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보장 시 법안 취지 어긋나 '부담'
법인 고객 수요 커...시장 환경 조성 필요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관련 보험 상품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중대재해에 대한 경영진의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이 강화되는 만큼 법인 고객들의 관심이 높지만 정작 손해보험사들은 망설이는 분위기다. 법 위반에 따른 손실을 보장할 경우 중대재해법 취지에 어긋나는 데다 위험률 산정을 위한 사례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보사들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관련 보험상품 개발을 검토했지만 판매 여부는 결정하지 못했다. 중소형 손보사들도 공동 개발을 논의해왔지만 출시는 무기한 연기한 상황이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인은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경영진의 부담이 커졌지만 회사에서 대신 벌금을 처리할 경우 배임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형사처벌 가능성과 소송 비용에 대한 우려도 커 관련 보험 상품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과 달리 손보사들은 주저하고 있다. 손해율이나 담보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검토를 마치고도 판매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상품의 보장 내용이 법안 취지와 맞지 않다는 부담감이 가장 큰 이유다. 중대재해법은 기업들이 안전 관리를 강화하도록 만든 것인데 법 위반 시 손실을 보장받으면 관련 의무를 소홀히 하는 '모럴 해저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법안 시행 전이라 위험율을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도 부족한 상황이다. 근로자나 대인·대물에 대한 보상은 기업 규모, 업종 등에 따라 위험율을 산정할 수 있지만 경영책임자의 손실 보상은 관련 사례가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소형 손보사의 경우 중대재해 손실이 '조 단위'를 기록할 수 있어 고심하는 분위기다. 최근 광주 아파트 붕괴가 발생한 HDC현대산업개발도 최소 수 천 억원에서 최대 조 단위 손실까지 추정되고 있다.
다만 판매 계획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법인 고객들의 수요가 높아 법안 시행 후 시기를 저울질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체 기업들이 다 걸려있는 만큼 사실상 의무보험의 성격을 띌 수 있어 잠재 시장 규모다 크다고 보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법인 고객 사이에선 최근 안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데다 법안 시행 후 첫 타자 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크다"며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판매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