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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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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
원래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 일제 때 5월 5일로 변경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어린이날'이 생긴지 100년이 됐다. 그러나 100년이 되었어도 어린이날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노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의 인권, 한 개체로서의 인격을 생각해보는 날인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하는 <민속소식> 5월호가 '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라는 글을 게재했다. 한국방정환재단 염희경 연구부장의 글로, 어린이날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생겨났으며 지난 10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잘 정리하고 있다. 이에 염희경 부장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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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어린이의 발견과 어린이날-어린이 해방을 선언하다

어린이운동가 방정환은 5월 1일을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 하였다. 근로자의 날로 널리 알려진 5월 1일에 방정환은 왜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5월 1일은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운동을 선언한 '어린이날'이었다.

첫 '어린이날'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2022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100주년'으로, 또는 '제100회 어린이날'로 일컬어진다. 100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날의 가치와 정신, 풍경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 모습이 달라졌다.

어린이날의 제정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가난과 질병과 불행에 찌든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구휼하고 교육하는 데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사랑은 그 내면적 이상에서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민족의 사랑이 결합된 것으로 어린이를 통해 민족과 나라 건설의 장래를 담보로 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가꾸는 일임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어린이날'은 마치 꺼질 듯 위태로웠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고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사는 나라로서 어린이 인권의 새 장을 만든 계기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22년 5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 초유의 소년일」. '의미 깊은 기꺼운 이 소년날은 이천만 형제가 다 함께 빌으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방정환은 「조선소년운동의 사적 고찰」의 첫 시작 부분에서 '어린이 발견'과 '어린이운동'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민족 갱생을 도모한 민족운동의 일환이자 그 근본운동임을 뚜렷이 밝혔다. 방정환과 소년운동가들은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핵심 주장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4종의 선전문을 배포하며 전국적으로 거리 기행렬을 계획했는데, 어깨에 멘 흰띠에 붉은 글씨의 어린이날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되어 불허가로 행사가 지체되면서 지방에서는 행렬이 금지되고 '경성'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중심의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취지와 선전문, 어린이날 행사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은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반에게 '어린이'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한 날이었다.

이날 선언문에서 밝힌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어린이날이 어린이 인권 운동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임을 명확히 밝혔다. 192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운동은 분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26년, 1927년 어린이날 행사가 따로 치러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1927년 10월 16일 조선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 두 단체는 통합을 모색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어린이날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겹쳐 일제의 탄압뿐 아니라 어린이날 행사 참여를 금지시키는 학교장의 방해가 심해지는 점을 들어 1928년부터 어린이날을 5월 첫째 공휴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28년부터 5월 5일을 '유유아(乳幼兒)애호데이(아동애호데이)'로 정하고 관 주도의 어린이날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 어린이운동의 대표적 상징인 어린이날에 대한 맞불 형태의 행사다.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조선 어린이운동에 대한 분열과 탄압을 예비한 것이며, 어린이 해방의 자리에 어린이 보호애호의 관점을 덧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 1930년대 조선 어린이운동의 퇴조, 일제의 '아동애호주간'

1931년 서울 소년단체대표들 주최로 '전조선어린이날 중앙연합회 준비회'가 결성되어 어린이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어린이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지역의 어린이날 행사 소식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였다.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어린이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고, '유유아 애호' 주간을 더 본격화하면서 아동 구호 사업을 선전하였다. '우량아 선발 대회' '고궁 무료 관람' 행사 등을 벌이며 '어린이 해방 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조선 어린이운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며 일종의 균열을 획책하였다.

1937년에는 어린이날 기념식만을 겨우 치렀고, 193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다. 일본은 이 틈을 타서 조선사회사업협회 주최로 5일부터 11일까지 '아동애호주간'을 펼치며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취지로 아동애호 관념을 강조하였다.

또한 경성초등학교장회 주최로 "어린 학동들을 '억센 국민'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사립초등학교연합대운동회를 열고 "이만 학동이 무럭무럭 자라는 귀여운 몸으로써 그리는 대원무곡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명랑한 환성의 코러스가 여름 하늘 높이 올라가 '억센 국민' '창조의 성전聖典'다운 용장미"를 보인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38.5.31)가 등장한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던 시기 '억센 국민'의 단련은 어린이의 전쟁 동원을 예비하고 독려하는 것이며, '명랑한 환성의 코로스'라는 말로 어린 병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어린이 운동회를 미화하고 있다. 어린이날 기행렬과 행사 사진이 사라지고 초등연합대운동회의 일사분란한 군사 행동 같은 운동회 모습과 재롱잔치로 묘사되는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기사와 사진들이 이 시기 신문의 지면을 채워가고 있다.

