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라이브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하) 국가의 미래와 국민투표

기사입력 : 2024년11월30일 08:00

최종수정 : 2024년11월30일 08:07

국민투표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 제도의 핵심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 사상에 있다. 국민주권 사상은 16세기 철학자인 장 보댕(Jean Bodin)의 국가주권론에서 출발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주권중심 통치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준 보댕은 주권을 가진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 권력과 압제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주권을 가진 국가는 외적으로부터 방어, 국민의 생명, 재산, 안전, 질서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 폭력은 주권자인 통치자에게 귀속된다고 보았다. 즉 주권을 위임받은 절대권력자의 통치는 폭력을 수반할 수 있으며 절대권력까지 용인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이 이성을 지닌 자유로운 주체라고 보며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통제와 억압도 용인되지 않고 국가 (또는 정부)가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할 경우 통치자에게 양도했던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았다. 어떠한 억압과 통제에 대한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하며 법에 따른 통치와 개인의 자유, 인권과의 양립 등을 강조한 주권재민, 즉 "주권은 국민에 귀속된다"는 정치사상을 정립했다. 이를 계승한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독립된 개체가 가진 평등한 선택권을 이성(reason)과 다른 개념인 의지(will)라 보고 공동체의 집합적 의지를 일반의지(general will)이라 정의했다.

1762년 발표된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개개인의 의지는 곧 주권을 의미하며 그 총합인 일반의지, 즉 국민주권을 국민대표자에게 위임하는 것보다 다수의 국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정이 가장 적합한 정치제도라고 주장했다. 직접민주정을 통해 정당한 주권(legitimate sovereignty)이 행사되기 때문에 국민투표제는 루소가 주장한 최선의 정치제도로 현대적 적용의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고대 민주정을 채택한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의 원로원,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도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과 공산당 선언 이후 주권재민과 정당한 주권행사에 대한 요구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같은 시도로 1848년 스위스가 국민참여형 국민투표제를 도입했고, 1874년 헌법을 개정해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 근대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1892년 오리건주에서 처음 시도되어 미국에서는 직접민주정의 형태를 오리건모델(Oregon model)이라 불리울 정도로 여타 주로 확산되었다. 1차대전은 대의민주주의제도가 확산되는 시기로 바이마르 헌법을 채택한 독일도 국민투표제를 채택했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뿐 아니라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현대 정치체제가 대의민주정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투표제는 선거와 선거사이 국가의 중요한 의제결정을 위해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제도로 사용된다. 국민투표제와 직접민주제도에 대해 연구한 알트만 (David Altman) 교수에 따르면 국민발안(popular initiative)과 국민소환제(popular recall)만 레퍼렌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민투표 혹은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제기해 국민에게 결정권을 주는 제도는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라 부른다.

아래 도표를 보면서 설명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가 된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헌법과 관련법에 따라 시행되는 국민투표로 국민결정형이라는 점에서 의무적 플레비사이트(mandatory plebiscite)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130조 2항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예변적 대응형'이라는 뜻은 국가상황의 유무에 관계없이 헌법개정시에는 반드시 국민에게 최종적 결정권이 주어지는 제도다.

주황색 부분은 헌법 제72조의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관한 국민투표로 외교, 국방, 통일 및 비상사태와 같은 국가안위적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부의권이 주어짐 (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및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파란색은 스웨덴에서 사용하고 있는 협의형 국민투표제 혹은 협의형 플레비사이트(consultive plebiscite)에 해당된다. 연두색 부분은 이태리, 영국, 스웨덴의 왕정폐지, 국제기구 가입 및 탈퇴, 통치자 신임 등에 관한 국민투표로 결정형이라는 점에서 플레비사이트라 불린다. 헌법에는 포함되고 있지 않아 특별법제정, 국민합의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두색 내 노란X 표시는 의회의 대응절차를 밟지 않기 때문에 적용이 되지 않는 부분을 나타낸다.

노란색 사각형 부분은 국민발안과 국민소환제의 내용으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스위스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입되어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19개주, 멕시코 6개주, 아르헨티나 14개도, 독일 4개 란트(land) 등에서 적용되고 있다. 국민발안과 소환제의 경우에도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할 때는 이를 국민투표의 범주로도 넣기도 한다.

