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계 "소급 적용 위헌" vs 과거사 변호사 "재검토 시급"
민사 구제는 진전, 형사는 제자리…"진실 규명·화해 논의해야"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선언하면서 31일 법조계에서는 "위헌 소지"와 "지연된 정의 실현"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단순한 찬반을 넘어, 진실 규명과 사회적 화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 29일 4·3 희생자 유족과의 오찬에서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소멸시효를 완전히 배제해 살아 있는 한 형사책임을 끝까지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그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가 연루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사실상 '영구 처벌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취지다.
◆ 전 정권 거부권에 막혔던 시효 폐지…"법 안정성 훼손" vs "책임 추궁 막혀"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해 2024년 12월 말 국회를 통과시켰지만,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듬해 1월 "위헌성이 있다"는 취지로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헌법학계에서는 '소급 적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본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에 대해 사후적으로 시효를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것은 헌법 13조의 형벌 불소급 및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소시효는 단순히 범인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며 "수십 년이 지난 뒤 처벌이 재개될 경우,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의 삶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대리한 변호사들은 중대한 국가폭력에 한해 시효 배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통일혁명당 재건 사건 재심을 맡았던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국가폭력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졌음에도 시효 때문에 배상이나 책임 추궁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아동 성폭력 범죄에서는 공소시효를 소급 연장한 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가폭력과 같이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시효를 이유로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황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 민사는 시효 완화, 형사는 제자리…진실·화해 모델 위에서 해답 찾자

형사 공소시효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이어가는 사이, 민사 영역에서는 일정 부분 제도 개선이 이뤄져 왔다. 2005년 설립된 독립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피해자 신청을 받아 과거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 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소멸시효 적용이 배제되거나 완화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다만 이는 형사 처벌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책임자 처벌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사 사건을 다뤄 온 권태윤 변호사(민변 과거사청산위원장)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으로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경우에는 민법·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특례가 생겼고, 예전에 시효 때문에 패소했던 사건들까지 일정 기간 다시 소송할 수 있게 길이 열렸다"면서도 "형사 공소시효는 진실화해위가 가동되는 지금도 손을 대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이에 헌법학자이자 2기 진실·화해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이미 발생한 과거사 사건에 소급해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은 위헌 소지가 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향후 발생할 국가범죄에 대비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을 미리 마련해 두자는 논의 자체는 재발 방지를 위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법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라며 "전문가들이 국가범죄가 무엇인지 범위를 명확히 정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기준을 세우고, 그간 진실화해위를 통해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 논의가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과거사 갈등이 아니라 진실 규명과 화해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yek10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