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경영학 박사)
퇴직을 앞둔 대한민국 중장년들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은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과거에는 한 조직에서 장기간 일하고, 퇴직 이후 필요시 한 번 정도의 전직으로 새로운 일을 찾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중장년 노동시장은 지금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급작스러운 퇴직 앞에 중장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장년 노동시장을 잘 살펴봐야 한다.
1964~1974년생의 사무 및 서비스판매직의 재취업자 가운데 69.5%가 다른 직종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무직 근로자 10명 중 3명만이 기존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 2023년)
현장에서 만나는 중장년들의 공통된 이야기도 "지금은 한 곳에만 의존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재개편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일자리 하나만으로 기존 경력을 퇴직 이후 10년, 15년 그대로 활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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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욱희 경사노위 전문위원 |
최근 변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중장년의 노동시장 구조는 더 쪼개지고 더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다중경력(multi-career)'이라는 개념이 있다. 더 이상 '정규직 한자리'만으로는 중장년의 경력을 설명하기가 어렵고, 중장년 개인이 담당하는 역할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문제는 노동시장에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이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기회의 폭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장년이 퇴직 이후 중장년 노동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퇴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중장년의 재취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규직 외에도 단기 프로젝트, 파트타임, 자문 및 고문 활동, 강의 및 멘토링 등 비슷비슷한 역할들이 혼재된 경우가 많다. 특히 제조, 서비스업, 창업, 공공 분야에서는 하나의 직장보다는 여러 개의 다양한 역할들이 모여서 경력을 이루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중장년 A 씨는 생산관리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퇴직 이후 정규직 자리만을 찾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히 실천해 나갔다. 예를 들어 품질 관리 강의 2시간, 지역 청년 멘토링 3회, 코칭 1회, 중소기업 현장 진단 및 자문 2회 등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역할들이 다시 프로젝트 기회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 연결로 이어지면서 차별화된 '경력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중경력 시대에는 '직장' 중심이 아니라 '역할' 중심의 경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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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와 하나금융그룹이 공동 개최한 '2025 하나 JOB 매칭 페스타 with 대전 중장년 채용박람회'가 29일 시청 2층에서 개최됐다. 이날 박람회에는 21개 기업이 참여해 채용상담 및 현장면접이 진행됐으며 이력서와 면접 코칭, 취․창업 성공 선배의 미니강연과 일자리 체험관 등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위해 민관이 함께 중장년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예를 들어 중장년 재취업자가 정규직, 단시간, 단기계약, 프리랜서 등을 혼합한 형태로 일 경험을 갖기도 하고, 두 가지 이상 다양한 일자리 형태를 병행할 수도 있다.
중장년이 다중경력자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단일 경력의 수명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나이는 52.9세로 나타났다(2025년 고령자 부가조사). 이처럼 퇴직은 빨라졌고 기대수명은 늘어났으니, 현실적으로 한 가지 노동 형태만으로 퇴직 이후 10년 이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둘째, 산업과 직무의 변화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경력을 쌓았을지라도, 퇴직 이후의 노동시장에서는 중소기업 프로젝트, 지역 기반 일거리, 디지털 관련 지원 업무 등 전혀 다른 형태의 역할이 요구된다.
셋째, 노동시장 자체가 '작은 일'들의 조합으로 재개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기반 업무, 파트타임 전문직, 지역 커뮤니티 기반 활동,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자문 및 교육 등은 중장년 구직자가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경력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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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2025.09.25 oks34@newspim.com |
이처럼 경력이 파편화되고 다중경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장년에게 필요한 전략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안정된 일자리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력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중장년이 다중경력 시대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경력의 한 축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해야만 한다. 중장년이 흔히 겪는 문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중경력 시대일수록 오히려 '핵심 직무 하나'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핵심축이 있어야 다른 역할로 확장하고 연결할 수 있다.
둘째, 기술 및 지식 기반의 보조축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 출신이라면 품질교육, 안전관리, 현장 컨설팅, 직무교육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핵심 경력이 튼튼할수록 보조축을 늘리기가 쉽다.
셋째, 작은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단기 컨설팅, 자문, 시간제 역할 및 지원, 지역 커뮤니티 활동 등은 경력의 측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축이 된다. 다중경력자는 여러 개의 '작은 축'이 모여 큰 경력을 만든다.
넷째, 관계 기반의 노동시장에 익숙해져야 한다. 중장년 노동시장은 상당수가 인맥을 통한 숨은 일자리(hidden job)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다. 다중경력자는 퇴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명함이 있을 때 열심히 뛰어라.
지금의 한국 중장년 노동시장은 위기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재개편의 시기에 가깝다. 정규직 한자리만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장년 한 사람이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의 경력 추구 모델이 되어야 한다.
중장년의 퇴직은 끝이 아니다. 퇴직 이후 경력을 '직장 단위'로 보지 말고 '역할 단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새로운 경력을 당당하게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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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5 희망 업(UP)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협력센터와 영등포구청이 공동 개최한 이번 행사는 중장년 고용 확대와 경력 단절 해소, 지역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마련됐다. 2025.09.11 mironj19@newspim.com |
*장욱희 박사는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와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커리어 파트너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방송 관련 활동도 활발하다. KBS, 한경 TV, EBS, SBS, OtvN 및 MBC, TBS 라디오 등 다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고용 분야, 중장년 재취업 및 창업, 청년 취업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성SDI, 오리온전기, KT, KBS,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서울시설공단, 서울매트로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전직지원컨설팅(Outplacement), 중장년 퇴직관리, 은퇴 설계 프로그램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대학생 취업 및 창업 교육,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공공부문 면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는 당당하게 다시 출근한다'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아웃플레이스먼트는 효과적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여가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비상임 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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