국민투표제의 구분 [출처: Altman, David. 2011. Direct Democracy Worldw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1107427099. 11쪽]

국민투표를 통한 사회혼란 해소방법

스톡홀름에 위치한 국제민주주의선거원조 기구인 IDEA에서 발간한 직접민주주의 핸드북 (Direct Democracy: The International IDEA Handbook, 2008)은 직접민주주의제가 대의민주제도의 보조적 장치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제도학자인 로렌스 모렐(Laurence Morel) 교수가 편집인으로 참가한 <국민투표와 직접민주주의 루트리지 핸드북>에서는 직접민주주의체제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 체계적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학자적 연구가 확장일로에 있다.

2000년대 들어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단행권 출판수가 20여권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그만큼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의 저하, 기술의 발달, 국민주권실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직접민주정을 도입하고 있다 (직접민주정과 국민투표제 연구결과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뒷부분에 정리한 연구목록 참조할 것).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국민투표제가 시행되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다. 헌법개정, 국제기구 가입 및 탈퇴, 그리고 국가비상사태 시 1년 이상 유효한 법을 제정할 때 그리고 국민민생 이슈 등 국민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다양한 국민투표가 시행되고 있다. 스위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848년부터 2020년까지 240번에 이르고 매년 1.6개의 국민투표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의 특징으로 2중 과반획득의 원칙을 들 수 있다. 전국 국민투표의 과반을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26개 칸톤 중 최소 14개에서 과반수를 얻어야 통과될 수 있다. 2024년에만 연금, 건강보험, 생명다양성 등의 4개의 사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치렀다.

우리나라는 1948년 이후 총 여섯 번에 걸쳐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국민투표는 예변적 대응형인 국민결정형으로 플레비사이트 형태라 할 수 있다. 즉 헌법에 규정된 헌법개정을 위한 최종절차로서의 국민투표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헌법 제72조에 의거한 국민투표는 시행된 적이 1948년 제정헌법 이후 한 번도 없다.

헌법개정은 국회가 주도권을 쥐고 재적의원 2/3의 동의를 받아 진행할 수 있다. 여야가 함께 손을 잡고 추진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외정책, 안보정책, 통일정책, 그리고 국가안위에 대한 현안 이슈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다.

국회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민생과 국가안위에 대한 논의가 중단된 상황에서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국가적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헌법적 해석과 국민투표의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하고 진행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만 어지러운 현 정국을 생각하면서 국민에게 결정권을 주는 방법을 고안해 보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정치가 혼돈되고 다양한 충돌이 돌출될 수록 루소의 정당한 주권과 로크의 주권재민을 실현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국민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하리라 본다.

우리나라 역대 국민투표.

참조자료: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서 (2000년 이후)

