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사에 유례 없는 '반인도적 전쟁 범죄'
당사국 발뺌, 국제사회 침묵, 언론은 경제만 주목
인권과 국제규범 무너지는 '인류 문명사 역주행'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전 세계 언론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이란의 보복 공격 관련 뉴스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쟁 상황과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는 보도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뉴스는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개시한 직후 벌어진 이란 남부 미나브의 여자 초등학교 폭격이다.
이 공격으로 최소 175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7~12세 여학생이다. 국제 분쟁에서 이같은 규모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현재 5년째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처럼 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공격은 없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는 전체적으로 수만 명이 사망했지만 특정 장소를 공격해 150명 이상의 민간인을 죽인 사례는 없다. 한 번의 공격으로 175명 이상, 그것도 대부분이 아동인 사례는 21세기 분쟁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폭격 직후 교실과 복도가 붕괴되고 어린 학생들이 콘크리트 잔해 아래에 매몰됐다.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며 부상자를 구조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수색작업은 3일 만에 종료됐다. 지난 3일 현지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희생자 부모들이 어린 딸의 사진이 붙은 자그마한 관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장면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처참함 그 자체였다.
이 공격은 미군 또는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군사 전문가들은 학교 근처에 위치한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기지를 겨냥한 미군의 미사일 공격이 초등학교에 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탄도미사일·드론·해군 전력을 집중 타격 대상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학교 옆 해군기지를 조준한 공격이 빗나갔는지, 목표물 식별에 실패했는지, 정보 오류였는지 알 수 없다.
이란 남부의 해군 시설 공격을 담당했던 미군의 미사일 공격임이 명백해 보이는 이 폭격은 국제인도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반인도적 전쟁 범죄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자체가 유엔 헌장에 어긋나는 무력 사용에 해당하지만 특히 미나브 초등학교 폭격은 끔찍한 민간인 학살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독립적인 국제조사단을 구성해 전쟁범죄 수사를 진행해야 할 사안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는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부적절하다"고 회피했고 이스라엘은 "학교를 공격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대부분의 서방국들은 민간인 희생에 유감을 표했을뿐 미국·이스라엘을 특정하지 않았다.
국제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전쟁 범죄임에도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이스라엘의 비협조, 유엔의 기능 저하 등을 감안할때 이 사건이 국제적으로 공론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 르완다·유고 사례처럼 강력한 국제형사재판이 실제로 열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언론 역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와 글로벌 경제 위협, 전쟁 확대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가 폭등·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 전쟁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보도를 실시간으로 쏟아내지만 민간인 피해는 '전쟁의 부수적 결과'로 다루고 있다. 서방 미디어 편향이 강한 국내 언론의 보도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와 언론이 모두 이처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최근들어 급격히 나타난 국제법과 국제규범의 황폐화, 국제질서 혼란, 각자도생, 강대국 눈치보기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 끔찍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이 명백한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먼지 가라앉듯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기를 희망했던 인류의 기대와 노력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정립하고 국제 정의를 지향하는 성공적 진화를 거듭해 현재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자신들이 이뤄놓은 가장 가치있는 성취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인류역사의 역주행'이 다시 나타나는 전조인지도 모른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