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김성주: "왜놈들과 싸우겠다고 이렇게 먼 길을 총을 들고 찾아왔는데,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저를 경계하는 것은 정말 너무합니다."
양세봉: "(버럭 화를 내며) 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다른 사람의 실수는 쉽게 용서되나, 공산당이 저지른 죄는 용서가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남의 곡간에 불을 지르고, 좀 잘 산다는 것을 이유로 노동자를 선동해 지주를 살해하고, 가정에서는 남녀평등을 내세워 여편네가 남편에게 대들게 만드니, 이게 어디 손잡을 사람들이냐? 네가 친형처럼 따랐던 이종락 그놈만 봐도 그렇다. 조선혁명군에서 중대장까지 했던 놈이 결국 조선혁명군 총 수십여 정을 훔쳐서 달아나지 않았더냐? 공산당은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고 분란만 조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배척하는 것이다."

김성주: "(머리를 숙이며) 사령관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김성주는 양세봉의 말에 반론을 내비치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것이었다. 더 이상 대들어 봤자 좋은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조선혁명군 별동대로 들어가 자신 휘하 세력의 무장력을 키우려는 계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앙세봉: "진정으로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군대라면 조선혁명군이 되어야지 나쁜 짓만 일삼는 공산당이 되면 되겠는가?"
그러자 김성주 일당 중 한 명인 박 훈이 배에 찬 권총 두 자루를 만지면서 "아니, 공산당이 무슨 나쁜 짓만을 일삼았단 말입니까? 우리가 중국 공산당 유격대가 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조선 혁명을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왜 이 먼 길을 찾아왔겠습니까?"라며 대들었다.
이에 조선혁명군 참모장 김학규 장군이 "뭐냐, 중국 공산당이 조선 혁명을 지원한다고?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중국 공산당이 무엇을 지원했느냐? 붉은 5월이니 뭐니 하면서 순박한 농사꾼을 모조리 반동으로 몰아 죽이지 않았느냐? 그게 조선 혁명 지원이냐?"라고 꾸짖었다.
박훈도 계속 대들었다."못 하는 소리는 당신들이 하고 있소. 우리는 당신들과 담판하려고 온 것이지, 결코 당신들의 부하가 되려고 온 것이 아니오."
양세봉은 김성주가 함께 온 무리를 제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너희들이 조선혁명군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한 후, 김학규 참모장에게 "참모장 그만 갑시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김학규는 이때의 일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1932년 여름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있으면서 중국 국민당 군 당취오 부대와 같이 통화(通化)에서 연합 사령부를 설치하고 있을 때, 김성주가 무송에서 한국 공산 청년 수십 명을 데리고 중국인 유본초와 동행하여 양 사령관을 찾아왔다.
김성주는 양 사령관에게 '항일하겠다. 무기를 달라'라고 요구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김성주가 이미 사상적으로 우리와는 적대 진영에 있는 것을 알고 있어 치지불리(置之不理, 내버려 두고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뜻) 보냈다.
공산주의의 소원은 세계를 정복하는 데 있으니, 그들과 우리는 언제든지 양립할 수 없다. 그들과 타협하는 것은 호상(互相) 자기네 정략 차원에 의한 일종의 시간 쟁취 수단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