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햄릿' 모티브…현대에 맞게 재창작
함익의 고독한 내면 통해 현대인 아픔 그려내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햄릿에게 살고 죽고는 고민거리가 아니었어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죽어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그게 진짜 햄릿의 고민이었죠."
셰익스피어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작품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문장의 직관적 의미를 넘어,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본인의 삶이 '햄릿'과 비슷하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테다.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서울시극단의 창작극 '함익'은 셰익스피어 '햄릿'의 성별을 바꿔 새로운 시선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와 계모 때문이라고 믿는 '함익'이 주인공이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분노와 복수심, 외로움과 고독 등 인간 내면의 감정에 집중한다. 김은성 작가의 파격적 해석과 김광보 연출의 미니멀한 연출이 만나면서 시너지가 배가됐다.
극중 함익은 재벌 2세이자 연극학과 교수다. 복수심을 숨긴 채 철저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애완동물 원숭이마저 함익을 무시할 정도로 가족은 허울 뿐이고, 아버지 사업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 표정 없는 얼굴과 낮은 저음의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하는 함익이 달라지는 때는 그의 분신인 익을 만날 때 뿐이다.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함익과 익이 만나면 그동안 꾹 눌러참았던 속마음이 터져나온다. 얼마나 참고 또 참았는지 쉴 새 없이 빠르게 터져나오고, 생각의 흐름인만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예상되지도 않는다. 힐을 벗어던지고 바닥을 구르거나 점프를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함익의 모습은 그제야 좀 사람답다. 누군가를 속으로 욕하거나, 좋아하거나 말할 수 없었던 모든 감정들이 분신을 통해 형상화 되면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더욱 크다.
함익이 인간다워지는 또다른 이유는 연우다. 연극 '햄릿' 공연에 참여하는 학생 중 한 명으로, '햄릿'에 대한 꼼꼼하고도 깊이 있는 해석으로 함익의 눈에 들게 된다. 지금껏 자신의 삶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함익은 연우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그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바꾸는 등 나름대로 표현하지만, 이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외로움으로 가득차 있는 함익. 그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가면을 쓰고 현실에 안주하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복수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 재벌가의 낙하산 문제, 정경 유착과 만능물질주의 등 사회 문제까지도 은근히 다루면서 현대사회의 아픈 단면까지 고스란히 그려낸다.
2016년 초연에 이어 다시 함익과 익으로 분한 배우 최나라와 이지연은 여전히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특히 최나라는 현실과 내면의 상반된 성향으로 순식간에 변모하면서도, 안정되게 극을 이끌어간다. 연우로 분한 오종혁과 조상웅은 각기 다른 색깔을 선보인다. 오종혁의 연우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면, 조상웅의 연우는 순수하면서도 에너제틱하다.
창작극 '함익' 공연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창작극 '함익'은 오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