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된 휴대폰 50일간 보관, 경찰 연락 받고 제출
1심 벌금 50만원→2심 "훔칠 이유 없어 보여" 무죄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수습직원으로 일하던 A씨는 지난 2021년 6월 8일 자정을 갓 넘긴 새벽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는 택시 뒷자석에서 아이폰7 시리즈 휴대전화 하나를 발견했는데 집 앞에 도착해 내리면서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내렸다.
A씨가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가는 동안 B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택시에 두고 내린 사실을 알아차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날 A씨가 습득한 B씨의 아이폰은 방전돼 전원이 꺼진 상태로 A씨의 가방에 들어있었고 A씨는 같은 해 8월 2일 형사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자신이 주운 아이폰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는 바로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경찰서에 제출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휴대전화 주인을 찾아줬다고 생각한 A씨는 절도죄로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이 됐다. 검찰은 A씨가 시가 8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가질 생각으로 택시기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지고 내렸다고 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1심도 A씨가 택시기사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내렸고 경찰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반환을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며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특히 1심은 휴대전화 주인인 B씨와 택시기사, A씨 간 진술이 엇갈린 점에 주목했다. B씨는 '택시에서 하차한 후 10분 정도 지나 바로 전화를 했으나 배터리 충전상태가 충분했던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택시기사도 A씨를 태우고 이동하던 중 휴대전화 벨소리나 진동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는 수사기관에서 '당시 전화가 왔으나 회사 스트레스로 피곤해 받지 않다가 내릴 때가 돼 돌려주려고 가지고 간 것'이라며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항소심은 "피해자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기 위해 가져간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피고인에게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충분한 입증이 되지 않았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박노수 부장판사)는 최근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피고인이 이 사건 휴대전화를 절취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카카오택시를 이용해 택시에 탑승했기 때문에 바로 추적이 가능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시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재산적 가치가 높지 않은 휴대전화를 절취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A씨 측은 자신이 습득한 아이폰7플러스 모델의 중고가가 당시 20만원 정도였고 계속 가격이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취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거나 유심칩을 교환하거나 처분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자진해서 휴대전화를 들고 나갔다"며 "휴대전화에 통화내역이 남아 있는지, 언제까지 켜진 상태로 사용됐는지 등에 대한 아무런 조사가 이뤄진 바도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수습기간 야근 후 자정이 넘은 시간에 택시에 탑승했고 이후 바쁜 일정 때문에 휴대전화 습득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A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확정됐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