◆ 1945년~1949년 해방으로 다시 찾은 어린이날, 5월 5일로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46년 해방 후 첫 어린이날 행렬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일본의 탄압으로 1938년에 중단되었던 어린이날은 1946년 부활하였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제 명절 찾은 어린이날」이라는 신문 기사는 일본이 덧씌운 불명예를 걷어내고자 하는 언어와 정신의 회복을 담고 있다. 즉 일제 말 '아동애호주간'이나 '초등연합운동회'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등을 '어린이의 명절'로 명명하면서 조선 '어린이의 복된 새 명절'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이었던 어린이날을 지웠던 역사의 회복이다.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5일이어서 이때부터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고정되었다. 해방의 기쁨과 어린이운동의 역동성도 잠시 이후 좌우익 이념 대립과 갈등, 분단 체제를 맞으면서 이후 반쪽의 어린이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 1950년대 관 주도 기념식, 일제 강점기 '아동애호주간'의 닮은꼴

어린이날 기념식은 1953년부터는 점차 관 주도, 국가 주도 행사가 되었고 분단 상황으로 '반공의식'을 강화하거나 어린이날 행사에 '합동체조'가 끼어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라든가, 어린이가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들은 이전에는 없던 어린이날 풍경이다.

1957년 5월, 전후의 피폐한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되었다. 그 이전 시기에도 첫 어린이날에 대한 회차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56년, 1957년에 와서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던 1938년~1945년 시기의 회차까지를 포함하면서 이 과정에서 1923년을 첫 어린이날제1회로 보는 기사들이 나온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된 1957년 이후에는 1923년을 제1회 어린이날로 보는 관점이 공식화되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9년 어린이날 기념식, 착한 어린이 우량아 표창식 [사진= 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60년대 착한 어린이상에 갇힌 어린이와 가장 행렬의 등장

1960년 '계엄령과 정치 붐'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하지 못하였다. 1956년 새싹회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착한 어린이상을 표창한 뒤 1960년대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각 단체에서 착한모범 어린이상, 장한착한 어머니상, 장한 어버이상 등을 시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

1967년에는 어린이날 가장행렬이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가진 뒤 우주소년 아톰, 동물 복장 가장행렬단이 종로-세종로-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가장행렬에는 '과외 수업 없는 나라 어린이가 건강하다'는 표어와 불량만화 추방, 혼·분식 장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표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 1970년대 화려한 볼거리-어린이 경축대잔치, 가장행렬

1973년 3월 '어린이날'이 법정 기념일이 되었고, 1975년 1월, 어린이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공휴일 지정의 영향인 듯 1976년에는 어린이날 창경원에 35만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세계 어린이의 해인 1979년에는 장충체육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어린이날 경축대잔치를 벌였다. 서울시 주최로 서울 시내 초등학교 어린이 1만여 명이 서울운동장-을지로-시청으로 대행진을 벌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청와대에서 진행된 1980년 어린이날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80년대 전면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소비자가 된 어린이의 출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 주최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 진행되었다. 1981년에는 어린이날 행사로 청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정부 주도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 안의 녹지원, 상춘재, 본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초대된 어린이들은 모의 국무회의, 대통령과의 오락 등의 시간을 보냈다.

1981년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어린이를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해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는 조문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공원 놀이동산 등으로 어린이와 가족들이 몰리는 현상이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어린이날을 맞아 일종의 소비자, 고객이 된 어린이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들이 자주 노출된다.

◆ 1990년대 돌아보는 어린이날, '공동체 놀이, 우리 아이'의 가치

1991년 5월 5일, 전교조 초등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와 여러 어린이 교육 문화 관련 단체들이 공동 주관한 '제1회 어린이날 놀이마당'이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1994년부터는 각 교육청과 시청, 구청에서 어린이날에 저소득층이나 장애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놀이마당과 유사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1999년 5월 1일,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 중심이 되어 1923년의 어린이날 선언을 수정 보완한 '새천년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린이날의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 시대에 맞는 어린이날의 모습을 모색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왼쪽) 2022년 어린이날노래공모전 포스터, (오른쪽) 어린이 3권 5호(1925.5) [사진=한국근대문학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2000년대 어린이의 인권, 안전, 놀이 권리를 생각하다.

정부 각 부처, 지방 자치 단체, 어린이 관련 놀이 문화 산업, 유통업체 등이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하면서 행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여주기식 행사나 소비성 행사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다문화· 탈북·폭력과 학대·실종 상황에 놓인 어린이의 인권이 부각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어린이 안전과 주체적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2015년 '어린이 놀이 헌장' 선포는 어린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5월 2일 보건복지부는 <2016 아동권리헌장>을 제정하였다. 정부 차원의 '아동권리헌장'은 1957년 '어린이 헌장'1988년 개정 이후 처음이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생명을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발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다. 부모와 사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9개 조항을 발표하였다. 이 헌장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초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어린이의 처지에서 기술한 사실상의 첫 헌장이라고 평가받는다.

