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매출 500조·이익 1위 탈환 과제
지배구조 개편과 후계 플랜 설계 필요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으며 10년에 걸친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벗어났다.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무죄로 결론 나며, 총수 리더십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이사회 복귀 시점과 직책, 삼성그룹의 실적 반등 전략과 장기 지배구조 구상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판결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상승세로 반응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3.0% 오른 6만6650원에 거래됐다. 전날 종가(6만4700원) 대비 1950원 오른 수치다. 대형 리스크 해소와 책임 경영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 이사회 복귀…'대표이사 회장' 맡을까
이 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회장이지만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등기임원이 아닌 '미등기임원 회장'이다.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향후 사내이사 또는 대표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특히 그룹 총수가 공식적으로 대표이사 타이틀을 단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스핌DB] |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직위 체계를 보더라도 현재 삼성전자에서는 전문경인인 대표이사 부회장이 존재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오너인 이 회장이 그냥 '사내이사 회장'이 된다면, 다소 애매한 지점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계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속도감 있는 경영 판단을 하려면 이 회장은 사내이사 회장보다는 대표이사 회장 타이틀을 얻어야 투자자와 주주들에게도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기 또한 관심사다. 내년 3월 정기주총 복귀가 일반적 시나리오지만, 연내 임시주총을 열어 조기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삼성그룹 연 매출 500조 돌파…2030년 목표 시야
삼성그룹은 2022년 국내 법인 기준으로 연매출 418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이후 2년 연속 400조원에 못 미쳤다. 이에 이 회장이 60세가 되는 2028년까지 연 매출 500조원 돌파가 그룹 외형 성장을 보여줄 핵심 지표로 거론된다. 2030년 내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총수 리더십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기존 사업의 기술 경쟁력 회복뿐 아니라, 인공지능(AI)·로봇 등 신성장 분야에서의 과감한 인수합병(M&A)와 해외 진출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최근 하만을 통한 마시모 인수, 플랙트그룹, 젤스 등 굵직한 M&A가 성사된 가운데, 이 회장이 직접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는 점은 긍정적 신호다.
![]() |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강남구 멀티캠퍼스 역삼 SSAFY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스핌DB] |
글로벌 경영 보폭도 확대됐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한 데 이어, 이달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AI 기업 CEO들과 교류를 넓혔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와 인수에 있어 사법 리스크의 존재는 상당한 제약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공격적 전환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 '영업이익 1위' 탈환…반도체 부진 극복 급선무
삼성은 과거 매출·영업이익·당기순익에서 모두 국내 1위를 기록했으나, 2023~2024년 2년 연속 현대차·SK에 영업이익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룹의 수익성 기둥인 반도체 사업이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 적자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부족이 겹친 탓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률은 10% 수준에 그친 반면, SK하이닉스는 35%를 기록했다. HBM4 양산, 파운드리 수율 개선,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복원이 삼성의 실적 리더십 회복을 위한 핵심 고리다. 사법 리스크 해소가 경영 판단의 속도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 |
장기 침체에 빠진 주가 부양 역시 이 회장의 주요 시험대다. 삼성전자 주가는 2021년 이후 3년 가까이 6만원대 박스권에 갇힌 상태다. 고금리와 반도체 업황 악화, 오너 리스크 등이 겹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는 평가다. 이날 무죄 확정 직후 주가가 3%가량 반등한 배경에도 '법적 불확실성 해소' 외에 '책임 경영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대표이사 복귀, 중장기 성장 로드맵 제시,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이 동반돼야 '리레이팅(재평가)'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지배구조와 후계 플랜…'플랜B' 부재 리스크도
삼성은 복잡한 수직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상법 개정과 이른바 '삼성생명법' 등 입법 변수로 인해 지주사 전환의 실익은 크게 줄었다. 전환에 필요한 자금 규모도 막대해 시장에서는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지주사 전환의 핵심 경로는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뒤, 삼성물산이 투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이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약 8.5%) 처리가 핵심 변수로 꼽히며, 전체 전환 비용도 30조~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당분간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며 경영 투명성과 주주 신뢰 확보에 주력하는 '방어적 전략'에 무게가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 역시 무리한 구조 개편보다는 현행 체제를 유지하며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방어적 전략'을 당분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후계 구상과 관련해서도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이 회장은 과거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후계 구상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룹 경영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누가 지휘봉을 이어받을지에 대한 '플랜B' 역시 제시되지 않아, 장기적인 리더십 체계에 대한 불안 요소로 지적된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