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사주를 볼 줄 안다고 하면 술자리에서 질문 폭탄이 쏟아진다. 원하는 직장에 합격할 수 있을까, 연인과의 사이는 어떻게 될까, 언제쯤 결혼할까를 묻지만 답할 수 없다. 역학을 얕게 공부하며 배운 건 운명론이 아닌 자유의지다. 천간과 지지 여덟 글자로부터는 내가 어떤 성향을 갖고 태어났는지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현실에 구현하는 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한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도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파격적인 성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 전부가 정적을 '사살한다'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극우 유튜버 말에 휘둘려 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하지도 않는다. 설상가상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대통령의 관상을 근거로 12월 3일을 거사일로 점찍었다는 소문이 돈다. 대통령은 무속인의 말만 믿고 계엄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방보경 사회부 기자 |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하늘의 말'만 믿고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했다는 거다. 한국의 역사와 맥락을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12월 3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 지도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의 위험성을 잘 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부에서 선포한 계엄이 아주 무시무시한 일이라는 것도 익히 들었다. 그 현대사를 배운 사람들에게 계엄령이라니.
대통령은 언제부터 국민에게 관심이 없었을까. 도어스태핑을 시도할 당시 불통이라고 불릴 때부터 징조는 보였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인 11월 초 브리핑에서도 국민적 공분을 샀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을 해명해주길 바라는 사람들 앞에서 "아내가 순진하다"고 했다.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문서답까지 덧붙였다.
비상계엄 이후 대국민 담화로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왈칵 화를 쏟아내는 시민들의 말을 빠르게 받아쓸 수 있었다. 한 60대 남성은 1분 동안 "국민을 상대로 어떻게 협박할 수가 있냐"는 말을 반복했다. 지하철 안에 있던 한 취재원은 서너 사람이 "당장 끌어내야 한다"며 소리지르는 광경도 전해줬다. 인터뷰를 마치고 얼어버린 손을 녹이며 생각했다. 계엄 이후 느끼는 무기력증은, 대통령의 말이 우리를 향하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지도 모르겠다고.
계엄이야말로 민생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한국 증시가 불안정하다는 소문에 환율은 급등하고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점친 상황에서 대통령은 악수를 뒀다. 대통령은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중국 고서(古書)의 오래된 격언을 배반했다. 그는 무속이라는 새 하늘을 찾았다.
탄핵재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절차에 문제가 생겨서 대통령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우리가 작은 화면으로 황망히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동안 대통령이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볼 것 같아 그렇다. 그를 살려준 실체 없는 하늘을 영영 맹신하게 될까 봐 나는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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