2019년 겨울 이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위협이 어린이날 행사는 물론 가정과 학교에서의 어린이의 삶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소원도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다'거나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지구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등으로 변화하였다. 2021년부터 랜선이나 메타버스로 만나는 어린이날 행사 등도 마련되었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질병과 IT 산업이 결합해 어린이날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날 한마당 포스터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기대와 바람을 마주하게 되고,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어린이날의 풍경이 변화하고 어린이날의 정신이 훼손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새롭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100년이 더 흐른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200회, 또는 200주년의 어린이날을 맞이할까? 훗날 2022년 어린이날은 어떤 풍경으로 그려질지, 어떤 가치를 담아낸 날로 기억될지 상상해 본다.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금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글 | 염희경_한국방정환재단 연구부장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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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와대'…李대통령, 오늘 첫 출근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부터 청와대로 공식 출근한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지 약 3년 7개월 만으로, 대통령실의 공식 명칭도 '청와대'로 다시 돌아간다. 이 대통령이 출근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 걸려 있던 봉황기가 내려가고 동시에 청와대에 게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옛 국방부 청사인 용산 대통령실로 마지막 출근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는 청와대에서 집무한다. [사진=대통령실] 봉황기는 대통령 재임 중 상시 게양되는 국가수반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가운데 두고, 상상 속의 새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문양이다. 봉황기는 윤석열정부 시절 한 번 하기된 바 있다. 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선고하면서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출근함에 따라, 업무표장(로고) 역시 과거 청와대 것으로 돌아간다. 용산 시대가 저물고 청와대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의 청와대 연내 복귀는 많은 해석을 낳는다. 새해부터 국민주권정부의 새 출발을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과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등의 사건이 벌어진 지난 정부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 등이다.  청와대가 다시 문을 열면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통령 집무실이 여민관에 마련된 점이다. 청와대는 크게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본관' ▲비서관실과 수석실이 분산 배치된 '여민관 1~3동' ▲외빈 맞이와 행사를 갖는 '영빈관' ▲'대통령 관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등으로 구성된다. 박근혜 정부까지는 대통령 집무실이 본관에 위치했다.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과 500m 떨어져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참모진이 있는 여민관에 마련해 거리를 좁힌 바 있는데, 이 대통령도 여민관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과 여민관 집무실을 함께 쓴다는 방침이다. 주로 쓰는 집무실은 여민관이다. 여민관에서 일하는 '3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참모진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국가상징구역 종합계획도 [자료=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대통령 집무실이 '구중궁궐'이라는 비판을 듣는 청와대로 이전을 한 만큼 국민과의 소통이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도 이를 의식 중이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지난 7일 "청와대 이전 후에는 대통령 일정과 업무에 대한 온라인 생중계 등을 더 확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청와대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꾸준히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2일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의 입지가 확정되기도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대통령 세종집무실 목표 준공 연도는 2030년 상반기다. 아직 목표만 세운 단계라 더 늘어질 수도, 더 당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행복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다"며 공정 단축을 주문한 바 있어 준공 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 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pcjay@newspim.com 2025-12-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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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 장관에 이혜훈 지명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장·차관급 등 7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내정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대통령은 오늘 장관급 3명, 차관 2명, 특별보좌관 2명을 각각 인사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차관급 인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KTV] 2025.12.28 pcjay@newspim.com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은 '보수 인사'로 분류된다. 2004년 한나라당으로 정계에 입문, 그해부터 17·18·20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 수석은 이 후보자를 두고 "경제 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불공정 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며 "다년간 의정 활동을 바탕으로 이번에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해 미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국민경제자문회의와 국가기술자문회의 부의장에 김성식 전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의원과 이경수 현 ㈜인애이블퓨전 의장을 각각 기용했다. 김 전 의원 역시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데, 이 수석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탁월한 정책 역량을 인정받아온 분"이라며 "구조적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AI(인공지능) 전환 등 다양한 혁신 과제를 이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혜훈 전 의원. 2020.12.16 leehs@newspim.com 이경수 의장에 대해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핵융합 연구에 40년 가까이 매진해 온 선구자"라며 "우리나라가 세계 3대 AI 강국과 5대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에는 김종구 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이 발탁됐다. 김 차관은 정통 농정 관료로서 농식품 산업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는 홍지선 현 경기도 남양주 부시장이 발탁됐다. 이 수석은 "경기도에서 약 28년간 철도, 도로 건설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며 "정책 설계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일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정통 관료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교통 인프라 확충, 전 국민 교통복지 실현 등 교통 소외 지역 해소 등 국정 과제를 역동적으로 구현할 적임자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은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촉했다. 6선인 조 의원은 현역 최다선으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과 민주당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역임한 바 있다. 차기 국회의장에 이름이 거론되는 증 실무 역량과 조정 능력 모두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에는 이한주 전 민주연구원장이 위촉됐다. 이 특보는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부터 성남시에서 함께 시민운동을 했으며, 이 대통령의 '정책 멘토'로도 알려졌다.  이 수석은 이 특보를 두고 "이재명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설계한 전문가로서 정부의 5개년 국정계획 수립과 국정과제 실천 등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라며 "이에 따라 주요 정책에 대한 자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사진=대통령실]   pcjay@newspim.com 2025-12-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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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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