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법 과잉처벌 우려에 기업경영 위축"
엄정 수사 방침에 경영활동 어렵다 호소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에 초점 맞춰야"
[편집자]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오는 4월 14일 '새 정부에 바란다-윤석열 시대, 국가 대전환과 혁신비전 전략'을 주제로 제10회 서울이코노믹포럼을 개최합니다. 이번 포럼에 앞서 전 산업분야 최고경영자(CEO) 126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에 바라는 경제정책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이 크게 약화된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고유가·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이겨내고 성장과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선 시장경제 활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CEO들이 진단한 현 상황과 해법에 대한 견해 등을 총 6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국내 대다수 CEO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한 법조항에 따른 불확실성과 과도한 처벌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울 정도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압수수색과 대표이사 입건 등 엄정 수사가 이어지면서 기업경영이 위축되고 안전 의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다. 경제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책임자 처벌보다 재해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기업인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뉴스핌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월 3~11일까지 전 산업분야 CEO를 대상으로 '새 정부에 바란다'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CEO들은 기업경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꼽았다. 설문에 응답한 CEO 126명 중 60명(24.7%)의 CEO가 선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대상으로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할 경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재벌 총수의 처벌이 가능해진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두 달여 만에 법 위반 혐의 사고가 7건 발생하고, 일부 기업에선 대표이사가 입건되는 등 처벌 일변도 제재에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3월 21일 윤석열 당선인을 만난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수정을 요구했다. 허 회장은 "안전은 중요하나 기업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글로벌한 기준에 맞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도 최근 '중대재해 예방 산업안전포럼'에서 "중재해처벌법 시행 후 정부당국의 수사방향을 보면 사고발생 직후 대표이사를 입건하는 등 엄정수사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법률이 명확하지 않아 재해원인과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중처법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사고발생만으로 대표이사가 수사를 받는다면 기업경영이 위축되고, 안전에 대한 의지도 약화돼 산재예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경영자들이 처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사업장 안전관리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처법 수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들은 기업경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규제에 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술규제(40명, 16.5%) ▲공정거래규제(39명, 16.0%) ▲지배구조규제(28명, 11.5%) ▲환경규제(18명, 7.4%) 등 규제로 인한 애로사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법인세·상속세 등 조세제도(28명, 11.5%) ▲주52시간제(23명, 9.5%) ▲최저임금(7명, 2.9%)에 대한 애로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 규정 과도, 모호한 법조항 해석 어려워"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매우 과도하다'(29명, 23.0%) 또는 '다소 과도하다'(75명, 59.5%)고 답한 CEO가 모두 104명(82.5%)으로, 사실상 10명 중 8명의 CEO는 중대재해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과도하지 않다'(13명, 10.3%)거나 '매우 과도하지 않다'(1명, 0.8%)고 응답한 CEO는 14명(11.1%)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CEO도 8명(6.3%)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가장 큰 애로사항'은 '모호한 법조항에 대한 해석 어려움'(52명, 41.3%) 가장 많다고 응답했다.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예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부터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누가 경영책임자가 돼야 하는지, 사업장이나 장소를 '지배'하는 자와 '운영'하는 자 그리고 '관리'하는 자가 서로 다를 경우에 누가 예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고, 원청이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청이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들은 최고안전책임자(CSO, Chief Safety Officer) 직책을 신설하는 등 안전보건 관련 조직 및 인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처벌 공포에 대응하고 있다.
모호한 법조항에 이어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책임 부과'(33명, 26.2%)가 뒤를 이었다. '처벌 불안감에 따른 사업 위축'(19명, 15.1%)과 행정적·경제적 비용 부담(7명, 5.6%)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용춘 전경련 고용정책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충분한 사전 논의와 검토 없이 도입되면서 과잉처벌 우려와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며 "특히 적용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의무규정이 모호해 기업들의 혼란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기업경영 위축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재해예방이라는 법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 위주로 안전보건 체계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