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우파 EPP 1위 수성...중도파 그룹도 과반수 넘겨
극우 정당들 약진...향후 발언권 거세질 듯
극우 정당 돌풍에 독일과 프랑스 집권당 참패
[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들이 약진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친(親) 유럽연합(EU)성향의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이 간신히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 정부에 참패를 안기며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이와 함께 유럽의 주류 정치권이 추진해온 친환경 '그린 유럽'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 등 기존의 EU 정책들에도 상당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중도 우파 EPP 간신히 1당...극우 정당 전역에서 약진
10일(현지시간) 유럽 27개 회원국 중 상당수 국가에서 개표가 완료됐거나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중도우파 정치그룹 유럽국민당(EPP)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EPP는 전체 720석 중 18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대로 개표가 종료될 경우 기존의 의석에 비해선 9석이 늘어난 것이다. 의석 비율도 기존의 25%에서 25.8%로 소폭 증가했다.
EPP와 함께 유럽의회에서 다수파 연정을 이뤘던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와 중도 자유당 그룹(Renew Europe)은 135석과 79석으로 각가 2, 3당 입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턴 뉴스핌] |
다만 중도 자유당 그룹은 현재 102석에서 23석이나 감소했다.
외신들은 3개 정당의 다수파 연정의 의석수는 현재 417석에서 400석으로 줄어들겠지만, EPP가 비교적 선방하면서 유럽의회 과반수는 수성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여기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주료 정치 세력이 추진했던 '그린 유럽' 정책을 지지하는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이 53석을 확보, 우호 세력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중도 정치 세력이 수성에는 성공할 수 있게 됐지만, 이번 선거의 주인공은 약진을 보인 극우 정당 그룹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주도하는 유럽보수와개혁(ECR)은 현재 69석에서 73석으로 의석수를 늘리면서 제4당의 입지를 굳혔다.
프랑스에서 집권 여당에 압승을 거둔 극우 정치인 프랑스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이 가입된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현재 49석에서 58석으로 몸집을 불렸다.
이밖에 극우 포퓰리즘을 앞세운 독일대안당(AfD)과 헝가리 피데스당도 각각 15석과 10석을 얻으며 기염을 토했다.
이들 극우 정치 그룹의 의석수는 모두 합해 156석 정도로 유럽 의회의 분포는 21.7% 정도를 차지했다. 향후 유럽의회에서 무시 못할 발언권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유럽의 극우 정당 또는 우파 포퓰리즘을 내세운 정치 세력들은 이번 선거에서 반이민 정책과 경제 침체, 친환경 규제에 대한 반발 등을 핵심 이슈로 내세웠다.
특히 유럽의 유권자들은 계속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속에 불법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의 주장에 공감하며 이들에게 지지를 보낸 것으로 분석됐다.
외신들은 EU 집행부의 과도한 친환경 정책 규제에 대해서도 유럽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변방의 이단 정치'로 불렸던 극우 정당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유럽 정치의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유럽 대륙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극우 정당들이 모두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향후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실제로 벨기에의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는 소속 정당이 우파 정당들에 참패하자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유럽 선거에서의 극우 약진이 유럽 무대의 주류 정치를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 위기의 마크롱, 숄츠...최대 승자 멜로니
EU의 양대 축으로 불리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집권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참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 르네상스당은 르펜이 주도하는 RN에 완전히 밀렸다. 개표 결과 이번 선거에서 RN이 31.5%의 득표율을 보인 반면 르네상스당은 14.6% 득표에 그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이달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르펜과 RN에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의회 선거와 별도로 실시되는 국내 조기 총선이라는 도박을 걸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국내 정치 이슈가 중심이 되는 프랑스 총선이 실시되면 유렵의회 선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정치를 주도해온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 정부의 지도력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평가에 이론이 없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재임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은 이번 선거에서 13.9% 득표에 그쳤다.
SPD와 연정을 이루고 있는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의 득표율도 대폭 하락했다.
반면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16.5%를 득표했고, 유럽의회에서도 15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 30%의 득표로 제1당을 유지한 기독민주당(CDU) 등은 숄츠 총리에 신임 투표를 요구하며 퇴진 압박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항후 EPP를 지켜낸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제안한 중도 연합 결성에 적극 호응하면서 극우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힘을 합칠 전망이다.
반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최대 승리자로 평가된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이번 선거에서 28.8%의 득표로 무난히 1위를 차지했다.
이에 힘입어 FdI가 속한 유럽보수와개혁(ECR)은 유럽 의회 제4당으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 2022년 멜로니가 총리에 취임할 때만 해도 그는 정치 무대에서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며 위험 인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취임 이후 우파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이탈리아의 극심한 정치 혼란을 잠재우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을 해왔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발언권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한때 노골적인 '친러· 친푸틴' 성향을 보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주요 7개국(G7)과 보조를 맞추는 균형 감각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멜로니 총리는 향후 유럽 정치 무대의 중도파와 극우 그룹에게서 모두 '러브콜'을 받으며 자신의 정치적 보폭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ckim1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