◆ Altman, David. 2010. Direct democracy worldwide
◆ Altman, David. 2019. Citizenship and contemporary direct democracy
◆ Asimakopoulos, John. 2014. Social structures of direct democracy : on the political economy of equality
◆ Biggers, Daniel R. 2014. Morality at the ballot : direct democracy and political engagement in the United States
◆ Bowler, Shaun & Donovan, Todd. 2000. Demanding choices : opinion, voting, and direct democracy
◆ Braunstein, Richard. 2004. Initiative and referendum voting : governing through direct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 Bruce, Iain. 2004. The Porto Alegre alternative : direct democracy in action
◆ Della Porta, Donatella, O'Connor, Francis & Portos, Martín, author.; Subirats, Anna. 2017. Social movements and referendums from below : direct democracy in the neoliberal crisis
◆ Goebel, Thomas. 2002. A government by the people : direct democracy in America, 1890-1940
◆ Kaplan, Temma. 2003. Taking Back the Streets: Women, Youth, and Direct Democracy
◆ LeDuc, Larry. 2020. The Politics of Direct Democracy : Referendums in Global Perspective
◆ Lewis, Daniel C. 2013. Direct democracy and minority rights : a critical assessment of the tyranny of the majority in the American states
◆ Marczewska-Rytko, Maria (ed.) 2018. Handbook of direct democracy in Central and Eastern Europe after 1989
◆ Matsusaka, John G. 2020. Let the People Rule : How Direct Democracy Can Meet the Populist Challenge
◆ Miller, Kenneth P. 2009. Direct democracy and the courts
◆ Moeckli, Daniel; Edward Elgar Publishing. 2021. The legal limits of direct democracy : a comparative analysis of referendums and initiatives across Europe.
◆ Qvortrup, Mads, author. 2013. Direct democracy : a comparative study of the theory and practice of government by the people
◆ Reilly, Shauna & Yonk, Ryan M. 2013. Direct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 petitioners as a reflection of society
◆ Shaun Bowler & Todd Donovan. 2010. Demanding Choices: Opinion, Voting, and Direct Democracy
◆ Smith, Daniel A. & Tolbert, Caroline. 2009. Educated by initiative: the effects of direct democracy on citizens and political organizations in the American states.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국회 투입 계엄군 '특전사·수방사' 추정 [서울=뉴스핌]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인 4일 새벽 4시 27분께 계엄을 해제했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인 새벽 4시 27분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해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합동참모본부는 비상계엄에 투입됐던 병력이 새벽 4시 22분부로 원소속 부대로 복귀했다고 4시 30분 언론 공지를 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 직전에 계엄군이 철수했다. 특히 계엄 선포 직후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던 계엄군이 어느 부대 소속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일단 군 안팎의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1공수특전여단과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서구에 주둔하고 있는 1공수특전여단은 국회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불과 수십 분 만에 국회로 진입할 수 있다. 이들은 차량과 헬기 등을 통해 국회로 이동했다. 특전사와 함께 서울·수도권 방위를 책임지는 수방사 35특수임무대대 소속 대원들도 계엄군으로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35특임대는 서울·수도권에서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해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부대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하고 있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 진입 당시 일부는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했고, 방탄모와 마스크, 방탄조끼 등 완전 무장을 했다. K-1 기관단총으로 완전 무장을 했으며 실탄을 장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윤 대통령은 계엄선포 직후 박안수(대장)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통상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이며 계엄 업무를 관장하는 합참의장이 임명됐지만 이번에는 육군총장이 임명됐다. 박 계엄사령관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 추천으로 임명됐다. 계엄사령부는 국방부 영내에 설치됐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여 분 만인 4일 새벽 1시 5분께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이에 따라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던 계엄군은 철수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 요구에 따라 국무회의를 열어 새벽 4시 27분께 계엄을 해제했다. 비상계엄에 투입됐던 전체 병력은 계엄 해제 발표에 앞서 4시 22분부로 원소속 부대로 복귀했다고 합참은 4시 30분 발표했다. 국방부 영내에 설치됐던 계엄사령부도 철수했다. 국방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언 직전인 새벽 4시쯤 "국방부 본부 비상소집을 해제한다"라고 발표했다. kjw8619@newspim.com 2024-12-04 09:09
사진
어제밤 10시 계엄 전 국무회의 개최 [세종=뉴스핌] 정성훈 최영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국무총리 보고 절차를 패싱한거 아닌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4일 총리실,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 발표 직전인 밤 10시경 용산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회의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4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4.12.04 yooksa@newspim.com 다만 해수부, 환경부, 공정위 등 일부 부처 장관은 세종이나 지방, 해외 일정 등으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리 국무회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국무조정실 및 총리비서실 등에 확인 중이지만, 아직 공식 답변은 받지 못했다. 손영택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지금은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문자로 짧게 답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장관이 계엄령 선포 전과 후 열린 국무회의에 모두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 중 반대나 이견을 표시한 장관은 없었다"고 전했다. 윤대통령 주재의 일방적인 회의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에 반대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향후 큰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대통령실 수석보좌관이 일괄 사퇴의사를 표명했고, 내각도 총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제88조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 보통 각 부처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서울특별시장 등이 배석할 수 있다. 국무회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다만 구성원이 동영상 및 음성이 동시에 송수신되는 장치가 갖춰진 서로 다른 장소에 출석해 진행하는 원격영상회의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의문은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는지 여부다.  계엄이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해 행정·사법권을 군으로 이관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계엄 선포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소집해 총리가 참석했을 수는 있지만, 계엄 선포 절차 과정에서 총리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간부들과 비상회의를 한 뒤 오전 2시 30분께 퇴청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바로 국무회의 통해 국회 요구 수용해 계엄 해제할 것. 다만 즉시 국무회의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오는 대로 바로 계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2024.12.04 leehs@newspim.com 한편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10시 23분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바 있다. 비상계엄 해제는 윤 대통령 담화문 발표 이후 6시간여 만이다. 비상계엄령 선포와 함께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발령되면서 전날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은 비상계엄 체계에 들어갔다. 이에 국회에 계엄군이 출동해 장악을 시도했다. 국회는 이날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켜 국회의원 190명 참석에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국회에 출동했던 계엄군도 철수했다. 비상계엄은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건을 계기로 마지막 선포된 뒤 45년 만이다. jsh@newspim.com 2024-12-04 09:52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