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정우성이 또 하나의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추가했다. 감독으로 변신한 오랜 동료 이정재와 둘도 없는 호흡을 맞췄다. 고도의 액션과 심리전, 의심이 뒤섞인 국정원 요원들의 드라마 '헌트'다.
정우성은 최근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헌트' 개봉 기념 인터뷰를 통해 시사 이후 쏟아지는 호평에 흡족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매우 만족하고 흡족하다. 자극을 줘서 고맙단 말씀을 듣는 게 좋았다"면서 웃었다.
"많은 동료들이 영화 재밌게 봤다고, 좋은 자극을 줘서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영화 본편 이면에 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치열하게 했던 게 잘 전달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그 자체로 정말 찬사예요. 그 이상의 칭찬이 있을까요. VIP시사 참석해주신 분들이 대부분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좋죠. 가장 경계해야 할, 우리만의 의미로 남으면 안된단 생각으로 더 치열하려고 애썼어요. 그게 잘 전달됐으니까 만족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
'헌트'는 당초 이정재 감독이 연출이 아닌 제작을 염두에 두고 판권을 사들인 작품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거치며 정우성에게 출연을 제안했지만 세 번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정우성은 "1년에 한번씩 거절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처음에 정재씨가 프로듀싱을 해보고 싶다 했을 때 당연히 동료로 응원하고 도울 일 있음 조력하겠단 입장이었죠. 내심 시나리오를 잘 발전시켜서 같이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땐 감독을 찾는 게 급선무여서 그 시간이 길었고 우여곡절 끝에 본인이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만졌으니 직접 연출해보란 얘기에 제 의견을 묻더라고요. 저는 이미 '보호자' 연출, 출연을 하고 있을 때라 얼마나 고된 작업인 잘 알았고요. '그래 고생도 같이 해봐야지'하는 생각으로 그냥 웃었죠."
정우성은 이정재에게 "쉽게 그러세요 하기가 어려웠다"면서 먼저 연출을 경험해본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바구니에 계란 두 개 넣고 깨지는 것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감독에 도전하라"는 조언도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들여야 하는 시간은 당연하고, 배우로만 할 때와는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이 엄청나요. 특히 출연까지 한다면요.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하기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죠. 정재씨도 '진짜 할 수 있냐' 스스로 묻고 확인하는 시간을 거쳤어요. 동반 출연에 대해서도 한 가지 도전을 하는 것도 굉장히 버겁고 굉장히 날 선 시선과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둘이 같이 하고 정재씨가 감독도 하고 하면 그 날카로움이 배가될 것 같았죠. 결국 그 뒤로도 같이 하자고 해서 모든 걸 자기것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구나 하고 저도 결심이 섰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난 두 사람. 함께 연기하면서, 또 이정재 감독을 바라보면서 정우성이 느낀 점도 남달랐을 법했다. 정우성은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었고, 지치지 않길 바랐다"면서 여전한 애정을 표현했다.
"프로젝트가 발굴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다 지켜봤죠. 그 과정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감독을 스스로 하겠다고 결심하는 모습까지도요.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절묘하게 저도 연출과 출연을 같이 하고 있어서 작업의 고단함 수준을 알았어요. 긴 시간동안 서로 현장에서 지냈지만 각자의 경험과 연륜이 있으니 조언이랄 건 없어요. 정재씨의 경험도 충분히 오랫동안 지켜봤고 신뢰가 있었죠. 다만 감독으로 현장에 있을 때 작업의 양을 아니까 지치지 않길 바랐고 현장에서 귀를 열고 스태프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감독이 됐음 했어요. 감독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외로움, 고독에 지지않길 바랐고요. 그걸 다 해내는 걸 보면서 친구로서 뿌듯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죠."
극중 안기부 요원으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두 남자, 박평호와 김정도의 존재감은 영화의 양대 축이다. 정우성이 연기한 김정도는 광주 사태에 투입됐던 군인 출신으로 안기부 국내팀 차장이다. 본인에게 씌워질지도 모르는 혐의를 벗으려 조직에 침투한 스파이로 박평호를 의심한다.
"정도와 평호 둘다 자기를 객관화하면서 만들어진 딜레마를 겪는 인물이에요. 정도는 군인이었고 군인의 본분이 뭔지, 폭력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죠. 폭력의 아픔이 정당한 건지, 그럼 이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억울함에 공감해요. 그 무게를 갖고 있는 인물이죠.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 없고, 자신의 딜레마를 들키지 않기 위해 외형적으로 허점이 없는 인물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헤어도 오래된 수제 포마드를 직접 구해서 사용하기도 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헌트'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08.04 jyyang@newspim.com |
정도는 평호와는 다른, 과거사를 지닌 인물이다. 광주 사태를 목도했고 폭력에 대해 트라우마에 가까운 소신을 지녔다. 그럼에도 안기부에 입성하면서 매일같이 폭력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대의를 위해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굳은 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느껴진다.
"폭력의 공간에서의 표정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당하는 사람이나 해야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죠. 정도에게 그런 인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도는 자기가 감춘 비밀도 있지만 그 폭력을 대면할 때 표정 하나 하나가 양가적인 표현을 내포하고 있는 중립적인 표정이 아닐까 했어요. 영화에서 8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뒤틀어서 다르게 보여주진 않아요. 그 사건 속에서 본인들의 딜레마에 빠진 두 인물이 자신들의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죠. 별로 오해의 소지는 없는 영화라고 봐요."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대립각을 이루던 두 인물은 교차점을 지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향해 간다. 정우성은 정도가 평호에게 베푸는 관용을 언급하며 하이라이트 장면의 감정을 곱씹었다. '헌트'는 "전 세계에서 정우성은 내가 제일 잘 찍고싶다"던 이정재 감독의 애정이 가득 묻어나는, 정우성에게 또 하나의 의미로 남을 작품이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란 생각으로 접근한 건데 굉장히 큰 모험이죠. 정도 입장에선 모든 걸 다 걸었어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평호를 선택했고 그건 또 마지막 선택 지점이나 마찬가지였죠. 마지막에 박평호를 부르며 울분을 터뜨리는 건 정도 입장에선 자책이 컸어요. 상대에 대한 약간의 신뢰는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니라 김정도가 가진 거니까요. 그 배신감 역시 스스로에게 오겠죠. 모험적인 선택에 대한 착오, 스스로에 대한 책망 같은 것들을 내포했다고 봐요. 감독이 얼마나 이 캐릭터를 애정하는지 작업을 하면서 늘 느꼈어요. 그래서 김정도가 그렇게 나왔지 싶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