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감성어 사전 13 [ 초여름 ]

기사입력 : 2024년06월20일 15:30

최종수정 : 2024년06월20일 15:30

초여름의 푸르름 속에는 사연이 넘쳐난다
나애심과 장사익이 노래한 처연한 슬픔
소나기 피해 '토란잎 우산' 쓰고 걷는 계절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초여름의 푸르름 속에는 수많은 사연이 자란다. 새들이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으면 어느새 어린 생명이 태어나서 재재거린다. 애벌레들은 부지런히 어른이 될 그날을 위해 꿈틀댄다. 그뿐인가.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친다.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받아먹던 제비 새끼들도 어느새 둥지를 떠난다. 어쩌다가 비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연한 초록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자라고, 열매들은 제 색깔을 갖추면서 부지런히 익어간다. 호박잎에는 빗소리들이 모이고, 오이나 가지 같은 먹거리들이 제살을 찌우면서 커간다. 이럴 때면 어느 것 하나 푸르고 싱싱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오히려 불안하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초여름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나 여기있다'고 외친다. 초여름 뜨락에 핀 수국도 그 많은 생명 중의 하나다. [사진 = 오광수] 2024.06.20 oks34@newspim.com

'벚꽃 보러 왔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요/ 꽃 진 자리 자리마다/ 까맣게 빛나는데// 꽃 보고 가신 사람들/ 다 어디에 있을까요/ 까맣게 익은 버찌 떨어져/ 꽃 떨어진 자리 자리마다/ 다시 까맣게 번지는데// …중략…/ 매번 그랬듯이 앞만 보는 당신/ 당신은 거기서 무얼 하는 건가요' - 이문재 시집 '혼자의 넓이'(창비)중에서 '초여름' 일부.

아주 오래 전에 교과서에 실린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을 줄줄이 외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연한 초록에서 가장 짙은 초록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고 시작하는 문장은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 새 움과 어린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하면, 삼복염천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라고 돼 있었다. 그러나 끝내 울창한 잎의 시절이 장년 내지 노년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초여름엔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날 확률이 높다. 빨랫줄에 젖은 양말이 앙증맞게 널려있다. [사진 = 양재명 작가] 2024.06.20 oks34@newspim.com

초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의 기억 중에서 가장 선명한 건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던 순간이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처럼 낭만적인 상황은 펼쳐지지 않는다. 다만 빗속을 뛰는 신공에도 불구하고 흠뻑 젖을 수밖에 없는 난감함이 있을 뿐이다.
'갑작스런 빗발에 근처 밭두렁가에 뛰어들어가/ 토란 잎 꺾어 우산을 했다/ 날벌레 몇 마리 들어온다/ 천장에 달팽이가 붙어 있다/ 그랬었구나 어딜 가는 중인지는 몰라도 내가 대신 걸어주마/ 토란 잎 우산을 빙그르 돌리며 간다.'- 신현정 '토란 잎 우산 ' 전문.

날벌레와 달팽이와 함께 걷는 길, 즐겁고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또 다른 시 '어느 여름'에서 '애벌레들이 녹음을 와삭와삭 베어 먹는/ 나무 밑에 비 맞듯 서다/ 옷 젖도록 서서/ 이대로 서서 뼈가 보이도록 투명해지고 싶다'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여름은, 그중에서도 초여름은 한없이 투명해지고 싶은 계절이다. 그런 계절에 생각나는 노래도 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초여름은 산 것들의 천국이다. 그래서 온 산하에 먹거리가 넘쳐난다. [사진 = 오광수] 2024.06.20 oks34@newspim.com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장사익이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숨이 멎는다.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너무도 처연하여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전파상, 노점상, 가구점, 독서실 등 닥치는 대로 생계에 매달리던 가수지망생 장사익이 불혹이 넘은 나이에 낸 음반에 수록된 곡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초여름의 시작을 알릴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도 있다. 소설가 계용묵의 단편 '백치 아다다'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나애심이 불러 히트한 동명의 노래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 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가슴에 못 박고서 떠나버린 임 그리워 /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여….'- '백치 아다다' 일부.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삼복더위가 오더라도 초여름의 청량함을 기억할 일이다. 그러면 덜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양재명 작가] 2024.06.20 oks34@newspim.com

소설도 슬프지만 나애심에 이어 문주란이 리메이크하여 부른 이 노래는 하염없이 슬프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백로가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자. 그렇게 시작한 여름은 대개 덥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처한 고통이 별 것 아니게 느껴지듯. 삼복더위가 되면 초여름의 청량함을 기억하는 것도 좋다. 

oks34@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한덕수, 대선 출마 여부에 "노코멘트"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대행은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원조, 기술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했다. 이는 한국을 외국인에게 매우 편안한 투자 환경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축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2025.03.24.gdlee@newspim.com 한 대행은 "협상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상업용 항공기 구매 등을 포함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조선업 협력 증진도 미국이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FT는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고 한 대행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한 대행은 협상 과정에서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도, 양국 간 무역의 자유가 확대되면 "한국인의 이익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 대행은 6·3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nylee54@newspim.com 2025-04-20 13:43
사진
호미들 중국 한한령 어떻게 뚫었나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중국의 한류 제한령)이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중국에서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8일 베이징 현지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3인조 래퍼 '호미들'이 지난 1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중국인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호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분위기를 만끽했다. 공연장 영상은 중국의 SNS에서도 퍼져나가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가수의 공연은 중국에서 8년 동안 성사되지 못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BTS도 중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때문에 호미들의 공연이 중국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미들 공연이 성사된 데 대해 중국 베이징 현지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이 소규모였다는 점과 공연이 성사된 도시가 우한이었다는 두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호미들이 공연한 우한의 우한칸젠잔옌중신(武漢看見展演中心)은 소규모 공연장이다. 호미들의 공연에도 약 600여 명의 관객이 입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800명 이하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정식 문화공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는 공연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성(省) 지방정부 혹은 시정부가 공연을 허가한다. 지방정부가 허가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경우 중앙정부에 허가 판단을 요청한다. 한한령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의 문화공연은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었다. 호미들의 공연은 '마니하숴러(馬尼哈梭樂)'라는 이름의 중국 공연기획사가 준비했다. 이 기획사는 공연허가가 아닌 청년교류 허가를 받아서 공연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한시의 개방적인 분위기도 공연 성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한에는 대학이 밀집해 있으며 청년 인구 비중이 높다. 때문에 우한에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다. 게다가 젊은 층이 많은 만큼 우한에서는 실험적인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우한시는 중국에서는 최초로 시 전역에서 무인택시를 운영하게끔 허가하기도 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파격적인 정책이 발표되는 우한인 만큼, 한한령 상황임에도 호미들의 공연이 성사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의 한 문화업체 관계자는 "우한시가 개방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호미들의 공연은 소극적인 홍보 활동만이 펼쳐지는 한계를 보였다"며 "공연기획사 역시 한한령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지 문화콘텐츠 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한국의 최정상급 가수가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서 빨리 한한령이 해제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시그널은 아직 중국 내에서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호미들의 중국 우한 공연 모습 [사진=더우인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4-18 13: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