롱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택시가 폐쇄된 공간이라는 점, 운전대를 택시기사가 잡고 있는 만큼 신변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부적절한 언행에도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21일 모바일 설문조사 기관인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택시 이용고객 14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택시 이용 불만사항 1위로 '기사와의 불필요한 대화(38%·복수 선택)'를 꼽았다.
특히 여성들은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성희롱 발언에 노출되지만, 대부분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양모(33) 씨는 "만나러 가는 친구가 남자라고 하니, 택시기사가 '술을 먹여서 자빠뜨려야 한다'고 말해 불쾌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밤늦게 택시에 탑승한 이모(28) 씨 역시 "'이 밤에 누구 만나서 뭐하러 가냐'는 등의 기분 나쁜 말을 들었지만,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납치, 강간, 살해 등 세간에 알려진 택시 관련 범죄로 인해 늦은 밤 여성 혼자 택시를 타는 것 자체가 공포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최근에는 여성 승객들의 고충을 반영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티맵택시를 운영하는 SK텔레콤은 지난달 티맵택시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를 때 해당 택시기사에게 '조용히 가주세요'라는 승객 요청사항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택시 호출 서비스인 카카오T는 2015년부터 택시가 운행을 시작하면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출발지와 목적지, 탑승 시간과 기사 정보, 목적지까지 예상 소요 시간 등을 포함한 안심메시지를 발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택시라는 공간은 폐쇄적이고, 택시기사가 운전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들의 말에 거스르는 대답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경우 즉각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다"며 "실제로 택시를 매개로 늦은 밤에 여성 고객을 상대로 납치, 강간, 살인 등 범죄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미 여성이 늦은 밤 혼자 택시를 탄다는 것은 이미 공포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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