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서한(西漢)초에 항우 무리에 속한 장수로 계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약속을 목숨같이 중히 여기는 인물로 유명했다.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항우의 부하인 계포의 목에 황금 일천량의 현상금을 걸었다. 하지만 신의의 화신으로 세상 인심을 두루 얻고 있는 계포를 관아에 고해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유방과 친한 여양후는 황제 유방에게 탄원을 해 계포를 사면했고, 계포는 나중에 하동태수에 까지 오른다.
일락천금(一諾千金 이눠첸진)이라는 고사의 유례로, 사기 계포란포 열전에는 그 뜻을 ‘황금 1백근도 계포의 한마디 약속만 못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락천금은 후세 사람들에게 한마디 약속이 천량의 황금보다 중하고 목숨처럼 귀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 약속을 잘 지키면 지옥에서도 살 길이 열리지만 신의를 저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비록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중국인들은 약속과 실천의 중요함을 말할 때 이 고사를 떠올린다. 약속은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라는 점에서 현실 정치에서도 이 말은 금과옥조의 금언으로 여겨지고 있다.
1949년 건국한 신중국에는 두명의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이 그들이다. 둘 가운데 마오쩌둥은 언제나 구호와 선전을 앞세웠고, 덩샤오핑은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은뒤 끝까지 그 약속을 실행하는데 힘썼다.
마오쩌둥이 신의와 동떨어진 권모술수의 대가였던데 비해 덩샤오핑은 검증과 실천을 중시하는 실사구시형 지도자였다. 구호의 정치를 앞세운 마오쩌둥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경제와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반면 덩샤오핑은 그때 마다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내세워 무너진 중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1958년 중국에는 대약진 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졌다. 대약진은 마오쩌둥이 집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벌인 공산화 대중 정치 운동이었다. 당시 마오쩌둥은 100년된 영국의 철강산업을 15년내 따라잡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이는 구호뿐인 허황된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지도자의 그릇된 약속, 그 결과는 참혹했다. 경제가 절단나고 중국은 굶어죽은 사람만 3000만명이 넘는 대재앙을 입었다. 8년뒤 문화대혁명때도 마오쩌둥은 똑 같은 구호와 선동 정치로 국난을 초래했다.
대약진 20년뒤 약속과 실천의 지도자 덩사오핑이 중국호의 키를 잡았다.그는 꼭 필요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공약들을 제시한뒤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실천만이 진리검증의 유일한 수단’이라며 실사구시를 강조했다.구호의 덫에 발목잡힌 마오쩌둥의 정책과는 동기도 달랐지만 결과 또한 판이했다.
덩샤오핑 덕에 중국경제는 인류 사상 유례없는 장기 고성장세를 기록했고 미국 다음의 세계 2위경제대국이 됐다. 올해는 ‘약속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사망한지 20주기가 되는 해다. 중국 사회는 그런 덩샤오핑을 실사구시의 지도자, 이용후생의 지도자라고 칭송하며 치적을 기리고 있다.
조기 대선일이 확정되면서 우리 정치판에 구호를 앞세운 온갖 현란한 내용의 공약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표만 의식한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이라면 애초에 그건 국민에 대한 거짓말과 다름없다. '일락천금'. 한마디 약속은 목숨처럼 소중하고 천량의 황금보다 귀중하다고 했다. 정치 지도자의 약속은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거꾸로 큰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합리적이며 지킬수 있는 공약인지, 또 해당 후보가 그 약속을 지켜낼 신의가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